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해야 할 일
붓다께서 라홀라에게 이렇게 물었다.
“거울의 용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비추어 보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라훌라가 대답했다.
붓다께서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와 같이, 신체와 말과 마음으로 행해지는 행위는 반드시 주의 깊게 비추어 본 후에 행하여야 한다.
그대가 몸으로 행동하고자 할 때마다, 그것을 이렇게 비추어 보아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러한 행동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혹은 둘 다 괴로움으로 이끄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고통으로 귀결되고 고통스러운 결과들이 있게 되는 부주의한 행동이 아닌지?”
그렇게 비추어 볼 때, 그것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혹은 둘 다 괴로움으로 이끌고, 그것이 고통으로 귀결되고 고통스러운 결과들이 있게 되는 것인지를 그대는 알게 된다: 즉, 그것은 고통으로 귀결되고, 고통스러운 결과들이 있게 되는 부주의한 행동인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유형의 어떠한 몸의 행동도 자신이 하기에는 확실히 부적합하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비추어 볼 때, 그것이 고통을 야기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안다면... 그것은 즐거움으로 귀결되고 즐거운 결과들이 있게 되는 주의 깊은 행동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유형의 어떠한 몸의 행동도 자신이 하기에는 적합하다.
그대가 몸으로 행동하는 중에도, 그대는 그것을 이렇게 비추어 보아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이러한 행동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혹은 둘 다 괴로움으로 이끄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고통으로 귀결되고 고통스러운 결과들이 있게 되는 것이 아닌지?”
….
만약 그렇게 비추어 볼 때, 그것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혹은 둘 다 괴로움으로 이끄는 것이고, 그것이 고통으로 귀결되고 고통스러운 결과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비추어 볼 때,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지속할 것이다.
,
그대가 몸으로 행동한 후에도, 그대는 그것을 이렇게 비추어 보아야 한다:
“내가 한 이러한 행동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혹은 둘 다 괴로움으로 이끈 것은 아닌지? 그것이 고통으로 귀결되고 고통스러운 결과들이 있게 된 것이 아닌지?”
….
만약 그렇게 비추어 볼 때, 그것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혹은 둘 다 괴로움으로 이끌었고, 그것이 고통으로 귀결되었고 고통스러운 결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그것을 고백하고, 드러내고, 그것을 스승이나 신성한 삶에 정통한 동료에게 숨김없이 알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고백하고 미래에는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비추어 볼 때, 그것이 고통을 초래하지 않았다는 걸 안다면... 그것은 즐거움으로 귀결되고 즐거운 결과가 있는 주의 깊은 행동이었음을 안다면, 그러면 그대는 선한 정신적 자질들 안에서 상쾌하고 즐거우며, 숙련된 정신적인 자질을 유지해야 한다.
그대가 말을 하고자 할 때마다, 그것을 이렇게 비추어 보아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러한 말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혹은 둘 다 괴로움으로 이끄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고통으로 귀결되고 고통스러운 결과들이 있게 되는 부주의한 말이 아닌지?”
……..
그대가 마음으로 생각을 하고자 할 때마다, 그것을 이렇게 비추어 보아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러한 정신적 행위가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혹은 둘 다 괴로움으로 이끄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고통으로 귀결되고 고통스러운 결과들이 있게 되는 부주의한 생각이 아닌지?”
……..
……..
라훌라여, 과거에 자신의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를 깨끗이 정화시킨 모든 바라문(Brahman)과 수행자들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들을 반복적으로 비추어 보곤 하였던 것이다,
미래에 자신의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를 깨끗이 정화시킬 모든 바라문(Brahman)과 수행자들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들을 반복적으로 비추어 볼 것이다,
현재 자신의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를 깨끗이 정화시키는 모든 바라문(Brahman)과 수행자들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들을 반복적으로 비추어 보는 것이다,
따라서 라훌라여, 그대는 자신을 이렇게 훈련시켜야 한다,
‘나는 자신의 신체적 행위를 반복적으로 비추어 봄으로써 깨끗이 정화시킬 것이다.
나는 자신의 언어적 행위를 반복적으로 비추어 봄으로써 깨끗이 정화시킬 것이다.
나는 자신의 정신적 행위를 반복적으로 비추어 봄으로써 깨끗이 정화시킬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대 자신을 훈련시키는 방법이다.”라고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MN 61, Ambalatthika-rahulovada Sutta 중에서 발췌)
~~
이 세상 사람들 중 과연 죽어서 지옥, 축생, 아귀,아수라(4악처)에 가고자 하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천상에 가는 이들은 아주 적고, 그러한 악처로 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고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악행을 삼가고, 반드시 10가지 선행을 실천하여 공덕을 쌓으라고 하셨다.(역자)
~~
(10가지 선업)
첫 번째 선업은 관대함, 보시(베풂)이다.
우리는 반드시 관대함을 실천해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지닌 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베풂으로써, 공덕이라고 하는 선업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업은 미래의 삶들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관대함은 또한 우리가 집착하지 않도록 돕는다. 예를 들면, 내가 이런 녹음기에 집착할 수 있다.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게 되면, 나는 그 기계를 포기할 뿐만 아니라, 아울러 그것에 대한 집착도 그만두게 된다. 나는 탐욕(lobha)이라는 집착을 제거하게 된다. 그리고 마음이 탐욕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그것은 자유롭게 되고 깨끗하며 고요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자주 베풂(dana)을 실천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두 번째 선업은 도덕성이다. 도덕성은 계를 받고 그것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재가 불교신자들은 최소한 오계를 지킬 것이 요구된다. 생명체를 죽이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잘못된 성행위에 빠져서는 안되면, 거짓말하지 말고, 술이나 마약과 같은 약물을 마셔서는 안된다.
안거(집중수행기간)에 들어가면, 3가지 계율을 추가하여 총 8계를 지켜야 한다. 추가되는 3가지는 정오를 지나서 음식을 금하고, 오락과 장식을 금하고, 높고 화려한 침상과 의자를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
계(sila)로 알려진 도덕성은 집중(Samadhi, 삼매) 명상의 토대가 된다.
세 번째 선업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대가 이번 생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업이다. 바로 위빠사나(vipassana) 수행을 하는 것이다.
네 번째 선업은 존경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 특히 나이 드신 분을 존중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을 존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이런 방식으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그리고 스승과 학생의 관계는 존중의 원칙에 의거 지켜진다.
다섯 번째 선업은 다른 이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봉사다. 예를 들면, 노약자나 여성이 길을 건너는 것을 돕거나 그들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것이다. 또 다른 형태의 봉사는 삼보(붓다, 담마, 상가)에 봉사하는 것이다. 사원을 청소하거나 보수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봉사다.
여섯 번째 선업은 공덕을 나누는 것(회향)이다.
그대가 공덕을 얻었을 때는 반드시 그것을 다른 존재들과 공유하여야 한다. 그렇게 공덕을 나누는 것
자체가 또한 공덕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존재들과 공덕을 나눈다. 공덕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공덕의 일부를 다른 존재에게 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공덕을 얻을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벽지불(Pacceka Buddha)에게 만약 공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되면, 그 공덕이 줄어드는지를 물었다. 벽지불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대가 촛불을 들고서 다른 사람의 초에 그 불을 붙이면, 그대 손에 있는 촛불은 그 불이 다른 사람의 초에 불이 붙이더라도 줄어들지 않는다. 실제로 그것은 새롭게 붙은 촛불로 인하여 더욱 밝아지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대가 공덕을 나눌 때, 그대의 공덕은 줄어들지 않고 실제 늘어난다. 그 이유는
그대가 새로운 공덕을 얻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선업은 다른 이들의 공덕을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두(sadhu), 사두, 사두’라고 말하는 것을 뜻하며, 그 의미는 다른 사람이 공덕 되는 행위를 할 때, ‘훌륭합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대와 함께 공덕을 나눌 때도, 그대는 ‘사두,사두,사두’라고 말한다. 이 의미는 그대가
그들의 공덕을 함께 기뻐하고 그렇게 함께 기뻐함으로써 그대 자신의 공덕을 얻게 된다.
여덟 번째 선업은 담마를 경청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한 공덕이며 선한 행위이다.
담마를 들음으로써 그대는 담마를 알게 될 것이고, 담마를 알게 됨에 따라 불선한 행위들을 삼가고 대신 선한 행위들을 하게 된다.
여덟 번째 선업과 관련된 아홉 번째 선업은 담마를 말하고, 담마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모두 선업을 짓고 있다.
마지막 열 번째 선업은 올바른 견해를 지니는 것이다, 이 의미는 업이란 완전히 자신의 소유이며, 자신만이 자신의 행위의 주인이고 다른 누구도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업에 책임이 없다는 앎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이러한 10가지 선업을 지닌다. 실제 이러한 선업들은 3개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것은 베풂과 지계 그리고 수행이다.
- 존경하고 봉사를 하는 것은 지계(sila)에 속한다.
- 공덕을 나누고 다른 이들의 공덕을 함께 기뻐하는 것은 베풂(dana)에 속한다.
- 담마를 듣고, 담마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그리고 자신의 견해를 바르게 갖는 것은 수행(bhavana)으로 분류된다.
*** 매일 수행을 통하여 마음의 평온과 지혜가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
[출처]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 (우 실라난다 사야도)|작성자 아난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