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 브라질, 독재자의 귀환 1부
지난 10월 7일, 극우파 포퓰리스트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가 브라질 1차 대선 투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브라질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인 보우소나루가 점점 인기를 쌓아갈 수 있었던데는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한몫했다.
(브라질 대통령 후보 자이르 보우소나루)
증가하고 있는 범죄율, 부패 스캔들 및 기록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국민들은 지금의 3당 연립 정부 체재의 종식을 바라고 있다. 보우소나루의 즉흥적인 발언이 때론 공격적으로 비치긴 하지만, 일반 브라질 국민과 똑같다는 인상을 만들어 주는데 일조했다.
그의 정치적 반대파인 노동당의 페르난도 해다드(Fernando Haddad)는 자당을 괴롭히는 부패 스캔들로 인해 지지 확보에 애를 먹었다. 결과적으로, 보우소나루가 2차 대선을 앞두고 여론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엄청난 반전이 없는 한, 10월 28일 치러질 2차 대선에서 보우소나루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1차 대선 후 브라질 증시는 급등을 겪었다. 노동당의 패배와 보우소나루의 승리를 예견한 일일 수 있다. 게다가, 노동당이 브라질 경제를 잘못 운영해 탕진시킨 것도 유권자들이 외면한 요인이었다.
노동당 당수 지우마 루세프(Dilma Rousseff)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하고, 대통령 후보였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가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투옥되면서,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하지만 반대로 시장은 보우소나루에게 기회를 줄 것으로 보인다. 비록 경제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한다고 인정했지만, 경제 자문들을 통해 정책을 이끌어 나갈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남아메리카 최고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격동의 경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브라질 경제는 엄청난 매장량에 힘입어, 원자재 수출에 의존해 왔고, 그 결과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하락에 아주 취약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경제가 심각한 굴곡을 겪으면서, 나라는 다양한 정치 체제와 경제 이론의 실험실로 전락했다.
이 글의 1부에서는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 브라질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 브라질의 식민지 시대, 둘째 군부 독재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화국 대통령제의 브라질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의 브라질)
브라질은 16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포르투갈 식민지였다. 식민 통치 하에서, 브라질은 세계 최대 수출 식민지 중 하나로 부상했다. 수출 품목으로는 설탕, 면화, 다이아몬드, 금, 커피, 담배가 있었다. 포르투갈은 브라질의 수출로 얻어낸 부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제국을 확장하고, 군사력을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브라질에서 창출한 부는 다시 재투자되지 않고, 포르투갈로 보내졌다. 또한 포르투갈은 다른 포르투갈 식민지로 브라질 상품이 수출되지 못하게 막았다. 이런 역학은 나폴레옹 전쟁 동안 프랑스가 포르투갈을 침공하면서 바뀌게 된다.
프랑스가 포르투갈을 장악한 후, 브라질 내의 인프라 개발이 시작되었다. 프랑스는 대학, 은행, 박물관 등에 걸친 다양한 건설 사업에 투자했다. 또한 브라질 항구를 개방해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촉진시켰다. 이렇게 프랑스의 투자로 인해 브라질은 세계 시장에 접근할 수 있었고, 결국 자국 내 자급 자족을 이루게 되었다.
브라질은 나폴레옹 몰락 이후의 질곡과 일련의 쿠데타를 겪은 후, 1891년에야 독립을 쟁취해 공화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브라질의 최초 자치 정부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커피의 인기 증가로 경제도 호황을 누렸다. 당시 브라질은 전 세계 커피의 75%를 생산하고 있었고, 커피 수출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브라질의 독립)
정부는 커피 호황으로 발생한 세수를 전국의 산업 및 도시 개발 사업에 투자할 수 있었다. 이런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폭력의 시대로 기록되어 있다. 국민, 특히 농촌 지역의 불만이 점점 더 거세졌고, 정부는 안정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1930년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커피 가격도 폭락했으며, 브라질의 문제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브라질의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체제에 대한 사고방식 변화를 촉발시켰다. 1930년부터 1965년까지 연속적인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후 브라질은 공화국에서 군부 독재 시대로 바뀌었다. 결국, 무력을 지닌 군부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도 군부 통치를 지지했다. 민주 정부보다 질서 확립과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군대 통치로 경제 체제도 변화를 맞게 되었다.
민족주의가 점점 커지면서 국민들은 세계 무역에 분개하기 시작했고, 기존 경제 체제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과연 세계 무역이 모든 당사자들에게 혜택이 되느냐고 지식인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특히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비교 우위 이론이 면밀히 조사되었다. 상품과 산업재를 교환하는 개발 도상국가들은 결코 자급자족할 수 없다는 믿음이었다.
결과적으로, 자원은 자국 내 제조 부문을 건설에 사용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이런 믿음이 결국 수출은 촉진하면서 수입은 제한하는 수입 대체 산업화를 장려하는 정책의 초석이 되었다.
군부 독재
군부 독재(1964-1985)는 대중의 지지를 얻었고, 20년 동안 브라질을 통치했다. 군부 독재 시절의 시장 개방 정책은 해외 자본 유치로 이어졌다.
(브라질의 군부 독재)
정부는 해외 자본을 이용해 국내 산업에 투자하고, 원유 같은 부족한 자원을 구매할 수 있었다. 대체로, 군부 통치는 브라질 경제를 끌어올리는데 성공적이었다. 브라질의 경제는 1970년대 엄청난 성장을 누렸고, 이 기간을 "브라질의 기적"으로 부르게 만들었다.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 중 하나가 부유층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쓸 거라는 생각이었다. 또한, 부유층은 국내 투자를 위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정책은 결국 성공했지만, 경제 성장으로 인한 과실은 대부분 부유층의 몫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은 더 심해졌다. 아래 차트는 1960년대~1970년대 계층별 소득 분포를 보여준다. 1960년대의 경우, 대부분의 소득이 중산층에게로 돌아갔지만, 1970년대에 들어와 소득 대부분이 상위 5% 계층의 차지가 되었다.
(1960년대~1970년대 계층별 소득 분포)
외화 채무가 누적되면서, 브라질 경제는 세계 금리 변동에 취약해졌다. 1980년대 미 연준 의장 폴 볼커의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이 1980년대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의 채무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잘못 진행된 투자로 상황은 더 악화되었고, 많은 사업들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과도한 재정 지출은 결국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1985년 브라질이 군부 독재에서 벗어났지만,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상승은 꾸준히 계속되었다. 군사 독재가 종식되고 2년째인 1987년 브라질은 부채 상환 기간 연장에 나서야 했다.
(1980년대~1990년대 소비자 물가)
새로운 시작
군부 통치가 경제 성장을 이끌어내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사회적 불평등을 희생시킨 결과물일 뿐이었다. 민주주의가 회복되면서, 인플레이션 완화 정책이 추진되는 한편, 사회 복지 지출을 늘리기 시작했다. 군부 독재가 끝난 후, 브라질 민주 운동당(Party of the Brazilian Democratic Movement; PMBD), 노동당(Workers’ Party; PT), 브라질 사회당(Party of the Brazilian Socialist; PSBD) 세 개의 정당이 생겨났다.
이 세 당의 이념은 아주 유사했다. 실제, 가장 보수적이었던 민주 운동당은 IMF가 제시한 긴축 재정 정책을 가장 열렬히 지지하면서도, 노동당 좌파 대통령 후보 룰라 다 시우바와 지우마 호세프를 지지했다.
3당 연합 정권이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사회 불평등을 다루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했으며, 최근까지 경제 안정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민주 운동당 집권 동안, 긴축과 매파적 통화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었다.
긴축 정책으로 사회가 어려워지자, 노동당은 빈민층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사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즉, 군사 독재 시절 만연했던 부패는 아직도 여전했고, 어떤 경우에는 더 뻔뻔스럽기까지 했다. 또한 범죄도 증가했습니다. 국민들은 생활 수준이 나아지고 인플레이션이 통제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러한 단점을 묵인했다.
(1990년 이후 실질 월간 소득)
최근 경기 침체가 이어지자, 전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린 부패에 다시 초점이 맞춰졌고, 현직 대통령에게까지 화살이 겨눠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브라질 정치를 지배해온 현재의 3당 연합 정권에 질렸고, 이로 인해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예기치 못한 승리와 사회 자유당이 부상하게 되었다.
2부
다음 2부에서는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배경, 이념, 그리고 그가 유권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를 알아볼 예정이다.
자료 출처: Confluence Investment Management, "Return of the Strongman: Part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