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너희는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1936년 8월 9일 “이래도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 부를 터이냐”
1936년 8월 9일 권력 절정의 히틀러 이하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을 꽉 메운 수만 명의 관중들은 ‘올림픽의 꽃’ 마라톤 우승자가 스타디움에 들어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누군가가 경기장 트랙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박 민 머리에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의 아시아인이었다. 그 가슴에는 일장기가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다. 일본인이었다. 얼마 안되는 일본인 응원단이 일장기를 미친듯이 흔들며 일어섰고, 일본 NHK의 캐스터 야마모토도 환호를 내질렀다. “30미터! 20미터! 10미터! 손 군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당당히 일본이 마라톤 우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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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트랙을 도는 ‘손 군’은 아무 표정도 없었다. 다큐멘터리 올림피아를 찍었던 리네 리펜슈탈이 그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거니와 42.195킬로미터를 뛰어온 선수답지 않게 마치 달리는 기계처럼 팔과 다리를 움직일 뿐, 심지어 테이프를 끊은 뒤에도 그 흔한 환호 한 번 없었다. 금메달과 동메달을 일본이 가져갔지만 정작 그 메달을 딴 선수들, '소류 남'과 '기타이 손'은 웃음 한 번 제대로 짓지 않았다. 기미가요가 울려퍼지는 내내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동메달리스트 ‘소류 남’ 즉 남승룡은 '기타이 손' 손기정의 금메달보다는 히틀러가 그에게 준 화분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그걸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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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대에 선 두 사람의 머리 속에는 어떤 그림들이 지나갔을까. 양정고 육상부원으로서 숙명여고와 일본인 학교의 농구 시합에서 응원단장 노릇을 하던 중, 일본인들의 편파적인 진행에 항의하다가 뺨을 맞고 처벌까지 받았던 손기정, 어떻게든 ‘순수 일본인’을 대표팀에 넣으려는 욕심으로 베를린 현지에서까지 선수 선발전을 치르는 가운데 치사하게 꼼수를 쓴 일본 선수에게 “너는 선수도 아니다.”라고 주먹을 휘둘렀던 남승룡. 세계를 두 발 아래 둔 두 사람의 환호는 가슴에 박힌 일장기에 갇혀 터뜨려지지도 못했다. 손기정이 베를린에서 친구에게 보낸 엽서가운데 하나는 단 세 음절이었다. “슬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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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두 사람을 제외한 조선 사람들에게 이 날은 격동의 날이었다.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의 한 켠에서는 몇 명의 동양인이 처음 듣는 노래를 울부짖으며 부르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지휘하듯 팔을 휘두른 서른 한 살의 조선인은 안익태였다. 서너 명에 불과하던 재독 조선인들은 안익태가 가르쳐준 ‘애국갗를 부르고 있었다. 그 ‘국’은 물론 일본이 아니었다. 위성중계가 없던 시절, 조선 사람들은 마라톤 출발 소식은 8월 9일 밤에 들었지만 결과는 다음 날 새벽에야 알 수 있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동아일보 옛 건물 2층에 나타난 여자 아나운서가 “손군이 1착으로 들어왔습니다.”를 알린 순간 밤새 술을 먹으며, 기도하며 기다리던 원조 ‘붉은 악마’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조선인이 세계를 제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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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서양인들은 “체구도 머리 하나 큰 조선인들이 일본인이 점프해서 뺨을 때리면 엉엉 울면서 나자빠지는” 풍경에 신기해 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만, 일본이 주장하기로나 스스로 자학하기로나 기백이라고는 없고 기력이라고는 술 퍼먹을 기력 밖에 없는 나약한 족속이라는 세뇌에 빠져 있던 조선인들이었다. 그 포한이 한 방에 날아간 것이다.
조선 만세!가 위험한(?) 구호가 곳곳에서 터져나왔고 평안북도 신의주부터 경상남도 부산까지 마라톤 제패 기념 집회와 체육대회가 우후죽순처럼 돋아났다. 우리 청춘의 영원한 고전 <상록수>의 저자 심훈도 터질 것 같은 흥분으로 새벽을 맞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신문 호외의 뒷장에다가 격정의 잉크로 감동의 싯귀를 써내린다.
“ (전략) 오늘밤 그대들은 꿈 속에서 조국의 승전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들을 만나 보리라. / 그보다도 더 용감했던 선조들의 정령이 가편하였음에 / 두 용사 서로 껴안고 느껴 느껴 울었으리라. /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어잡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 부를 터이냐.”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 부를 터이냐.” 어쩌면 이 질문은 20세기를 관통하여 한국인들이 한 번쯤은 내질러 보고팠던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봐야 엽전이었고, 조선놈 하는 짓이 다 그렇고, “나라에 힘이 없으니까.”라고 지레 움츠러든 적이 웬만큼 짧은 세월이었나. 어쩌면 한국인의 1등주의는 이런 콤플렉스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안타깝게 묻혀진 이가 동메달리스트 남승룡이었다. 체력은 손기정이 나았지만 경기 운영면에선 남승룡이 돋보였고 일본인들조차도 우승후보를 남승룡을 꼽았었다. 즉 손기정에 하등 처지지 않는 마라토너였다. 하지만 모든 갈채와 환영과 지원의 손길은 손기정 본인이 당황해할 만큼 손기정한테로만 몰렸고 남승룡은 잊혀져 갔다.
아주 긴 세월이 흘러 88 올림픽 때 손기정은 성화를 들고 기쁨에 겨워 껑충껑충 뛰어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일렁이게 했다. 손기정 옹도 "역시 사람은 오래 살 고 볼 일이다."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환희의 순간에 초대된 것은 손기정 옹 혼자가 아니었다. 원래 성화 주자로 섭외된 것은 손기정 혼자가 아니라 남승룡과 함께였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 은둔 생활을 하던 남승룡은 그 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 후 2000년에 여든 아홉 살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그의 일생이 조명된 적은 별로 없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하지만 베를린 스타디움은 영원히 일본인으로 남아 있는 그는 그날의 포한이 평생의 트라우마가 된 듯하다. 언젠가 재일교포 작가인 유미리가 그녀를 방문했다. 그녀의 조부 역시 손기정의 동년배이자 친구로서 촉망받던 장거리 육상 선수였던 인연이 있었다. 유미리씨는 조부의 궤적을 더듬는 일본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자로서 손기정을 만났다. 그때 손기정은 그녀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일본어였다. “오래 산 덕분에 친구의 손녀와 이렇게 만나게 됐구나. 그래도 저 사람들 (일본 스탶들)과는 일본말로 말하지 않을 거다마는. 네가 내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손기정의 일본어를 들으며 유미리는 울었다. “지금 여기서 일본어로 말할 수밖에 없는 손옹과 나 자신의 아픔이 가슴을 꿰뚫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아주 드물게 은총을 베푼다. 1992년 8월 9일, 손기정이 금메달을 딴 지 정확하게 56년째 되는 바로 그 날, 한국의 마라토너 황영조가 하필이면 일본 선수를 제치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거머쥔다. 손기정은 그때 현지 스탠드에 있었다. 어떤 기자한테 들은 얘기에 따르면 황영조가 스타디움에 들어올때 같이 껑충껑충 뛰었다고 한다. 황영조는 스탠드로 달려가 금메달을 노선배에게 걸어 주었다. 이때 손기정의 가슴은 어땠을까. 정말이지 그 순간 피를 토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지 않았을까.
훗날 손기정은 당뇨 합병증으로 두 다리가 썩어들어가는 순간에도 다리를 절단하자는 의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는다. 그래 그 다리가 어떤 다리였던가. 1936년 8월 9일 그 다리는 조선을 떠받들고 세계를 아래에 두었다.
순국선열께 다시한번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묵념.....
슬푸다.!!?
역사를 돌아보게됩니다.~^^
네 그렇게 돌아보시고 오늘을 보시면 또 다른 느낌이실 겁니다.
항상 감동 받으며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선열들에 뜻을 밭들어 나라을 굳건하게 밭들어야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그걸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으니까.”
정말 미안하고, 뭉클한 말이네요
좋은 글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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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선수에 비해 빛을 그리 보지 못했던 남승룡 은.... 참 안타깝죠
좋은글 감사합니다. 팔로우하고 보팅합니다^^
감사합니다..... 맞팔 드립니다
꿈엔들 잊을건가 지난일을 잊을건가.
다같이 복을심어 가꿔길러 하늘닿게.
세계의 보람될이 거룩한빛 예나리니.
힘써힘써 나가세 힘써힘써 나아가세. ... 정인보.
그 구절 하나 하나에 마음이 담겨 있군요.... 위당 정인보 선생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수상 장면
손기정은 선물 받은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리고,
남승룡은 가릴 것이 없어 가슴에 일장기..
금메달과 동메달은 기쁘고,
은메달은 슬프다던데,
베를린 올림픽 입상자들은 전부 기쁘지 않은 표정이군요.
스스로 지킬 힘이 없으면, 그리 당하는 것..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수상 장면
손기정은 선물 받은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리고,
남승룡은 가릴 것이 없어 가슴에 일장기..
금메달과 동메달은 기쁘고,
은메달은 슬프다던데,
베를린 올림픽 입상자들은 전부 기쁘지 않은 표정이군요.
스스로 지킬 힘이 없으면, 그리 당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