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포 위의 제인 폰다

in #kr6 years ago

1972년 7월 15일 월맹군 대공포 위의 제인 폰다

헨리 폰다의 딸, 제인 폰다. CNN 회장의 사모님으로 오래 살아온 헐리웃의 귀부인이자 1960년대 맹활약한 여배우. 일흔 다섯의 나이로 요가 DVD를 선보여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녀는 1972년 7월 8일 그의 배우로서 얻은 명성의 두 배는 됨직한 화제의 주인공이 된다. 미국과 전쟁 중이던 북베트남을 방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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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 반항끼 넘치는 여배우는 반전운동가로서 미군 포로들을 만나기 위해, 또 북베트남을 살펴보기 위해 하노이에 도착했다. 그 일성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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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우로서 이곳에 왔습니다..... 나의 생애는지난 2 3년 간 큰 변모를 보였는데 그것은 내가 월남전과 관련 미국 정부의 위선과 범죄를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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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켜보던 닉슨 행정부나 미군 수뇌부는 그 허파가 뒤집히는 느낌에 카펫 위를 데굴데굴 굴렀을 것이다. 제인 폰다는 거침이 없었다. 13일에는 월맹방송을 통해 미국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푹격 중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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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방이 없으면 일천 오백만 명의 인명이 위협을 받습니다. 제방지대의 주요 사실을 미군기가 폭격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들이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고의로 병원을 폭격한 것입니다. 하노이 병원에는 수천의 월맹인들이 파편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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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자기네 나라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 인민의 안위를 걱정하며 폭격을 중지하라고 호소하고 당신들은 지금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여배우는 당연히 극단적인 비난과 찬사의 대상이 된다.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천사였지만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전쟁 수행이 좋든 싫든 자신의 의무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예쁜 얼굴에 뿔 솟고 꼬리 달린 악마였다. 국무성은 “대단히 비통한 일”이라고 입술을 깨물었고 보수파들은 거품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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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7월 15일 그녀는 역사에 남을, 그러나 그녀 자신도 후회하고 잘못을 인정한 사진을 찍는다. 바로 미국 조종사들을 겨냥한 대공포대에 앉은 사진이었다. 철모까지 쓰고 대공포를 조종하는 시늉을 한 그녀의 사진은 대단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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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그 대공포로 미군 조종사들이 생명을 잃고 있었으니까. 비록 그 대공포가 더 많은 살상을 막고 있었다 하더라도. 제인 폰다는 후일 자신이 그 무기가 뭐하는 건지 몰랐다고 변명은 했지만 보수파는 그녀를 철천지 원수로 기억하게 된다. 미국에 돌아온 뒤 제인 폰다는 야유는 물론 침을 뱉는 사람들과도 마주해야 했고 먼 훗날 어느 영화에서 레이건의 부인 낸시 역에 캐스팅되자 보수파들이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반역자를 우리 낸시 여사 역으로 쓰다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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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대공포좌에 걸터앉은 자신의 행동은 사과했다. “적국의 대공포 위에 걸터앉았던 것은 미군은 물론 나에게 특전을 주었던 조국에 대한 배신이었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노이를 방문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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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거짓말을 했고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죽어갔다. 나는 그 거짓들을 들춰내고 전쟁을 끝내는 데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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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도 월남 패망이라고 부르는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전쟁은 잘못된 전쟁이었고 거짓의 전쟁이었고 이겨야 할 데가 이기고 질 데가 진 흔치 않은 전쟁이었다. 주월 한국군 사령관조차 사무실 타이피스트 아가씨들이 호지명의 생일을 축하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어했던 그런 전쟁이었다. 그녀는 그 전쟁을 반대함으로써 조국을 사랑했고 경솔한 행동은 했을지언정 ‘하노이의 제인’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역사에 남을 일이 된다.

그녀가 한 연설을 읽어 본다.

"제인 폰다입니다. 저는 지난 두 주 동안 베트남 인민공화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중략)
나는 공장의 지붕 꼭대기에서 수줍음을 타고 얼굴을 붉히는 의용소녀 하나가 베트남의 푸른 하늘을 찬양하는 힘찬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인상적 모습을 기억합니다. 이들은 부드럽고 시적이며 목소리도 꾀꼬리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폭격기가 그들의 도시를 쑥밭으로 만들어버릴 때는 그들은 씩씩한 전사로 변모합니다.

나는 미국의 폭탄이 떨어질 때 적국의 여자인 나를 감싸안고 방공호로 뛰어들어갔던 한 농부의 따스한 손길을 소중하게 기억합니다. 우리들은 팔과 팔, 뺨과 뺨을 부비고 있었습니다. 나는 남 딘(Nam Dihn)의 길목에서, 학교, 병원, 탑, 공장, 집, 관개제방 등 모든 인간시설이 모두 무참히 파괴되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내가 두 주 전에 미국을 떠날 때, 닉슨은 미국인들에게 월남전을 종료시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남 딘의 어지러운 폐허에서 나는 그의 말은 살인자의 음험한 감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팔을 꼭 붙잡고 매달리느 어린 한 베트남 소녀의 뺨에 나의 뺨을 부비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베트남과의 전쟁일지는 모르지만, 이 모든 비극은 결국 미국의 것일 뿐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의심할 수 없는 자명한 진리로서 이 나라에서 깨닫게 된 하나의 사실은 닉슨은 결코 이 땅의 사람들의 정신을 파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닉슨은 북베트남이든, 남베트남이든, 폭격과 침략, 어떠한 방식의 공략으로도 이 땅을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략)

이들은 4천년 동안이나 자연과 외국인침략자들과 줄기차게 싸워왔습니다. 불란서와 식민투쟁에서도 이겼습니다. 베트남의 사람들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독립과 자유를 스스로 쟁취해나갈 것입니다. 나는 리차드 닉슨이 베트남의 역사와 그리고 베트남의 시를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호치민이 쓴 시를 읽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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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중에 찾아가다니 대단한 분이시네요
오늘 또 새로운 인물을 알게되네요
제인폰다
대공포일은 좀 안타깝긴 하네요. .

좀 오버했다고 보지만..... 그래도 북베트남을 방문한 건 대단한 결기였다고 봐 줘야....

아버지 헨리폰다가 나온 "분노의 포도" 라는 영화가 기억나네요~
그 분의 딸인줄 알았지만, 이런 사건이 있었는지는 몰랐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맞습니다. 헨리 폰다의 딸이죠. 헨리 폰다는 매카시즘 시절에도 매카시즘과는 선을 그었던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그 딸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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