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베르세르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n #berserk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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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켄타로가 1989년부터 일본 만화 잡지 『영애니멀』에 연재한 『베르세르크』는 이야기 중반 「단죄」 편 이후 크게 방향을 틀며 선회했다. 그로데스크한 극의 정서도 많이 중화되었을뿐더러, 가츠가 ‘파티’를 결성해 모험을 떠난다. 이런 흐름은 「판타지아」편 전후로 완연한 급류가 되어 흐른다. 주인공 가츠와 무리를 이루는 동행이 하나둘 늘어가는 것이다. 구성원의 신분과 정체성도 다종다기해진다.


이야기 도입부, 그리고 이야기 초반 「황금시대」편이 끝난 후엔 ‘가츠 +엘프 파커’ 단 두 명의 파티가 사도 사냥 순례를 벌였다. 이야기 중반 「단죄」편 직후부터 캐스커를 데리고 다녔고, 파르네제와 세르피코, 이시도르가 동료로 합류했다. 「천년 제국의 매」편에 들어서는 꼬마 마녀 시르케가 가세했다. ‘전사 + 마검사 + 마법사 + 견습 전사 + 견습 마법사’의 전형적인 판타지물 5인 파티를 결성한 것이다.


「천년 제국의 매」편 「응도의 장」에서는 마니피코와 로드릭, 재회한 아단 단장이 합세했다. ‘이스의 항해왕’ 로드릭의 군함을 타고 가츠 일행은 엘프의 낙원 엘프헬름으로 떠난다. 거기서 다시 이스마라는 새 인물이 합류한다. 이때부터 가츠 파티는 상당히 집단적인 양상으로 움직인다. 지휘관(선장)과 전투원(선원)이 있으며, 전투 양상도 5인 파티 대 다수의 ‘유격전’에서 함선 대 함선 또는 함선 대 해양 괴수의 대규모 인원이 참전하는 ‘전면전’으로 바뀐다.


최근 연재분 몇 편에서는 주목할 만한 징후가 돌출한다. 조만간 엘프헬름의 ‘꽃 보라의 왕’과 만나게 될 것을 암시하며 가츠 선단은 인어 군단의 호위를 받아 항해를 재개한다. 챕터가 바뀌고, 그리피스를 찾아가는 매의 단 최후의 생존자 리케르트 일행의 여정으로 전환된다. ‘매의 수도’ 팔코니아에서는 매춘부 루카와 쿠샨 제국의 요술사 다이바가 재등장한다. 앞선 챕터들에서 스쳐 간 비중 있는 조역들을 앞으로 소환할 것을 암시한다.     

최근 연재분 337화에서는 대단히 중요하고 상징적인 상황이 발발한다. 리케르트가 재회한 그리피스의 따귀를 올려붙이는 것이다. ‘빛의 매’ 그리피스는 현세의 어떤 칼도 닿을 수 없는 강한 운, 판타지아 세계의 창조주다(적군이 들끓는 전장에서 그리피스를 겨냥한 무수한 화살이 저절로 휘어져 빗나가던 장면을 떠올려보라). ‘인간’과 ‘인간이 아닌 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복속하길 희구하는 초월자의 면전에서, 그의 손길을 뿌리치며 육체에 응징을 가한 것이다. 이것은 현세의 섭리를 벗어난 ‘고드 핸드’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의 피와 살로 다시금 전생한 그리피스의 초월성에 필연적으로 내재한 인간적인 것의 편린, 한 가닥 균열을 내포한다. 그 균열이 매의 단이란 과거에서 비롯함을 짐작할 수 있다.


리케르트는 매의 단을 몰락시킨 일식을 비껴간 단 하나의 단원이다. 빛나던 ‘황금시대’의 기억을 오염 없이 간직한 유일한 인물, 명실상부 매의 단이 남긴 마지막 유산이다(매의 단 생존자는 리케르트 말고도 그리피스와 가츠, 캐스커가 있지만, 그리피스는 매의 단을 배신한 장본인이며, 가츠와 캐스커는 트라우마 없이 과거와 마주할 수 없다). “내가 아는 그리피스는 하얀 매야, 내가 섬기던 매는 빛의 매가 아니니까.” 리케르트는 그리피스에게 등을 돌린다. 매의 단의 ‘상속자’가 그리피스가 재건한 매의 단의 정통성을 부인했다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피스를 떠난 리케르트가 가츠에게 돌아갈 것이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머지않아 엘프헬름에서는 꽃 보라의 왕의 권능으로 매의 단 자체였던 캐스커가 마음을 되찾고 그 시절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베르세르크』란 이야기의 종착점은 결국 가츠와 그리피스의 최후 대결이다. 지상에 건국한 유토피아, 창대한 왕국의 주인이 된 그리피스를 소수의 인원이 상대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가츠 주위에는 벌써 다양한 인물이 모여들었고 앞으로도 모여들 것이다. 엘프헬름에서도 지원군을 얻을 것이며, 다이바·바키라카 일족 같은 과거의 등장인물 또한 삼삼오오 합세하지 않을까. 즉, 하나의 용병 부대, 원조 매의 단이 부활한다. 

인간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한 광전사(가츠), 용병 부대를 진두지휘하던 여전사(캐스커), 유계와 교섭하며 마법을 부리는 마녀(시르케), 바람의 망토를 입고 바람의 검을 휘두르는 마검사(세르피코), 힘과 지혜를 익혀가는 견습 전사와 견습 마녀(이시도르·파르네제), 물과 육지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인어(이스마), 강력한 해군 선단을 보유한 ‘이스의 항해왕’(로드릭), 우악스러운 완력으로 철봉을 휘두르는 봉술의 달인(아단), 온갖 무기를 빚어내는 최고의 대장장이(리케르트), 쿠샨 제국 제일의 요술사(다이바)와 암살단(바키라카 일족), 굳세고 당찬 생활력을 지닌 살림꾼(루카).


인간의 몸이거나 사도가 아니거나, 현세의 섭리를 등에 인 다양한 정체성의 뛰어난 인물들(부활한 매의 단)이 전생한 초월자들(빛의 매의 단)과 대결한다. 이것은 불완전한 유한자가 불완전함을 초극한 무한자와 대결하며 유물론적 한계를 버텨내고 극기하는 『베르세르크』 특유의 주제의식에 그대로 안치되는 결론이다. 『베르세르크』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중세 활극에서 시작해, 사악한 반영웅이 더 사악한 괴물을 사냥하는 어두운 영웅 전기를 지나, 소수의 동료가 판타지 세계를 모험하는 회색빛 동화를 거쳐, 신의 군대와 지상의 군대가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아마겟돈으로 종착하는 것이다.


『베르세르크』는 환상과 형이상학의 서사다. 내세와 현세를 아우르는 인과율과 ‘유일신’의 존재를 상정한다는 점에서 신학적이며, 그것도 기독교적 신학에 닿아있다. 하지만 일신교적 세계관을 다신교적 세계관과 호환하고, 형이상학의 근원을 형이하학으로 육화한다는 점에서 반(기독교)신학적이다(기독교적 유일신이 장엄한 형상의 고깃덩어리로 묘사된다). 유일신에게선 지선至善이 거세돼있고, 운명을 관장하는 전지전능에는 아주 작고 얇은 틈새가 있다.


『베르세르크』에서 선과 악, 신성과 악마의 경계는 뒤집히고 무화돼 있다. 신약성서 『요한 계시록』은 예수의 재림과 세계의 종말, 신과 악마의 최후 결전, 새로운 ‘천년 왕국’의 도래를 알리는 예언서다. 빛의 매의 강림, 암흑과 비탄에 휩싸인 세계, 가니슈카 대제의 재전생과 해골 기사의 일격으로 완성된 인과율, 그리고 ‘천년 제국’ 팔코니아의 도래. 의심의 여지없이 그리피스는 임재한 예수요, 세계를 구원하는 신성한 사도다. 그러나 빛의 매 그리피스는 ‘검은 매’ 페무토이며, 페무토는 마족의 사도다. 그가 이끄는 전마병을 과연 신의 군대라 할 수 있는가? 그것들의 형상은 악마 그 자체가 아닌가? 그리피스는 낡은 세계의 구원자(빛의 매)인 동시에 종말자(검은 매)요, 가츠는 천년 제국의 종말자(검은 검사)인 동시에 구원자(하얀 검사: 가츠에게 돋기 시작한 흰 머리칼)다. 신의 군대와 지상의 군대 또한 가츠의 매의 단과 그리피스의 매의 단으로 위상 반전되어 있다. 『베르세르크』는 물구나무 선 요한 계시록이며, 흑백 동색의 불가적 세계다.


여기엔 선과 악, 신성과 마도의 구분 따위가 없다. 그리피스가 개벽한 낙원에서 신민들은 과연 이전보다 불행한가? 비옥한 대지와 끝없이 수확하는 양식, 고도로 발달한 건축물이 우뚝 선 도시는 악마들의 힘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모든 것이 그 안에서 평화롭다. 그리피스 안에서 선과 악은 껍질을 잃고 융해되어 있다. 그것을 세계의 종말이나 구원이라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가? 『베르세르크』가 노정하는 세계관은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의 공존이다. 내 의지 바깥에 존재하는 거대한 의지를 인식하고, 내 인식 바깥의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 그리피스의 신세계는 곧 그러한 공존의 이상이 완벽하게 구현된 유토피아다. 『베르세르크』의 아마겟돈에는 형이상학적 가치판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츠가 그리피스와 대결하는 이유는 거창하고 비장한 사명감 따위가 아니다. 펄떡거리며 몸부림치는 범속한 날 것의 원한감정밖에 없다.     

『베르세르크』의 인물과 사건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숭고한 사상과 이념, 신앙과 선악이 증발한 수챗구멍에 눌러 붙은 정념과 욕망, 충동과 생존 투쟁, 인간적인 것의 중핵 같은 찌꺼기. 피아를 가리지 않고 주요 인물들은 외상적 사건을 안은 채 뒤틀려 있으며, 인간적 결핍이 실존적 위기와 부닥칠 때 베헤리트는 인과율의 문을 연다. 사도들은 ‘인간으로서의 결핍’의 반동을 극대화하여 분출하는 형태로 전생한다. 저 모든 신화적 사태를 초래한 것 또한 어린 시절 그리피스의 어스름한 동경의 기억이 아니었던가? 그리피스의 초월성이 그토록 경이로운 자락을 드리우는 것도 그에게는 불안과 근심, 격정과 분노, 후회와 두려움, 반성과 얽매임 따위 어떠한 인간적 번민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서, 가츠와 그리피스는 정확히 대극에 서 있다.


세계의 톱니바퀴는 현세 너머의 의지, 인과율에 의해 움직인다. “있어야 할 때에, 있어야 할 사람에게” “지금 버리더라도 언젠가 돌아오게 되어있듯” 운명의 매듭은 시작과 끝을 내정한다. 그러나 그 전능함에는 사금파리같이 미소한 틈새가 있다. 운명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은 다름 아닌 인간의 선택이다(그리피스의 전생 의식 “바친다”, 플로라의 대사 “운명은 원형이 아니라 나선형이에요”). 파멸의 예언에 굴복하지 않고 처절하게 항거하는 광전사(버서커Berserk)의 의지처럼.


『베르세르크』는 거대하고 작은 이야기다. 이것은 세상의 운명을 건 싸움이지만, 무의식(id, ‘검은 개’로 표상되는 광전사 갑옷의 죽음충동)을 다스리고 초자아(superego, 사도·그리피스·베헤리트·인과율)의 율법에 반역하며 개인의 자아(ego)를 사수하는 싸움이다. 한편으론 (“등짝을 보자”와) ‘일식’으로 상징되는 치명적 트라우마에 맞서 부서진 자의식을 재건하는 심리 드라마다. 그 싸움과 모험의 노정에서 관계와 유대감의 가치를 회복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며 자립하는 성장 드라마다.


『베르세르크』는 형이하학적 세계에 범람한 형이상학적 세계, 형이하학과 형이상학의 긴장과 융합을 매혹적인 시선으로 응시하며,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 천착하며 내기를 건다. 신을 운명의 피와 살로 빚어 지상에 끌어내리고, 인간과 육박전을 벌이게 한 후 둘 사이 영토선을 논구하는 웅혼한 걸작이다.


중대한 갈등이 예고된 복선 몇 개가 있다. 가츠가 소지한 베헤리트와 캐스커가 낳은 마물, 기억을 되찾고 가츠와 그리피스 사이에 놓일 캐스커, 가츠의 매의 단과 그리피스의 매의 단이 벌일 최후 결전에서 기로에 서게 될 팔코니아 주민들. 초월적 존재에 맞서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것인지, 인간들은, 인간으로서,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지. 인과율의 성채 앞에서 인간의 의지와 선택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말하였듯, 그 선택에 옳고 그름 같은 건 없다. 지상의 군대와 신의 군대가 펼칠 아마겟돈은 다만 운명 앞에 선 인간의 싸움의 향배를 가리킬 것이다. (20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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