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난 무조건 아저씨랑 끝까지 갈 거고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2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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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틀 동안 배운 게 있어
미루고 피하고 숨겼다가
얼마나 더 끔찍한 일들이
두고두고 일어나는지
내 눈으로 다 보고 왔어
내 손에 피 안 묻히려다가
내 주변이 어떻게 되는지
이제 알았어

_ 7화 "난 무조건 아저씨랑 끝까지 갈 거고"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성아는 혼자였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모두가 함께였지만, 성아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러니 그 숲은 성아에게만 아무도 없는 숲이다.



'성인 아이'의 줄임말인 듯 보이는 성아는 대단한 빌런으로 나오지만 누구에게도 그녀 자신의 말처럼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진 않는다.



"어차피 아저씨는 딸 무사히 구할 수 있고 친구는 뭐 좀 다치기는 했지만 나을 거예요. 다시 여기서 잘 살 수 있어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 수 있어요."



누군가를 죽이기도 했으니, 살인자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이 '성인 아이'에게 유의미한 '아무도'는 아버지이거나, 그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이만이다. 자신은 경험해 보지 못한, 그리고 여전히 갈구하는 그들.



파더 콤플렉스를 베이스로 깔고 아버지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며, 또한 분노를 폭발하며, 성아는 머리부터 주먹까지 그 힘을 연결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배운 듯하다. 그 힘은 피를 내뿜으며 헐크처럼 가슴을 찢고 쏟아져 나오고. 유의미한 '아무'가 아니면 어차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지만, 유의미한 '아무'에게는 위협을 가할 뿐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다. 사랑하고 싶고 관심받고 싶으니까. 그래서인지 성아를 가장 분노케 하는 지점은 전화를 씹거나, 나타나지 않거나.



연쇄살인범조차 죽어가는 어머니의 비호를 받건만, 성아는 어떤 순간에도 비호를 받지 못한다. 물론 주민서비스 같은 법적 보호 서비스는 호적상의 아버지가 충실히 보장해 주지만. 기호와 종두의 연대, 고아인 상준에게마저 주어졌던 경옥의 관심과 보호, 심지어 이웃사촌에 불과한 영하와 용채, 세탁소 주인 간의 연대만큼도 그녀에게는 없다. 불쌍한 성아.



고민시의 신들린 여기에 성아를 연민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는 옥수수밭에서 혼자 쓸쓸하게 담배 연기를 피워대는 그녀의 뒷모습은 구조신호를 보내는 조난자의 그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드러나지 않은 그녀의 성장배경에 분노와 집착, 결핍과 갈구가 기가 막히게 빚어져, 붉은색 미장센을 타고 뚝뚝 흘러넘칠 때는 그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져 버리기까지 했으니,



난 무조건 아저씨랑 끝까지 갈 거고



끝까지 함께 가는 이들이 소중한 이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성아만 갖지 못한 등장인물들의 느슨한 연대라도 인생을 살아 볼 만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어디 그런가. 느슨한 연대는 실은 상준의 모텔을 망하게 한 악질적인 관심과 소문이며, 개구리들을 비명횡사하게 하는 시기와 모함이 된 지 오래니. 어쩌면 우리 모두 성아처럼 아무도 없는 숲을 헤매고 다니고 있는 것이지. 너도 나도 우리모두.



"난 무조건 아저씨랑 끝까지 갈 거고'



저 말이 마음에 콕 박혀서 매일 피떡칠을 한 토마토 파스타를 먹더라도 성아와 식탁을 마주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다들 그렇게 장미의 전쟁을 하고 있으니,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판타지인지는 오래되었다. 하지만 성아가 듣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겠지.



"아빠가 금방 다 해결하고 데리러 갈게."



물론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 모두에게 공평하게, 자신의 아버지의 딸을 죽음으로 모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아무'라도 "아빠가 금방 다 해결하고 데리러 갈게."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면 성아는 기호처럼 다른 인생을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었을까?



재앙이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매일 전투를 벌여야 했던 성아는 '미루고 피하고 숨겼다가 얼마나 더 끔찍한 일들이 두고두고 일어나는지'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었다. 그리고 그 일은 느슨한 연대에 기대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주는 경고 같은 것이다. 이 드라마가 판타지인 것은 서로를 돌보는 친구들을 가진 등장인물들이고, 이 드라마의 현실성은 성아와 같은 운명의 도전이지.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운명의 힘 말이다. 그 끔찍한 힘.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려졌다.
쿵! 소리가 났을까? 안 났을까?



쓰러진 건 성아다.
쿵! 소리가 났을까? 안 났을까?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87.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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