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T Column: 탈중앙화에 대해 알아보자
탈중앙화
탈중앙화는 중앙화의 반대개념으로, 블록체인에서는 흔히 투명하게 분산된 네트워크 시스템을 철학적으로 통칭하는 용어를 의미한다. 중앙화로 인한 특정기관이나 개인의 데이터 독점을 막기 위한 대응방안으로 생겨난 개념이다.
사이퍼 펑크
흔히 블록체인 탈중앙화의 뿌리는 사이퍼펑크 선언문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사이퍼펑크는 암호 기술을 활용하여 인터넷상의 대규모 감시, 검열에 저항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추구하는 사람을 뜻한다. 1990년대 초에 모습을 드러낸 사이퍼펑크 운동은 <암호전쟁>이 벌어졌던 1990년대와 이후 인터넷의 봄을 맞이했던 2011년에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사이퍼펑크는 암호를 뜻하는 ciper에 저항을 상징하는 punk를 붙여서 만든 단어였다.
이렇게 등장한 사이퍼펑크의 활동은 인터넷의 시작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들은 주로 사이퍼펑크 메일링 리스트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논의하고 지식을 공유했다. 사이퍼 펑크 메일링 리스트는 1992년에 에릭 휴즈, 존 길모어, 팀 메이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곧 사이퍼펑크 활동가들의 주요 네트워크가 되었다. 사토시 또한 사이퍼펑크 메일링 리스트에서 활동한 흔적이 있으며, 2008년 10월에 이곳에 비트코인 백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여기서 위키리크스의 수장 줄리언 어산지와 비트코인의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 같은 사람들이 나오기도 했다.
사이퍼펑크는 등장할 때부터 국가, 다국적기업과 같은 집단에 의해 개인의 정보가 수집되고 감시되는 사실을 경고했다. 그리고 이후 전진 NSA(미 국가보안국)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프리즘 프로젝트로 인해 사이퍼펑크의 경고는 정확히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프리즘 프로젝트는 2013년 6월 10일, 전직 NSA 계약요원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이 가디언과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미국 국가보안국(NSA)과 영국의 GCHQ 등의 정보기관들이, 전세계 일반인들의 통화기록과 인터넷 사용정보 등의 개인정보를 PRISM이란 비밀정보수집 프로그램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수집, 사찰해온 사실을 폭로한 내부고발사건을 의미한다. 또한 프리즘 프로젝트 사건 이후로도 국내 국가기관의 카카오톡 메신저 사찰 논란,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사건 등으로 인해 사이퍼펑크의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더 널리 퍼지게 되었다.
월 스트리트 점령운동
사이퍼 펑크가 탈중앙화의 배경에 기술적/철학적 배경을 제공했다면, 월 스트리트 점령운동은 탈중앙화가 사회적/경제적으로 주목받게 되는 실마리를 마련했다. 오큐파이 월 스트리트 운동은 2011년 9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월 스트리트에 위치한 주코티 공원을 거점으로 73일간 전개된 월가 점령 시위다. 발생한 원인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그 위기를 촉발한 장본인인 월가 금융인들이 구제 금융을 받은 돈으로 보너스 잔치를 벌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월 스트리트 점령운동은 세계적으로도 이슈가 되어 각지에서 일어났으며, 한국에서도 오큐파이 여의도란 이름으로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 운동의 결과로 인해 대중들은 잠시나마 세계경제의 중앙화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때마침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월 3일 처음 발행된 비트코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일부 사람들은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를 통한 대안경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기존 화폐가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것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앙은행이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가 화폐의 역사는 이 믿음을 저버리는 사례들로 충만하다. 은행 또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맡긴 돈을 잘 보관하고 전자적으로 잘 전달할 것이라는 신뢰. 하지만 은행들은 그 돈을 신용 버블이라는 흐름 속에서 (함부로) 대출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월 스트리트 점령 운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였다.
탈중앙화의 오늘날
2017년에 일어난 블록체인 열풍으로 이제 탈중앙화라는 개념은 뜻은 모르더라도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용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으로 대표되는 탈중앙화의 현재흐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먼저 아쉽게도 기술적/정치적 한계로 인해 탈중앙화 열풍은 한 층 수그러든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기술적 문제에서는 특히 ‘확장성 문제’로 일컬어지는 속도의 한계가 현재진행 중이다. 이로 인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생성되는 각종 암호화폐의 거래량을 탈중앙이 감당하지 못해, 암호화폐 거래소가 대부분 탈중앙이 아닌 중앙화 방식으로 작동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하고 있다. 또한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부분도 탈중앙화가 확장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2018년동안 블록체인/암호화폐와 관련된 법안을 만든다고 여러 번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현실은 아직까지 관련 법안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아무리 탈중앙화에 책임주체가 없다고 해도 노골적인 금융사기에 대한 기본적인 법안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오늘날의 탈중앙화는 초반의 이론적인 개념이 현실에 부딪히고 있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다행히 지금도 탈중앙화에 대한 긍정적인 흐름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탈중앙화의 확장성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 확장성을 늘리기 위한 시도는 이더리움을 필두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당장 기술적인 한계가 극복이 되지 않더라도 제도권과 연계하여 중앙화와 탈중앙화의 장점을 살린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구성해 볼 수 있다. 빠른 처리속도가 관건인 금융거래 등의 영역에서는 중앙화 방식을 이용하면서도, 신원인증 등의 투명성과 보안이 보장되어야 하는 곳에서는 탈중앙 네트워크를 도입하는 것이다.
SH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