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을 보면, 당신이 누구인지 보인다.
필자는 페이스북에 크리스천 영성학교라는 페이지를 개설해놓았다. 많은 분들이 친구를 요청하여서 이를 허락하였기에, 칼럼을 올리러 들어가면 그들이 올리는 사진과 글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동영상이나 사진, 혹은 직장이나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일들을 올리고 있다. 필자는 그들의 삶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생각을 훤하게 읽을 수는 있다. 친척들을 방문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자의 처가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식구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교회에서 1%안에 드는 열정적인 교인이다. 그러나 가까이서 지켜보면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하고 싶다.
세속적인 사람
교회를 다니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든지,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없다면 세속적인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당연하다. 그러나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크리스천의 대부분이 세속적인 사람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예배의식이나 희생적인 신앙생활을 무미건조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외의 시간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처럼 살고 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 TV리모컨을 돌리거나 영화를 다운받아 보거나 컴퓨터게임이나 서핑에 몰두한다. 그리고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면 식구들이야기, 돈 버는 이야기, TV나 영화에서 본 이야기, 취미생활, 이웃, 직장동료나 상사 등 자신들의 관심사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에 대해서는 절대 의심하지 않고 있다는 게 기이한 일이다.
필자는 웬만하면 세속적인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피치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친구들이나 친척들까지 만나는 일이 없다. 그들을 만나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그들로부터 들은 아무짝에서 쓸모없는 얘기들이 기도하는 데 집중을 방해한다. 무엇보다도, 그들과 오랫동안 같이 있으면 필자의 영혼이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철저하게 삶의 가지치기를 해서 세속적인 사람들과 조우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귀신들이 지배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만나면 귀신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피곤하고 지치게 된다.
종교적인 사람
종교적인 사람들은 종교행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종교행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죄다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겠지만, 종교행위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적인 열심을 드러내는 자기의 의와 자기자랑 때문에 교회마당을 열정적으로 밟는 사람들이라면 종교적인 사람인 셈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략 교회 내에서 20~30%를 차지하고 있다. 필자에게 기도훈련을 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거나 상담하려는 사람들, 혹은 필자의 친인척 중에도 종교적인 사람들이 허다하다. 이들은 교회에서 하는 예배의식이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철저하게 준수하며, 대다수가 교회에서 드높은 직분을 가지고 이런 저런 감투를 쓰고 다양한 봉사를 하고 있다. 또한 교회에서 실시하는 기도회나 심방예배, 전도행사, 교육 프로그램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게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집이나 직장 등의 가까이서, 그들의 소소한 일상을 지켜보면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일상의 삶에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이 다니는 교회나 신앙생활, 교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기도와 말씀 등으로 하나님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그러한 모습은 그의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이 꽉 차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학생이 공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고 학교생활이나 친구 혹은 선생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는 것과 같다.
필자는 이들을 물끄러미 지켜보지만, 최소한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반응을 보일뿐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알려주고 싶기도 하지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교회에서 하고 있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나 하나님께 받았다고 주장하는 은혜 혹은 자신의 직분이나 신앙의 연륜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의 주장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그들을 설득시키려 하거나 논쟁하지 않는다. 끝도 없는 시간과 소모적인 에너지를 낭비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이 아니라 가까운 식구들이고 친척들이고 지인이라면 속이 타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평소에 그들의 영혼과 삶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나님을 절박하게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 한다. 그 기회라는 게 대부분, 그들이 불행한 사건이나 고통에 빠져서 갈급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 중에 있다고 죄다 필자의 얘기를 듣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강권적으로 움직여주어야 한다.
어쨌든 종교적인 사람들도 소소한 일상에서의 삶을 지켜보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없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입만 열면 하나님을 앞세우며 수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며 종교적인 열심을 내었지만, 그 속내나 목적이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자기자랑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 시대의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세속적인 사람들이거나 종교적인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쉬지 않고 기도하거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들일 생각이 없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찾고 있지만, 우리네 교인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즐기는 일을, 하나님의 뜻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누구보다 신앙행위에 열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그들의 소소한 일상을 지켜보면 하나님을 찾아서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생각이 없다. 그래서 그들 역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가 없이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이유이다. 안타깝고 기가 막히는 일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