마광수 교수님에 대한 기억 (1): 기억, 수업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newbie7 years ago (edited)

1 기억

마광수 교수님의 수업은 2008년에 들었다. 당시 나는 세브란스에 2달 정도 입원을 해서 수업에 가기 힘들었고, 팔에 깁스를 한 상태라 레포트(야설)를 쓰거나 시험을 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환자복을 입고 링겔을 끌면서 연구실에 두어 번 찾아갔는데, 신기한 점은 그렇게 엄청 특이한 비주얼을 하고 갔음에도 내 얼굴과 존재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수님의 방 풍경은 매우 신기했다. 긴 손톱을 가진 손 조각, 각종 야한 사진들, 그리고 온갖 성인용품들이 있는데, 교수님께 이게 뭐냐고 묻자 특유의 나른한 말투로 '아 애들이 가져다 준거야- 레포트에 이런거 붙여서 보내고 그러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나는 교수님이 '요즘은 야한 사이트를 다 막아놓아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푸념하는 것을 듣고, ip우회 등을 위해 사용하던 DNS free 등의 프로그램을 usb에 넣어 전달했다. 사용법을 모르실까봐 설치하는 법, 우회하는 법 등을 설명하는 블로그 글도 출력해서 같이 가지고 갔다.

그 프로그램을 깔아 드리고, 이제는 이러이러한 야한 사이트를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드리자, 늘 피곤해 보이던 교수님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면서, '야, 이제 되는거야? 우와, 신난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야 너 이름이 뭐야?'라고 물었다. 그때 비로소 교수님은 나를 기억하였다.

2 수업

마교수님의 수업에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우선 출석체크를 하지 않는다. 첫 시간에 출첵을 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대학생이니 필요한 만큼만 들으라고 하였다. 이 부분의 부작용은 학생들이 들으러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100명이 넘는 인원이 수강하던 과목이었지만 20명도 되지 않는 학생들이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경우가 흔했다.

그리고 첫 시간에 들어오자마자 담배, 그 유명한 '장미'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특유의 힘없는 말투로 말했다.
'야 너희도 피워도 돼. 담배연기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미안하다. 난 이게 없으면 수업을 못해서'
'너네나 나나 똑같은 사람이니까 교수님 어쩌구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해. 담배 피워도 되고 뭐 먹어도 되고 휴대폰 해도 되고.'

마교수님 수업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주로 앞자리에, 화장을 진하게 하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여학생이 한두명 이상 앉는다는 것이다. 보통 교수님이 담배를 피워 물면, 이런 여학생들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떤 수업에서는 학생들 몇명에게 '수업을 듣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 담배를 피워 물었던 학생은 '교수님을 유혹하고 싶어서요' 라고 하였다.

나중에 마교수님과 좀 더 친해진 이후, 그 여학생과 뭔가 진행된 게 있었는지 사석에서 슬쩍 물어보았다. 그때 교수님은 '야 학생이랑 진행될게 뭐가 있어' 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기에, '아니 즐거운 사라는...' 이라고 항변하려 했는데, 그 눈치를 챘는지

'못하는걸 상상으로 하는게 문학이지, 상상을 진짜로 세상에서 하면 범죄야.'라고 이야기했다.

문학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조금 들여다 본 것 같아 살짝 존경심이 들었다.

교수님은 저 말 뒤에 바로 '그리고 야 이제 나 xx도 안서.. ' 라고 말했지만 딱히 존경심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계속)

#마광수 #krnewbie #kr #즐거운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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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이 없던 지식인. 더 할일들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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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학교 다닐때 마교수님이랑 비슷한 분이 계셨어요. 그 분야에서 나름 유명하신 분이셨는데 제자랑 자살하셨죠. 듣기로는 사인이 익사인데 돌덩이가 든 가방을 매고 함께.. 사랑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분이 생각납니다. 그 분 수업이 특이해서.. 레포트는 벗꽃이 필때까지 내라.. 기억이 나네요.

허어 천재들이란.ㅠㅠ 변호사 입장에선 '벚꽃 피는 시기를 어떻게 특정하는가'부터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마광수 4편 올렸습니다!

아, 생생합니다^^

감사합니다 곤에어님.ㅎㅎ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자 교수님이신데 이런 일화가 있는줄은 몰랐네요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