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글] 고백

in #kr-daily3 years ago (edited)

손을 내민다. 거절 당한 적 없지만 거절 당한다. 다시는 손을 내밀지 말아야지.
무섭다. 두렵고 숨고 싶다. 없던 일로 만들고 싶다. 최대한 조용히 지내야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다시 내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나는 다시 손을 내밀고 다시 혼자 거절당하고 다시 혼자 조용히 굴에 들어가 있어야지 생각한다. 미련하다. 그런데 그런 미련함이 그나마 나를 고립시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정말 성격이 안 좋구나 깨달았다. 나는 자아가 비대하다 못해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그 피해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도망치는 역할을 맡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괜한 포식자였다면 여러 사람 상처줬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차라리 나를 고립시키며 살아온 건 불행 중 다행이다. 욕망을 절제하는 법을 일찍 배운 게 다행이다.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르고 글로 옮겨 적지 않으면 그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글을 쓰고 나서 해방감을 느끼며 깨달았다. 나는 재능이 없어도 쓰겠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쓸 수 밖에 없고 아무 보상이 없어도 아무 의미가 없어도 쓸 수 밖에 없다. 숨을 쉴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아무 것도 쓰지 않고 절대 살 수 없는 사람이었네. 세상에, 글을 선택한 게 아니라 글이 선택했구나.

제시님이 말한 건 아주 멋진 의미였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건 체념의 의미다. 글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인생의 낭비라도 별수 없다. 글을 쓰지 않으면 답답해서 살 수 없다고 나는 말했다. 찌질함에 몸서리쳐도 별수없다. 일단 이게 오늘의 나다.

욕망을 인정한다. 뭐든 쓰고 싶고 누가 보지 않더라도 창구 하나 정도는 만들고 싶다. 아니 이왕이면 같이 쓰고 싶다.쓰고 읽는 게 관계가 되길 바란다. 나는 글로 존재하는 인간이고 너의 존재를 글로 확인하고 우리가 글을 읽고 쓰고 숨쉬며 살았다는 증거를 느끼고 싶다. 혼자이고 싶지 않다. 그게 다야.


2021년 5월 22일, by 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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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J 이신가요?

제가 읽고 있습니다! 'ㅡ' ㅎㅎ
제가 글 쓰는 건 잘 못하지만, 읽는 건 잘합니당 'ㅡ' ㅋㅋㅋㅋ
그래서 저의 존재는 댓글로ㅎㅎㅎ

어흑 뉴발님 넘나 스윗해 ㅠ
뭔가 엄청난 투정을 부린 꼴이지만 감사드려요
뉴발 만쉐이

먹는다는 것은 때로는 섭취, 때로는 음미입니다.
살기위해 섭취하기도 하고, 즐기기위해 음미하기도 하고, 심사위원이 심사를 위해 음미하는 것은 업무이기도 합니다. 고물님이 글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고물님에게 제일 어울리는 의미일겁니다.
다만, 시험삼아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예를들어 생각을 풀어 놓는 의미의 글쓰기 결과물은 그 자체로도 의미있지만, 몇 년후 그렇게 쌓인 글들을 다시 다듬고 시간이 지나 또 다듬으면 그럴듯한 창작물이 나오니 초기의 글은 생각을 풀어놓는 의미에 추가로 원재료의 의미도 갖게됩니다.
취향에 따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든다거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집중하는 글을 써본다거나, 아름다움을 표현하다가 마지막에 살짝 반전을 주는 시를 써본다거나...
제가 오랫동안 발췌독하고 있는 '글쓰기 좋은 질문' 이라는 책도 추천드려봅니다. 샌프란시스코 예술가들이 글쓰기 소재 찾는데 도움될 짧은 질문 1300개 정도를 던진 작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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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있어 다행인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의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있어요~ 눈팅눈팅!!

엇! 저도 오이님 글 소리 소문없이 다 읽고 있습니다!!

글을 선택한 게 아니라 글이 선택했구나.

멋지십니다 ^^

말만 보면 멋있어보이지만 실뜻을 보면 멋지지 않아요.
나하님도 마찬가지 못 쓰면 병나지 않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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