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생애 첫 운전
나갈 생각하니 하루 전부터 머리가 아팠다. 두통인 줄 알았는데 약이 듣지 않아 문제가 그게 아니었다. 이게 다 운전 때문이다. 운전을 시작한지 2주째다. 마흔 살이 되도록 운전 한번 안 했다. 스무 살 때 딴 1종 보통 면허는 장롱에서 썩은지 무려 20년 됐다. 수능을 치르자마자 대학교가 있는 서울에 올라온 까닭에 운전은커녕 서울 지하철 타는 게 일이었다. 충무로에서 조감독 생활을 할 때조차 나의 발은 대중교통이었다. 기자가 되고 나서도 사진팀 차를 타고 취재를 다녔으니 말 다했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의 대중교통은 매우 편리했다. 운전을 해본 적도, 자가용을 가져본 적도 없어 차가 얼마나 편한지 알리가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매번 아기띠에 아이를 달고 다니기가 힘들어졌다. 아이가 안아달라고 보채기라도 하면 아내와 나, 둘 중 하나는 아이를 안은 채 걷느라 금새 기진맥진했다. 차가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 것도 그때쯤이다. 대형마트에 가서 장도 많이 볼 수 있고, 아이가 집이 지겨워할 때마다 바람 쐬러 갈 수도 있고, 여의도 IFC몰에 가서 놀면서 택시를 어떻게 잡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병원갈 때도 편하게 갈 수 있을텐데 말이다.
아이를 안은 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아들 부부가 안쓰러웠을까. 지난해 연말, 부모님은 타던 자동차를 직접 몰고 와서 물려주셨다. 이거 참 난감하다. 이 커다란 걸 어떻게 몰 수 있을까. 내일 도로연수를 신청해 연습한 뒤 몰아야겠다. 내일은 이틀이 되고, 이틀은 사흘이 되어 한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언제 운전할 거야?” 매일 자동차를 보며 끙끙거리는 내게 아내가 물었다. 아내는 나를 대신해 포털사이트에 마포도로연수를 검색해 강제로(?) 운전 연수를 신청했다.
“운전면허증과 수강료 24만원 챙겨서 나오세요.” 운전연수 선생님이 보낸 문자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집 주차장에서 만난 선생님은 체격 좋은 중년 남성이었다. 자신의 차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긴 막대기(?)를 챙겨 내 차 조수석에 탔다. “운전 경험은 얼마나?”(선생님) “한번도 없습니다.”(나) “운전 경험이 없으면 ‘자(산의)차’로 도로연수를 못하는데…”(선생님) “그런 사실을 몰랐어요.”(나) “어쨌든 한번 해봅시다.”(선생님) 엑셀레이터를 밟으니 정말 차가 앞으로 나갔다. 브레이크를 밟으니 정말 멈췄다. 신기했다. 심장 박동수는 점점 빨라지고, 작은 성미산마을을 나오는데만 10분 넘게 걸렸다. 선생님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이런 실력 가지고는 안 되니) 한적한 데로 갑시다.”(선생님) 우리는 집 근처에 위치한 성산대교 북단의 강변북로 갓길로 나갔다. 갓길 옆에는 온갖 차들이 슝슝하고 질주하고 있었다. <분노의 질주>가 따로 없었다. “여기가 쉬운 도로에요?”(나) “직진으로만 되어 있잖아요. 고양까지 가봅시다.”(선생님) 시동을 걸려던 차에 선생님은 내 자동차 계기판에 들어온 경고등을 보고 물었다. “이 경고등이 언제부터 켜졌어요?” 며칠 전에 시동을 걸다가 갑자기 들어온 경고등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매연 배출에 문제가 있으면 켜지는 경고등이라고 했다. 지난 한달 내내 차가 방전되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 시동만 건 탓이다. 선생님은 자신이 자동차에 문제를 일으킬까봐 두려운지, 갑자기 근처 A/S 센터에 가자고 했다. “운전 연수 중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 탓이 아니”라고도 했다. 선생님 탓이 아니라 이게 다 차를 세워두기만 한 내 탓입니다, 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학생은 아직 운전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않으니 운전이 정말 필요할 때 다시 연락달라”고 하면서 돌아갔다.
이거 참 큰일이다. 아내는 이 얘기를 듣고 다른 학원에 신청하라고 했다. 여러모로 귀찮았다. 운전 생각 때문에 머리도 아팠다. 다음날 아침, 사고치기로 했다. 전날 도로연수 선생님으로부터 차를 동네에서 빼는 방법을 배운 것을 그대로 써먹어서 회사까지 몰고 가기로 했다. 회사는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고,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익힌 도로 위에서 최대한 침착한 척하고 차를 천천히 몰았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내 회사 근처에서 아내를 내리게 하고, 난관이라 생각했던 회사 주차장도 출근하지 않은 차가 많은 덕분에 주차 성공했다. 큰 문제 없이 출근했다. 기쁨도 잠시 뿐, 일을 하는 내내 집에 어떻게 갈지 걱정했다. 머릿속으로 집에 가는 코스를 그리며 시나리오를 쓴 것만 수 차례다. 도로가 한적한 오후에 빨리 퇴근해 집 주차장에 차를 넣고 싶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 회사 책상에서 그린대로 아내 회사를 들러 아내를 태운 뒤 출근한 길 그대로 되돌아갔다. 조심히 모니 어렵지 않았다.
매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성산동과 당산동을 오가기를 한지 2주째다. 설 연휴에는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아이를 뒷좌석 카시트에 태운 채 상암동에 있는 대형마트에 갔다. 일부러 장을 많이 봤다. 트렁크에 가득 실으려고. 지난 8년 결혼 생활을 하면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택시 잡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제는 택시 타고 종종 다니던 여의도 IFC몰까지 갔다. 트렁크에 아이의 유모차까지 싣고 가 IFC 몰 안에서 아이를 편하게 태우고 다니니 우리가 더욱 편했다. 무엇보다 몸이 힘들어서 서로에게 짜증내던 아내와 나는 차가 생긴 뒤로 부부싸움이 부쩍 줄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차를 타고 다니는구나 싶었다.
어제는 아이를 재우기 전에 물었다. “여름에 어디에 갈까. 강원도 양양에 갈까, 아니면 전라도에 ‘먹방’ 기행을 떠날까.” 아이는 내 말을 듣고 “우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운전 소식은 <한겨레21>에 3주에 한번씩 연재하는 제 육아칼럼인 성미산에서 도담도담 한 마리 토끼만 잡자에도 썼습니다.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짱짱맨, 감사합니다!
우리부부도 차가 생기며 싸움이 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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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걸까요? 차와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 걸까요?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
한 마리 토끼만 잡자 연재글 더 자주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너무 잘읽고 있습니다. ㅎㅎ
저는 지금은 운전을 좋아하지만 처음 시작했을때 벌벌 떨었던 그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펩시님은 언젠간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시리라 생각해요. ^^
아, <한겨레21> 연재 코너 이름은 성미산에서 도담도담(제가 사는 동네가 성미산이고, 아이 이름인 도담을 합쳐서 지은 이름)이에요. 아무래도 매체에 연재하는 글이라 매체 링크를 거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종종 칼럼과 관련돼 할 얘기가 더 있을 때 링크를 걸고 얘기하면 될 것 같아요.
네, 지난주까지 운전 생각만 하면 두통이 무척 심했는데 며칠 전부터 마음이 슬슬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조심히 몰아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