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散策)이라는 길목에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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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산책하고픈 날입니다.
산책 좋아하세요? 영어로는 Walk라는데 그것만으로는 산책이란 단어의 속내를 살피기 어렵죠?
역시 한자단어는 한자 그 자체를 봐야 제 맛입니다.
산책(散策)-흩을 산(散) 꾀 책(策)
산(散)이라는 한자는 무엇에 목표를 두거나 집중하지 않는 의식의 상태를 이릅니다. 사람만 그런게 아니라 도를 닦는 신선도 일정한 주처가 없이 다니는 존재를 산선(散仙)이라 하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의 중생을 다스리는 대각자가 계신가하면 이렇게 묶이지 않는 산선이 있다는 것도 우주의 신비 중 하나입니다.
책(策)이라는 이 글자는 원래는 채찍 책입니다. 지금은 대나무로 만든 채찍 자체가 사라졌으니 채찍의 뜻은 사라져 버리고 그 목적성만 남았네요. 계책, 술책, 책사가 그렇듯이 책은 뭔가 의도하고 유위적으로 가진 의념입니다. 뭘 하려고 해서 구상하는 상념이라 해도 좋겠지요. 그런데 이런 유위적 상념은 그 힘이 제한적이죠.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하늘이 보기에는 말입니다.
어린애가 입에 꿀을 잔뜩 묻히고 안먹었다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모습과 같습니다.
무언가 꾀한다-해서 ‘꾀’라는 단어가 살아남았습니다. 꾀한다는건 아주 바르고 정직한 건 아닙니다. 조금 꼬인거죠. 그래서 꾀입니다. 그러니 꾀라는 것이 진정성의 측면에서는 그다지 바람직 한 것이 아닙니다. 마침 수나라 장군 우중문에게 써준 을지문덕의 시가 떠오르네요.

신책.jpg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신기한 계책은 천문을 연구한듯 하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다한 듯 하네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싸워 이겨 그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이제 만족하고 멈춤이 어떠하신가?

여기서 나오는 꾀 책(策), 그리고 계산한 산(算)-이런 것이 인간 층차의 잔머리입니다. 한계가 있으며 근원적인 해결책도 아니지요. 그러니 오늘은 벗님이시여! 그 꾀를 흩어버릴까요?
일체의 잔머리도 놓아버리면 어떨까요? 그리고 아무 목적도 지향도 없이 저 길을 걸어보면 어떨까요? 진달래도 곳곳을 물들이고 있고 매화꽃도 벙글었습니다. 가다 멈추고 꽃을 감상하며 문득 고개 들어 하늘도 봅니다. 네! 그것이 산책이지요.
삶의 시계바늘에 떠밀리어 어느덧 산책을 잊어버린 님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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