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편안함, 그 불편함에 대하여

in #kr6 years ago

편안함은 익숙함이자, 과거와의 깊은 애정 관계에 있다. 떨어지려 할수록 더욱 아련하고, 불안하게 만들며, 마치 끊어지지 않는 고무줄처럼 멀어질수록 더욱 강하게 끌어당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편안함을 체득했고, 편안함은 자연스럽게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편안함은 그 존재만으로 마치 따뜻한 난로처럼 마음 한쪽을 차지하고 우리를 비춰줬고, 너무나도 익숙해진 따듯함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우리 대부분은 남들과 다른 것보다는 같은 것, 튀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며 자랐다.

이런 측면에선 나는 우등생이었다.
어디에서나 한 발자국 뒤로 가서 서 있기를 즐겼고, 수업시간에 손드는 것은 죄악이었으며, 학우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던 세월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부모님의 뜻을 따라, 그리고 남들이 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서 대학에 진학하였고, 여러 교수와 동기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회사에 내 무거운 몸을 안착시켰다.

나는 내 장기를 또다시 발휘하여 튀지 않고, 마치 새로 나온 로션처럼 조직에 잘 스며드는 인재가 되었다. 의견은 항상 뒤에서 냈고, 조용히 그들의 철학을 따랐으며, 선배와 상사가 전해주는 다른 사람 눈치 보는 법을 자기 전까지 암기하면서 나를 낮췄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불길함을 느꼈다.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내가 입고 있는 편안함의 옷이 지겨웠다. 아니, 지겹다기보다는 인위적이었다. 내가 추구하던 편안함은 편안한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편안함은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불편한 편안함은 하루하루 그 진면목을 드러냈고, 이제는 알았다. 내 주위의 편안함에 도취된 사람들은 속고 있었다.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해 하루종일 불편한 것들에 힘을 쏟으며 그들은, 그리고 나는 살고 있었다.

난 그래도 행운아다.
편안함의 불편함을 지금이라도 인지했기 때문에.
내 주위를 보니 이런 자각을 못 하고 매일 수십차례 들이치는 썰물과 밑물에 흘러갔다 흘러오며 정신 못 차리는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또한, 평범이란 매우 우수해 보이는 잣대를 들이대고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는 노력이 매일 지속되고 있으며, 문제의 해결도 사례 비교를 통해 그들이 안 하면 나도 안 하고, 그들이 하면 나도 한다는 식의 비범한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음을 목격한다.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존재했던 군대 시절 저 사람처럼 되지 않아야겠다는 행보관부터, 일개 조그마한 회사의 비상식적이고 알량한 생각으로 배가 차오른 오너, 평생 회사원으로 살다 대표 자리에 오른 성실하지만 탐욕스러운 개미, 차렷경례의 달인이 된 살이 붙지 않은 뼈대만 남은 조각상의 흩어진 조각이 모여 이 세상의 한단면으로 자연스럽게 비춰지는 요즘이다.

이를 인지하는데 사용됐던 내 인생의 수십 년을 나는 자양분으로 사용하려 한다.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수 십 년간의 기억의 필름을 내 안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하려 한다. 그리고 자주 꺼내 그때의 편안함을 상기해보려고 한다. 그 아찔함의 편안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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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은 적응일까 권태일까. 어느 순간 변화가 두렵더라고요
'이 세상의 한단면으로 자연스럽게 비춰지는 요즘이다.'
이 부분이 참 좋아서 다시 읽었어요. 구독하고 갈게요!

편안함에 안주하다가는
결국 도태되어지는 세상이라고 보고 있기에
님께서 편안함을 불편해 하고 벗어나려는 발바둥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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