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 What in the hell is poem?

in #kr-newbie7 years ago

나는 인간의 말이 얼마나 멋 없는지 알고 싶을 때 시를 읽는다. 시는 늘 말보다 뛰어나다.

나는 또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걸 못 보고 지나치는지 알고 싶을 때 시를 읽는다. 시는 언제나 다른 세상을 열어준다. 시 안에서 내가 봤던 것들은 더 이상 내가 봤던 게 아니고 내가 알았던 것들은 더 이상 내가 알았던 게 아니다.

최고의 언어는 시다.
시로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글은 2016년 7월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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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는 제목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면 당신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다. 로봇이 시를 쓰는 시대는 기어이 오고야 말겠지만 로봇이 시를 감상하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면 시를 읽자. 오직 시만이 영혼을 만들 수 있다.

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자다. 시는 이계의 감성을 원료로 탄생한다. 시는 알콜중독자의 혼잣말과 비슷하고 정신병자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현실 세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깔끔하고 정갈한 똑똑이들은, 그래서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서러워 할 것 없다. 그 무지의 대가로 끝내주는 자동차와 연봉을 얻으니까. 우연히 이계의 언어를 들은 사람들, 그래서 그걸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가난과 몰이해 뿐이다.

독해의 측면에서 부코스키의 시는 쉽다. 은유가 배제된 뒷골목 일화가 주된 내용이다. 정신병자냐 알콜중독자냐? 알콜중독자다. 그는 실제로도 알콜중독자였다. 술, 원나잇 스탠드, 콘돔, 애인들끼리의 다툼, 항우울제, 스위치 나이프, $6.50 tax included, finger fuck, 정액 분출, 난교. 이것들이 작가의 언어다. 태양이 꼭대기에 떠 있는 동안은 드러나지 않는 어둠의 도시. 찰스 부코스키는 그 도시의 성실한 주민이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이용하여 개미처럼 성실히 자신의 인생을 갉아 먹는다. 시란 어쩌면 이렇게 갉아낸 인생의 부스러기가 아닐까? 그래서 매끈하게 빠진 인생에선 시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시를 번역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같다. 언어가 다르면 운율을 살리기가 어렵다. 세밀한 뉘앙스의 차이도 전달하기 어렵다. 번역된 시는 밋밋해지기 일쑤다.

all I had to do
was

에서 한 박자 쉬면,

be there

에선 목소리를 깔고 읽을 수 있다. 그러면 시인의 속수무책, 어쩌할 도리 없이 낙담한 심정이 더 상세히 느껴진다.

그냥 그렇게
거기

에선 한 박자 쉬어도,

있는 수 밖에.

에서 목소리를 깔 수 없다.

민음사의 세계시인선은 민음사 답지 않은 아름다운 패키지로 나를 놀라게 했는데 번역문 옆에 원문을 병기하는 것으로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원문을 꼭 읽어 보라. 나는 한 편의 시를 원문, 번역문, 원문의 순서로 읽었다.

원문 없이 이 시들을 읽는 건 디코더가 사라진 이진 문자를 읽는 것과 같다. 그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주고파 나는 아래와 같은 번역문을 남긴다.

지친 아내들이 맥주에 발동 걸려 달려드는 남편을
물리치느라 애먹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지.

운율없는 시. 향기를 잃은 꽃.

이 구절의 원문이 궁금해?
만 원이면 알 수 있는 일.

민음사 세계시인선 12, 정가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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