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너에게 주는 위로 아닌 위로
To. 내 사랑스러운 친구에게.
내가 출근하면서 지나쳐야 하는 상점이 있다.
주인장으로 보이는 그 중년 남자는 내가 출근하는 시간이 꽤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고 있다. 사람이 부지런해야 먹고 사는 구나 라는 뼈저린 교훈을 이 사람을 보며 자주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숟가락과 젓가락이 한 쌍을 이루듯 빗자루와 한 쌍을 이뤄야 할 쓰레받기를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청소법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난 이제까지 그분이 청소를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청소가 아닌 '쓰레기 밀어내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법은 이랬다. 상점 앞에 있는 쓰레기들을 빗자루로 모은 후 길 한 가운데로 쓸어 냈다. 그리고 그 쓰레기들은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흩어져 버렸다. 그의 눈을 어지럽혔던 쓰레기 조각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그의 빗질은 멈췄다.
심지어 어떤 날은 그가 밀어내는 쓰레기를 온몸으로 맞은 적도 있었다. 나는 쿨함으로 단련된 사람이기에 그냥 지나쳤지만, 생각할수록 분이 차올랐다. 하지만, 이 역시 단련된 인내심으로 어느 순간 먼지처럼 사라졌다.
결과가 어찌 됐든 그분 입장에서는 자기 상점 앞이 말끔해졌으므로 청소는 한샘이다. 물론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만 말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쓰레기 밀어내기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우리 주위에 많다는 점이다.
나도 단 몇 십 명이 일하는 회사에서도 일해봤고, 큰 규모의 회사에서도 일해보았는데, 그 안에서 참 여러 군상을 만나봤다. 그래. 먹고 살기 바쁜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내 한 몸 보존하기도 바쁜데 공동체 의식을 지키자고 외치는 것마저도 미안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군대에서도 이등병 때는 코를 찔찔 흘렸던 이등병도 병장이 되면 멋진 남자처럼 보이는 것처럼 회사에서도 직급이 깡패다. 그러다 보니 이를 이용해 쓰레기 밀어내기를 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여기에도 ‘클라스'가 존재한다.
정말 티 나게 자기의 일을 밀어내는 약간은 뻔뻔해 보이는 케이스가 있고, 귀신같이 나도 모르게 그의 일이 내 앞에 와있는 경우도 있다. 첫 번째 케이스는 대처법이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다. 내가 지금 그가 넘긴 일들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는 코스프레를 아주 조심스럽게 하면서 스멀스멀 소문을 퍼트리면 된다. 하지만, 후자를 만났다면 방법이 없다. 쓰레기를 날려줄 한 줄기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귀신같은 분은 한평생 회사생활에 있어서 만나기 어려울 테니, 오히려 그의 스킬을 익히면서 내가 써먹을 기회를 노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친구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말밖에 없구나. 바람이 불어오기만을 같이 기다려 보자꾸나. 군대에서 선임이 내 눈을 가리며 뭐가 보이냐고 물었던 것처럼 지금 너와 내 눈 앞은 칠흑같이 어둡지만, 살면서 설마 하루도 한 줄기 빛이 우리에게 비치는 날이 없겠니? 우리는 어둠 속에서 만나 어둠 속에서 손을 부여잡았고, 여전히 어둠 속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잖니. 비록 앞이 보이지 않아 불편하고, 한편으로는 밝은 곳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지만, 이 걷고 있는 과정도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인 것을 인정한다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다.
미안하다.
이 위로 이상으로 네게 해줄 말은 없을 것 같구나. 나도 이미 이 세상의 ‘어른’ 역할에 너무 적응해 버린 것 같다. 어른은 힘들어도 울어서도, 좌절해서도, 힘들어도 힘든 티를 내서도 안 된다고 배웠다. 어떠니? 나 이제 어른이 좀 된 것 같지 않니?
글솜씨가 짱짱인데요
쬐금 샘나요.
또놀러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