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왔을 때 노 젓자] 가든팍님 이벤트 출품 글에 2000자 제한으로 짤렸던 군대 이야기

in #kr-life6 years ago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군대 안다녀온 사람에게는 공감이 안되고,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자기 고생이 최고 고생이라는 얘기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내가 군대에서 고생한 얘기를 거의 한 적이 없다. 물론 나도 내가 겪은 고생을 뽐내고 싶고, 위로도 받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표현력으로는 내가 느꼈던 감정과 고통의 반의 반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것을. 그래서 그런 어설픈 표현으로 내 경험이 평가 절하되는게 싫었다. 그래서 누군가 힘들지 않았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도 그냥 웃어 넘길 뿐이었다.

그렇다. 여기 쓰는 내용은 고생담은 아니다.
그냥 두서없이 적는, 한 번은 정리하고 가야할 것 같은 기억들이다.
(이렇게 변명하며 재미없는 군대 이야기를 마저 해본다)


전편에서 얘기 했듯이, 나는 사고가 발생했던 GOP부대에서 군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약 3개월 후 GOP에서 철수하여 평범한 FEBA 생활로 바뀌었다. (GOP 즉 철책 경계 근무는 약 6개월에서 10개월 정도 하고 교대한다) 사고난 부대에 새로 온 대대장(중령)은 "무사고 100일 작전"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대대/중대 행정반에 커다란 숫자 상황판을 만들어 오늘이 무사고 며칠째인지를 표시하고, 아침마다 "무사고"를 강조하였다. 하도 듣다보니 장병들 머리에 "무사고"라는 세글자가 새겨질 지경이었다.

시간이 흘러 무사고 100일이 왔다. 그리고 그 날은 축제였다. 오전에 체육대회를 하고, 각 소대별로 불판이 주어지고, 우리는 모두 삼겹살을 먹을 수 있었다. 불판에서 갓 구어진 삼겹살을 상추와 함께! 그리고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술잔을 돌렸으며, 오후에는 간부와 병장과 이등병이 모두 얼굴이 벌개진채로 같이 누워 낮잠을 잤다... 내가 제대할 때 까지 네다섯번은 했던 것 같다. 어느날 어떤 신병이 작은 사고를 일으킬 때 까지.

대대장의 "무사고 100일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채찍과 당근 전술이랄까. 물론 병사들이 한 두달 뒤 고기먹자고 사고 안치고 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임병이 술에 살짝 취해 즐거운 낮잠을 잘 때, 즉 본인의 마음이 편안할 때, 갈굼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다. 말 한마디를 해도, '그래 좀 봐주지 뭐' 하는 느슨한 마음이 스며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고기값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좀 궁금하다. 대대 예산 혹은 부식비를 잘 빼돌려(?) 마련했을까, 아니면 간부들 전원이 얼마씩 갹출하였을까. 만약 간부들에게 얼마씩 걷었다면, 거기에 불만가진 간부는 없었을까...


GOP부대원들은 휴가 가기가 쉽지 않다. GOP 근무중에는 신병의 100일 휴가만 허가되었었다. 그래서 선임들 중에는 8~9개월씩 휴가 못간 사람도 있었다. GOP에서 철수 후 대대적인 휴가시즌이 시작되었다. 한 번에 부대원의 한 1/4 정도가 10일짜리 (병장 휴가) 또는 15일짜리 (상병휴가)를 나갔다. 나 역시 100일 휴가 후 약 8개월만에 15일짜리 휴가를 나갔다. 요새 내가 미국에서 한국 방문해도 보통 일주일을 안 머무는데, 15일이라니 길긴 길었다.

대학 과 사람들 술자리에 참석했을 때 였다. 난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라 그 사람들 얘기가 듣고 싶었다. 근 1년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었다. 그들의 얘기를 듣는게 좋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대한 1년 선배도 함께했다. 그 선배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 북부 어딘가의 연대 행정병이었는데, 두달에 한 번씩은 휴가 나오면서, 그 자리에서 자기 고생한 얘기만 늘어놓았다. 컴퓨터 타자를 얼마나 쳤다느니, 잠을 잘 못잤다느니, 간부가 갈궜다느니 하는 그저 그런 얘기들. 나에게 어디에 있느냐며, "전방? 고생하겠네.. 그런데 말이야" 하면서 자기 얘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 사람이 원래 말이 좀 많은 편이긴 했지만 슬슬 화가 났다.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난 진짜 오랜만에 사람들 만나는 건데, 그 소중한 시간에 쓸 데 없는, 내가 보기에 별 것도 아닌 군대 고생담이라니..

'이봐요 선배, 지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아요? 난 너무 오랜만에 휴가나왔고, 지금은 여기 사람들 얘기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니까 시덥잖은 군대얘기 그만하고 좀 닥칠래요?'
라고 생각했으나... 그 선배가 자기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뜨는 바람에 적당히 넘어갔다. (물론 내가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 그 때 깨달았던 것 같다. 사람은 진짜 모든게 자기 기준이구나. 자신이 겪은 고생이 무조건 우선이고 더 힘든거구나.


15일이라는 긴 시간은, 그러나 돌아보면 순간이었다. 동서울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원통행 버스를 타고 복귀한다. 아직 속초행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 빨랐다 느렸다, 산과 들판이었다 가게 간판이었다 계속 바뀌는 창밖을 보며 지난 15일을 돌아본다. 그리고 지금 돌아가고 있는 곳을 떠올리며 적응을 준비해본다. 그런데 문득, '즐거운 외출이었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집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이제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생각, 그리고 바로 느끼는 의아함. 내가 마음 속으로는 그렇게 답답해하고, 싫어하고, 그러면서도 내 마음 한 켠은 그렇게 이미 그 곳에 적응되어 있었다. 소름... 아무리 그래도 "집"이라니...

내 마음은 그렇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였나보다. 발버둥쳐도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이미 순응했나보다. 그래서 다행히 큰 탈 없이 제대할 수 있었나보다. 그래, 순응해야지, 안하고 계속 부딪히면 병 생기겠지.
잘했어. 수고했어. 젊은 시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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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네요. 저도 후임하나가 초소에서 자살했어요. T^T
트라우마가 상당했는데... 저는 28사단 GOP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같이 생활하던 후임이 자살했다니 정신적 타격이 정말 상당했겠습니다.
28사단이 어딘지 찾아봤습니다. 주변에 지뢰가 특히 많고, (말라리아를 비롯한) 각종 질병이 심하다는 내용이 있네요. 고생하셨어요.
전 제4땅굴 근처, 강원도 해안이라는 작은 읍내 근처였습니다. 지대가 높아 모기는 별로 없던게 다행이었어요.

네, 한 때 제 집이 강원도 전방이었네요 ^^

boddhisattva님이 dj-on-steem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boddhisattva님의 TOP 200 effective Steemit curators in KR category for the last week (2018.07.02-201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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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거수일투족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지적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산다는거 힘들죠... 밉지만 그래도 동기/선후임과 정이 들면 가족처럼 느껴질 때도 있구 첫휴가 후 복귀할 때엔 죽을 맛이었는데 적응되니까 버틸만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어설픈 표현으로 내 경험이 평가 절하되는게 싫었다. 그래서 누군가 힘들지 않았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도 그냥 웃어 넘길 뿐이었다."

이 문장 참 공감하는데 '너가 말을 안 하는거 보니까 꿀빤 것 같다'고 말한 대학원생 친구가 생각나네요. 지금쯤 전문연하고 있을텐데.

가끔 그렇게 정확히 따박따박 얘기를 해줘야 알아듣는 친구가 있더라구요. 전문연이면 훈련소는 다녀올텐데, 다녀와서 '너 정말 고생했겠더라' 하면 괜찮은데, '내가 말야 거기서 어쨌는지 알아?'로 얘기 시작하면 그 친구는 좀 멀리 하셔야 할 듯 하네요 ^^

스팀잇 하면서 흔하지 않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댓글이군요. 그런 공익/행정/전문연 하시는 분들도 나름 고생하시는거 아는데 다른 사람들 고충도 들어주고... 말 하지 않아도 힘든 일이 있겠거니... 알아줬으면 해요.

zorba님이 dj-on-steem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zorba님의 [2018/7/9] 가장 빠른 해외 소식! 해외 스티미언 소모임 회원들의 글을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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