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 예술과 외설의 경계

in #kr7 years ago (edited)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별세했다.
각종 인터넷 뉴스에 그의 소설 『즐거운 사라』가 언급되고,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작가라는 기사내용도 보인다. 고인이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신문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20여년 전의 상황을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나는 당시의 관련 기사를 다시 찾아보았다.

고인은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던 1992년 10월 29일, ‘음란문서 제조·반포 혐의’로 전격 구속되었다. 그가 쓴 소설 『즐거운 사라』의 내용이 지나치게 성적 충동을 자극해 문학의 예술성 범주를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이념성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금서가 되거나 작가가 구속된 경우는 있었지만 ‘외설’을 이유로 작가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구속으로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논쟁이 불붙었고, 문제의 소설 『즐거운 사라』는 더욱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고인이 구속되면서 책 판매가 금지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미 출간된 소설이었기에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읽고 판단해야겠다는 순수한 문학도의 자세(?)로 문제작 『즐거운 사라』와 전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읽었던 것 같은데 어느 정도의 외설적 표현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2000년대 인터넷상에 유행했던 ‘야설’들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법원은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판단했다. 기나긴 법정공방 끝에 19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고인은 재직하던 대학에서 해직되고 1998년 복직되었으나 2000년 재임용에서 탈락했다가 다시 복직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동료 교수들에게 배척받고 정년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로 위촉받지 못해 서운함을 표했다고 한다.

문학작품에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하는 것은 오래된 논쟁거리이다. 시대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판단의 잣대가 달라지고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은 문제다. 고인은 자신의 필화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신은 하고 싶은 말, 옳다고 생각한 말을 했을 뿐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처벌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사회적 지위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표현의 자유를 만끽했다는 점일 것이다. 아마도 교수 사회 또는 체면치레를 중시하는 지식인들은 그를 자신들의 그룹에서 떼어놓고 싶었으리라.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인식은 그때보다 크게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물론 외설적인 작품을 썼다고 구속되거나 법원에 갈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고상하고 지적인 표현을 좋아하는 지식인 집단에서 또 다른 ‘사라’는 여전히 배척받는다. ‘외설성’이라는 주제 말고도 주류 사회에서 용인되지 못하는 주제들, 예를 들면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 등을 나서서 표현하는 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모든 작품은 개별 독자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판단된다.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평론가도 아니고, 주류 문단 사회도 아니고, 기득권을 가진 지식인 집단도 아니고, 법원은 더더욱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글로 쓰고 누구나 다른 사람의 글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사회, 생전에 고인이 바라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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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음~? 흥미로운 포스팅이군요.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뉴스를 보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것을 취하거나 거부할 자유도 우리에게 있는 것인데, 그것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재단할 수는 없지요...

맞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면 '대중을 현혹하는 불온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