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재는 리트머스시험지
믿음이란 모든 크리스천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며, 모두들 예외 없이 바위 같은 믿음을 소유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신이 생각하는 믿음과 일상의 삶에서 보여주고 있는 믿음에는 적지 않는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신앙의 연륜을 근거로, 사람들은 나름대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는 믿음이 성경적인 믿음이 아니라면 허망한 일일게다.
그렇다면 믿음이 있다는 증거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사람들이 믿음이 있다는 증거로 가장 많이 대는 것이 주일 성수나, 십일조, 봉사 등의 희생적이고 종교적인 신앙행위이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행위가 성경적이 아니라면 자기만족일 뿐이다. 목회자가 설교단상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을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자격은 목회자의 말이 아니라 성경적인 근거가 있어야하며, 그 근거가 성경적인 해석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
믿음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으뜸 되는 리트머스시험지는 마음의 상태가 평안으로 채워져 있는지 아님 걱정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하루 종일 자신의 생각을 채우고 있는 감정이 걱정과 염려가 많은지, 아니면 평안과 즐거움이 많은지 스스로를 잘 판단해보라. 만약 걱정과 염려가 많다면 당신은 믿음이 적든지 아니면 아예 없다는 증거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교회를 성실하게 다니지만 많은 염려와 걱정,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위태로운 세상에서 사는 자신들이 그러한 현상을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자신의 삶을 보호해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주신다고 믿고 있다면 왜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믿음이란 마음의 상태이다. 믿음이 굳건하다면 환경이 암울하고 상황이 부정적이어도 마음은 깊은 강같이 평안해야 한다.
믿음이 있는지 재는 두 번째 근거는 어떤 기도를 하는 지 살펴보면 된다. 규칙적으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있다면 일단 믿음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형식적인 기도(가슴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입으로 주여주여 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믿음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얕은 믿음의 소유자이다. 새벽기도회에 성실하게 나간다도 하더라도 기도시간이 10~20분에 그친다면 형식적인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성령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1시간정도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성령과 깊은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도 얼마나 많은 기도시간을 할애하고 있느냐를 보면 믿음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하루에 1시간을 하는 사람보다 2~3시간 이상을 하는 사람이 당연히 믿음이 돈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규칙적인 기도를 전혀 하지 않거나 형식적인 기도에 그치는 사람이라면 믿음이 없거나 적은 믿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종교적인 행사나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믿음의 잣대를 재는 이들이 너무 많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사람의 마음이나 동기, 속내를 보시는 분이지, 사람처럼 겉으로 드러난 신앙행위를 보는 분이 아니다.
믿음을 재는 세 번째 잣대는 기도의 능력이 있는 지를 보는 것이다. 즉 능력 있는 기도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같은 믿음의 소유자라고 볼 수 없다. 능력 있는 기도를 한다는 것은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이다. 즉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같은 믿음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도바울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어보고 있다. 그 이유는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 없는 믿음은 형식적인 신앙행위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과 동행하는 잣대는 어떻게 잴 수 있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믿는 자들에게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예수님은 믿음의 잣대를 능력 있는 기도의 유무로 재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네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재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잣대는 일상의 삶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에서의 예배의식으로 만족하지 말고 살아 있는 제물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삶을 살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예배의 삶의 증거는 무엇인가?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도 믿고 믿음의 행위에 따라 보상해주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있다면,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을 계속해서 찾고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어야 한다고 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고 주일날 교회의 예배의식에 다녀온 후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까마득히 잊고 살고 있다면 믿음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주일뿐 아니라 평일에 삶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찾고 부르며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요청하고 그 분을 찬양하며 경배하고 감사하는 삶의 태도가 없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믿는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성경을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차서 정해진 기도시간 외에도 일상의 삶에서 틈 날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의 내주를 간절히 구하며,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로 자신도 모르게 찬양을 흥얼거리고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성령으로 가득 찬 견고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보면 된다.
위의 네 가지 잣대를 보면 당신이 소유한 믿음의 현 주소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믿음의 척도와 필자가 밝히는 믿음의 척도가 현격하게 차이가 날 것이다. 왜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가? 그 이유는 믿음은 매일 매일 채워야 하는 것을 잊고 지내기 때문이다. 상점 앞에 광고용으로 서 있는 에어풍선을 보았는가? 예어풍선은 아주 빳빳해서 바람이 불어도 구부러지거나 휘어지지 않는다. 왜 그러냐면 에어풍선의 밑에 공기를 발생해서 넣어주는 펌프가 있다. 그러니까 에어풍선이 빳빳하게 서 있는 이유는 지속적으로 공기를 주입해주는 에어펌프 때문이다. 이 에어펌프가 고장이 나거나 약해서 공기를 제대로 넣어주지 못하면 에어풍선은 제대로 서 있지 못할 것이다. 믿음을 유지시켜주는 공기가 바로 기도와 말씀이다. 날마다 쉼 없는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 충만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면 반석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이 쉼 없는 기도의 습관에 무지하며 성경을 읽지 않으니 어떻게 바위와 같은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믿음이란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이 선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에게만 주어진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소유자는 영원한 천국에서 살 거라는 소망을 잊지 않고, 날마다 쉬지 않고 찾고 부르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자들이다. 마지막으로 성령께서 필자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올려드리며 칼럼을 마무리하겠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미리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고 기다리라.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기도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