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International Women's Day

in #kr7 years ago (edited)

오늘은 블로그를 안 쓰고 넘어가나 했는데, 3월 8일 국제여성의날이다. 3월8일이 오는걸 알았지만, 오늘이라는 사실을 깜빡하면서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갑자기 아침부터 미팅에 불려가서 일요일부터 홍콩에 가라고 지시를 받았다. 뭐하러 가는지도 정보를 못받아서 모르겠다. 하하하. 갑작스러운 출장준비와 주말 스케줄 취소등을 하느라 하루가 금방 훌쩍 가버렸는데 그 시간이 오고 말았다. 내가 생일이라고 크리스탈을 박은 보온병을 준 회사의 다른 연하남과의 저녁식사시간.

난 저번 포스팅에 썼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똑같은 보온병을 가지고 있어서 정말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고. 저녁약속은 그 전부터 한 것이었는데 기분이 나뻐져서 취소하고 싶었지만, 난 직접 그를 만나서 말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나랑 똑같은 보온병을 가지고 있는 비서언니가 있는데 너가 준거야? 라고. 그리고 저번에 내가 산 저녁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난 기어코 보온병남에게 밥을 얻어먹고 말아야한다고 결심했었다.

보온병남을 만난 것은 회사 근처의 고급태국식당이었다. (어제 똠얌꿍을 먹었지만 상관없다. 7년이나 태국에 산 나에겐 태국요리는 집밥이다) 이 식당 역시 저번에 헤어진 연하남과 갔었던 그리스식당처럼 보온병남이 내 취향저격을 하여 추천한 식당이다. 오모테산도의 태국식당도 같이 추천했는데, 거기도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으나 (보온병남, 넌 왜 이렇게 내 입맛과 취향을 잘 알고 있니?)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날씨라서 회사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보온병남은 오늘도 역시 매우 화려한 넥타이와 스카프를 하고 루이비통 클러치백을 들고 있었고, 비가 오는 날이라 해골이 손잡이 부분에 달린 우산을 킹즈맨의 우산처럼 들고 나와 만났다. 이런 우산은 대체 어디서 사냐고 물었는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샀단다. (아 네...저도 어제 프랑스산 치즈 사봤습니다) 이 남자...역시 부담스럽다.

태국음식은 뭐 고급식당이라 맛이 있었고 보온병남과의 대화도 순조롭게 이어졌다. 어렸을 때 봤었던 만화영화 이야기도 하고 보온병남 어머니가 요리교실 선생님이셨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우와 어머니 멋지시다!) 뭔가 대화가 끊기지는 않고 나름 재미있었다. 하지만 내 목적은 따로 있지. 진.상.규.명.

마지막 요리가 오자마다 난 말을 꺼냈다.

"그런데 나 저번에 사무실에 비서언니들 앉아있는 곳에서 봤어요."

"네 뭘요...?

"저번에 저한테 주신 보온병이랑 진짜 똑같은거요."

보온병남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고, 나에게 설명을 하였다. 그 보온병은 자기 어머니 친구 작품이고 자기가 오피스에 그걸 쓰고 있는걸 그 비서언니가 갖고 싶다고 해서 돈을 받고 판거라고. 나에게 준 보온병은 어머니 친구 작품을 따라 만든 자기 작품이라고. 얼굴색이 변하지도 않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나에게 설명을 하는 보온병남이 말을 지어내고 있는지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랬구나~~ 근데 정말 나 그거 보고 너무 놀랐어!! 나 앞으로 오피스에서 너가 준 보온병 못 쓸거 같아~~정도로 밖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분위기가 애매해지자 그가 또 주섬주섬 테이블 밑에 짐을 넣는 박스에서 뭘 꺼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International Women's Day에요!"

Pierre Herme라는 고급마카롱가게의 쇼핑백에 담겨져 있는 것은 마카롱과 드라이 플라워가 들어 있는 오일 꽃병이었다. 헐 뭐야 이 산타클로스는.

"국제여성의 날엔 역시 미모사죠! 이탈리아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미모사꽃을 선물해요. 마음에 드세요?"

뭐? 미모사? 남자가 왜 그런 꽃을 알고 국제여성의 날에 이탈리아에서 뭘 하는지 왜 아냐고. 오일 꽃병에 담겨져 있던 꽃은 미모사 드라이 플라워였고, 마카롱도 미모사와 색깔이 같은 레몬, 그리고 페스타치오와 자스민 맛 3개를 골랐다고 했다. 뭔가 보온병을 처음 받았을 때처럼 감동을 또 받아버리긴 했다...짜식...보온병을 이 여자 저 여자한테 돌리는 놈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나한테 잘 보이고 싶구나...세련되고 좋은 선물을 남자친구들에게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선 솔직히 기뻤다.

보온병남은 자기 집이 멀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집 근처 역까지 지하철을 같이 타고 갔고, 집에 도착하고 나서는 라인으로 내가 홍콩 출장에서 돌아올 때 공항에 차몰고 마중 나가면 안되냐고 물어왔다.

하아...정말 바람직한 짜식...넌 정말 바람직한데...왜 해골이 달린 우산을 들고 다니는거니...니가 조금만 패션이 노말해도 내가 생각해 보겠는데...

연애는 너무 어렵다.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줘도 좋아할 수 없는 이 마음...난 보온병남에게 기대를 주고 싶지 않아서 단호히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절대로 마중 나오지 마~~ 괜찮아~~~

앞으로 보온병남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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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참고해서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20853&no=1132&weekday=tue
상견례 날짜 잡을 궁리를 하시면 되겠군요

네...? 상견례...? 누구와요...? 전 보온병남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남자는 조금만 계기가 있어도 벌써 생각이 앞서서 결혼 후 애, 손주까지 볼 망상을 하기 때문에 밀땅에 있어서는 여자가 유리하다, 는 얘기를 좀 재미있게 해보려던 시도였습니다-_-

ㅎㅎㅎ 조석님 만화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음...그런데 보온병남도 연하인데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을 것 같아요. 가정을 빨리 가지고 싶어하는 남자들도 있나요...?

만화가 허황된게 아니라 진짜 현실을 그대로 나타냈습니다. 갓조석...
바람둥이가 아닐 수록에 얼른 결혼까지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보온병남은 근데 바람둥이같네요.

정말요? 흠...그렇구나. 네 보온병남은 좀 아직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너무 특이해서 제가 결혼까지 생각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인연을 만나고 싶네요!

연하남은 과연 정체가 무엇일까요
어떻게 저리 밀당을 하는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연하남은 제가 사귀었던 연하남이 아니고 다른 연하남입니다!

대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부담스러웤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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