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오해하지 마라.
하나님에 대해 실망과 낙담, 원망과 불평을 쏟아보신 적이 있으신가? 필자가 오래전에 사업에 실패하고 오랫동안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그랬다. 그간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다고 생각했지만 삶은 정반대였다. 잘나가던 직장에 폼 나게 사표를 던지고 야심차게 시작한 사업은 실패로 끝나서, 바닥을 모르는 빚더미에 올랐기에 기약 없이 눈물 젖은 빵을 씹어야 했다. 그 후 필자의 인생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말 안 해도 아실 것이다. 신앙은 바닥을 기었기에, 주일에 1시간짜리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고역이었으며 기도해본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가끔씩 하나님에게, 제발 나를 내버려두라는 식의 반항으로 만신창이가 된 삶에 대한 분풀이를 해댔다. 그렇게 아쉽게 청춘이 흘러갔다.
필자만 그런 추억이 있는 게 아닐 것이다. 필자에게 상담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랬으며, 최근 기도훈련을 요청한 학생들의 삶의 모습도 필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항변은 왜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는데, 축복은커녕 불행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생을 맞닥뜨려야 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천국은 당연한 선물이고, 이 땅에서 하는 일마다 잘되고 성공하여 부유한 삶을 얻을 거라는 보상심리가 깔려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러한 생각의 근거는 그동안 교회에서 수도 없이 들어왔던 설교덕분이었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사업이나 성공을 성공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하나님은 알라딘의 램프를 문지르면 펑하고 나타나서 소원을 물어보는 요정 지니가 아니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면 마지못해 재산을 떼어주는 부자 아버지도 아니다. 그분은 우리의 영혼과 생명을 지옥에 던져버리시는 두려운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그런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을 너털웃음을 날리는 친구로만 소개하고, 하나님을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분으로 알려준 덕분이다. 그 이유는 그래야 목사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할 것이 아닌가? 눈앞에 던져줄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헌금도 아낌없이 드리며 교회봉사도 군소리 없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두려운 공포의 하나님으로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여기고 벌벌 떨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조상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를 조상들의 입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이천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행적은 사랑과 자비로 일관하셨는지 모르지만, 다시 오실 예수님은 심판주로 오시는 분이다. 그래서 계시록의 요한이 묘사한 예수님은 인자하신 분이 아니라 두렵고 무서운 분으로 기록한 이유이다.물론 당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자유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당신에게 선물을 안겨주는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라, 생명과 영혼을 지옥의 불에 던져 넣을 수 있는 두려운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지만도 못한 피조물인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지, 당신의 욕망을 채워주지 않는다고 불평과 원망을 해댄다면 당신의 운명은 불 보듯 환하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격이기 때문이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2:4)
하박국서는 이스라엘이 당하는 환란과 역경에 대한 불평과, 왜 악인이 번성하는 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하박국은 유다에 횡행하고 있는 불의와 폭력을 불평했는데, 뜻밖에도 하나님이 악을 심판하실 때, 유다의 악보다도 더 악한 도구를 사용하실 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서 이 선지자는 먼지만도 못한 인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평가할 능력이 없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못 박고 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이 유명하게 된 이유이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많은 크리스천들은 하는 일마다 잘되고 성공하고, 부유하며 기도가 응답이 되면,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기뻐한다. 그러나 하는 일마다 꼬이고 실패의 연속이며 기도응답이 없으며, 상황이 절망스러우면 낙담에 빠져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 일쑤이다. 이는 하나님을 자신의 잣대로 제멋대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기 때문이다. ‘만홀’이라는 성경의 뜻은 비웃고 조롱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당신의 운명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땅에서 불행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지옥의 불길에 던져질 것이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욥1:9~11)
하나님이 욥을 두고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다고 말하자, 사탄이 시기하여 말한 대답이 위의 말씀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축복하심 때문이기에,축복이 사라지고 재앙이 닥치면 죄다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는 게 사탄의 설명이다. 당신이 하는 일마다 잘 된다면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겠지만, 당신에게 불행이 닥친다면 하나님을 불평하며 원망한다면 당신은 믿음이 없는 사람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희생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이 있다고 여겼겠지만, 실상은 믿음이 없었기에 자그마한 불행에도 불평하고 원망하며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까지가 당신의 한계이다. 믿음이 없는 당신에게 앞으로 닥칠 일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이 떠난 당신에게 귀신들이 찾아와서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