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에세이 5. 알수 없는 인생
유명한 가수 이문세 씨의 노래 중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명곡이 있다.
가사의 내용은 남녀의 사랑에 대해 시간이 지난 후 기대하지 않게 변한 현실에 대한 내용이지만 곡명은 누구나가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흔히들 타임 머신이 있다면 1주전으로 돌아가 로또 당첨번호를 알려줄 것이라고들 한다. (스티미언이라면 코인 가격을.......ㅋㅋㅋ)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어떨까. 누구나가 할 만한 상상이다. 병원에서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상황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좋았었을까.
여기 참 기구한 사건을 겪으신 두 분의 환자 이야기가 있다.(두 케이스는 모두 직접 진료한 경우는 아니지만 회진 중에 케이스를 보고 함께 공유해보고 싶었다.) 대개 건강에 급격한 이상을 가져오는 질환은 2가지가 있다. 외상과 혈관 질환. 외상이라 함은 교통사고나 추락 같은 중증 외상이 있을 수 있고 혈관 질환은 심장이나 뇌에 발생하는 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질환들이 있다.
"알 수 없는 인생"
#. 65세 남성
이 환자는 환자가 외과 의사이다. 65세면 일반적으로 은퇴를 계획하고 여생을 여행이나 취미생활을 하면서 즐거운 황혼을 계획할 시기이다. 그런 즐거운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시기에 비극은 찾아왔다.
이 환자는 새벽 2시경 집 안에서 자다가 평소 자던 침대에서 떨어졌다. 뭐 여기까지는 누구나 흔하게 일상생활에서 겪는 일이다. 자다가 침대에서 안 떨어져 본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그런데 이 환자는 운이 정말 없었다. 환자가 침대에서 떨어지면서 하필 상체부터 떨어졌는데 목이 꺾이면서 목뼈를 다친 것이다.
가족이 급히 119를 불러서 인근 병원에 방문하였고 거기서 시행한 MRI 상 목뼈가 어긋나면서 신경을 누르는 양상이 보여 대학병원으로 오후 1시 경 전원을 왔다.
빨간색 위쪽 화살표 친 부분은 경추 3~4번 사이의 디스크가 돌출되어 경추 4번 신경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이다. 아래쪽 화살표는 5~6번 디스크가 돌출되어 경추 6번 신경을 누르고 있으나 위쪽만큼 압박이 심하지는 않다. 침대에서 떨어질 때 목이 뒤로 과하게 꺾이면서 경추뼈가 어긋나서 디스크가 눌리고 눌린 디스크가 척수신경을 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목 주변 인대도 손상된 것이 MRI 영상에서 확인되었다.
손상된 부위를 자세히 보면 주변부는 검은데 안에 하얗게 보이는 부분을 관찰할 수 있다. 척수신경세포가 손상되며 염증을 일으켜서 세포가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신경은 뇌에서부터 아래쪽으로 신경을 전달하여 감각 및 운동을 담당하는데 중간 통로가 망가져 버리면 그 뒷부분은 조직에 문제가 없어도 뇌의 명령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환자는 그 병변이 하필이면 목이고 경추 5번부터 상지를 주로 담당하기 때문에 그 위인 경추 4번이 손상되면 상지 아래로는 신경이 전달되지 않는다. 즉 상하지 모두 사용할 수 없는 전신마비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신경외과 전문의의 검진 기록에서도 상지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하지는 근육을 까딱까딱 움직이는 정도만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 환자는 내원하자마자 바로 신경외과에 연락이 되어 응급수술을 진행하였고 현재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졌는데 전신마비라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이 보다 더할 수 있을까. 자기 전까지 멀쩡했는데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전신마비이다. 코인가격이 바닥 치는 것도 불행의 한 축에 속하지만 건강이 상한 것에 비할 수 있을까. 하물며 그것이 회복불가능한 건강의 손실이라면 더더욱 불행하다. (신경은 인체의 세포 중에서 한 번 상하면 회복이 안 되는 대표적인 부위이다. 그래서 뇌와 척수의 손상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직접 진료를 한 환자가 아니라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의문은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하지 못했던 이유와 이후 이 병원으로 전원오기까지 12시간이나 걸린 점이다.
자세한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정말 안타깝다. 환자가 잘 회복하기를 바란다.
#. 51세 여성
이 여성은 평소 앓고 있던 질환도 없던 건강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내원 1시간 전 전화를 받았는데 사업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일이 잘 해결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이 전화를 받고 5분 정도 후에 가족들과 밥을 먹다가 환자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119를 통해 응급실에 내원하였다.
응급실에 내원 당시 시행한 신경학적 검진에서는 환자가 전혀 무반응이었다고 한다. (신경학적 검진에 흔히 Glasgow Coma Scale 이라는 점수를 사용하는데 이 점수는 3점이 전혀 무반응이고 15점은 정상 컨디션인데 3점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의식이 없으면 보통 혀도 풀려서 기도를 막아 숨을 못 쉬게 되어 심장마비가 일어날 수 있어 기도를 최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에 이 환자는 급하게 기도확보 (=인공호흡기) 를 한 후 원인을 찾기 위한 검사를 시행하였다.
보통 의식 없는 환자에서는 원인이 크게 뇌, 대사 이상, 감염, 심장마비 등이 있어서 뇌 CT, 피검사, 심전도 등을 기본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데 이 환자는 원인이 뇌 CT 에서 확인되었다.
뇌의 대뇌피질은 표면적을 넓히기 위해 주름이 많이 잡혀 있어서 쭈글쭈글한 모습이 관찰되는데 이 환자는 뇌의 주름이 잘 안 보이지 않는다. 부종이 동반된 듯 하다. 아직 이 영상만으로는 판단이 어렵다.
원인이 밝혀졌다. 지주막하출혈 이다. 화살표 친 부위는 뇌척수가 들어있는 곳인데 뇌 안에서 생긴 출혈이 아니라 뇌척수가 있는 공간에 출혈이 생긴 것이다.
뇌 CT 에서 하얗게 보이는 병변은 출혈을 의미하는데 다른 컷에서도 잘 보인다.
이 환자도 급하게 신경외과에 연락이 되어 뇌혈관조영술을 시행했으며 범인이 확인되었다. 네이버 링크에서 알려주듯이 지주막하출혈의 흔한 원인은 대개 뇌동맥류이다.
명도 조절에 실패해서 잘 안 보일 수도 있는데 표시한 부분이 혈관이 꽈리처럼 늘어난 뇌동맥류이다.
확대해서 본 영상은 뇌동맥류가 조금 더 잘 보인다.
이 환자는 혈관이 늘어나서 생긴 뇌동맥류에 코일을 집어넣어 지혈을 해서 추가적인 출혈을 방지한 후 중환자실로 입실하였다. 그나마 위의 환자보다는 신경학적 손상 없이 회복할 가능성이 있어 다행인 경우이다.
질환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뇌동맥류가 노화와 동반되면서 있었지만 따로 검진을 받지 않아 모르고 지냈던 상황에서 일이 잘 풀렸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흥분해서 혈압이 갑자기 올라 늘어나있던 동맥류가 터지면서 지주막하출혈을 유발하여 뇌 안의 압력이 상승해서 뇌가 기능을 못하여 의식을 잃고 쓰러지게 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는 간혹가다가 성관계 중에도 흥분해서 뇌동맥류가 터지며 지주막하출혈로 오는 경우가 있다.)
이 여성 환자도 전화를 받고 5분 후에 본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10초 후의 일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하루하루 후회없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ps. 이 글의 주제와는 맞지 않지만 명곡 이문세 씨의 "알 수 없는 인생" 을 링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