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에 대한 오해 걷어내기: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운동을 읽고
올해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자 공산당 선언 170주년입니다. 블록체인을 공부하면서 기술적 접근 이면에 사회,정치적 구조와 관계에도 관심이 최근 부쩍 늘어났습니다. 이런 찰나에 @ausfechten님의 글 [북스팀/책 추천] 마르크스 관련 입문서을 통해서 추천 받은 마르크스와 관련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르크스와 관련된 여러 입문서 중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운동: 공산주의 선언" 를 먼저 손에 들었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르크스를 만나다
학부 시절 살면서 한 번은 읽어봐야 되지 않겠나 하는 마음과 고전 치고 얇은 분량이 주는 안도감에 공산당 선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주 아주 미약하지만 한 1% 정도 모종의 불안감이 책을 읽기 전에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머릿 속 사상이 온통 빨간물로 들고 내 사상이 위대한 령도자를 지지하게 되면 어쩌나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러나 사상의 전환은 커녕 마르크스가 뿜어내는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그냥 활자의 모양만 읽으며 지나쳤던 것이 마르크스를 직접 마주했던 첫 기억입니다.
시간이 꽤 흘러 마르크스의 입문서를 읽으며 다시금 마르크스를 가볍게 만나면서 많은 울림과 고민이 일어났습니다. 이제부터 은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운동: 공산주의 선언 를 읽고 느낀 소회를 가볍게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영국의 제국주의: 산업혁명의 숨은 주역
공산당 선언은 1848년에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르크스는 일찍부터 모국인 독일에서 추방당해 여러 국가를 떠돌다 영국에 정착했습니다. 이 시기 영국은 도시화와 공업화의 최전선으로 산업혁명의 현장이었지요. 학교 역사 혹은 사회 시간에 방적기, 방직기의 발명이 주요한 산업혁명의 원인이다라고 기계적으로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러한 명제는 자연스럽게 "영국의 산업혁명은 기술적 발명이 그 원인이다" 라고 암묵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시 "영국은 당시 다른 유럽 국가보다 우월한 기술적 역량을 가졌을 것이다"라고 추측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제 지식을 무너뜨립니다.
생각해보면 유럽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과학/기술의 중심이 영국은 아니었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자연과학은 프랑스가 훨씬 앞서 있었고 독일에서도 영국보다 수준 높은 과학기술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방적기
, 방직기
또한 단순한 형태의 기계로 특별한 과학/기술 지식을 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영국은 어떻게 산업혁명의 선도국이 되었을까요? 책 56페이지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컨대 영국의 산업 혁명은 기술적 우위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해외 식민지의 존재에서, 더 나아가 해외 식민지를 개척할 수 있는 군사력의 우위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56p)
제국주의 국가로서 늘어나는 식민지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영국은 방직기 등을 통한 혁신의 요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전쟁물자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철강산업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측면이 영국의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데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산업혁명의 이면에는 19세기 유럽역사의 부끄러운 단면인 제국주의가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고 제 상식과 다른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도 분명히 존재하겠지요? 다만 순수하게 기술적 혁신과 발전이 산업혁명을 이끌어낸 유일한 동인은 아니라는 주장에 저는 동의합니다.
계급은 무엇인가?
마르크스 하면 떠오르는 몇몇 단어가 있습니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 공산주의… 이러한 키워드 중에서 특히 계급
은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역시나 계급
에 대한 제 생각은 높음과 낮음으로 구분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정의였습니다. 이러한 정의로 마르크스의 글을 읽으면 철저하게 오독하게 됩니다… ㅠ 개념의 명확한 정의는 고전을 읽을 때 특히나 유념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계급은 무엇일까요?
마르크스에게 계급은 높고 낮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어떤 '관계'를 지칭한다. (80p)
마르크스가 설명하는 계급은 상호 관계로 구성됩니다. 부르주아지는 생산을 위해서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상정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 입장에서는 부르주아지의 부재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 그리고 그의 쏠메인 엥겔스는 계급을 구성하는 관계의 핵심을 생산
으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제품을 소비합니다. 소비하고 소비하고 또 소비합니다. 부르주아지는 이윤의 추구를 위해 자신의 자본을 기반으로 상품을 생산하여 팔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상품의 생산을 위해 노동력을 대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기꺼이 제공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동력을 대가로 얻은 것을 부르주아지가 만들어 낸 상품을 소비하는데 씁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지요.
생산관계
로 얽힌 상호 불가분의 상태가 투쟁
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입니다. 보편적으로 인류는 평화와 이상적인 목적을 꿈꾸며 진보해왔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마르크스는 생산관계
의 긴장 속에서 끊임없이 양자 간의 갈등이 진행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투쟁
은 생산관계
가 있는 한 끊임없이 유지되겠지요.
이 개념은 앞으로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을 때 중요한 개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현실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해석하는데 좋은 틀을 제공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공산주의자요! (112p)
제가 책읅 읽기 전 오해하고 있던 가장 큰 부분은 공산주의
의 개념입니다. 공산
에서 알 수 있듯이 생산 수단 및 소득을 모두가 동등하게 나누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부끄럽지만 한 때는 공산
의 공을 공평한 분배를 의미하는 공(公) 으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마르크스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혁명을 이뤘던 구 공산 국가들의 모습만 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공산
의 공은 함께 공(共)자를 사용하여 공동으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의미보다는 공동체
를 위한 이념 및 운동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고 합니다. 본래 원어인 코뮌(commune)이라는 말이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제 머리가 떙하고 울리는 순간입니다. 이 지점에서 공산주의를 설명하는 내용을 책에서 인용해 봅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기존 공동체의 허위성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시도였다. (115p)
이처럼 공산주의는 보다 완전한 공동체를 구성하려고 시도했던 끊임없는 운동이다. (116p)
아직 마르크스의 주장과 그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가 꿈꾸는 공동체
는 제가 지향하는 삶의 목적과 맞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마르크스를 지속적으로 깊이 살펴보고 싶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킨 부분이기도 합니다.
내 개인의 소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자 여기 또 다시 제 오해가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공산주의
의 핵심은 개인의 모든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것이라는 주장 말입니다. 이 또한 철저한 오해입니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소유의 철폐는 맥락이 다릅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무엇이든 자유롭게 소유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한국사회의 언제나 뜨거운 감자인 부동산, 아니 좀 더 근본적으로 토지
를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우리는 개인의 경제력이 허락하는 한 마음껏 토지를 매매할 수 있습니다. 토지
를 하나의 상품처럼 매매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과연 없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토지
는 다른 상품과 달리 유한한 자원입니다. 개인의 소유가 구별되지만 실상 누구도 토지
를 만드는데 자신의 가치를 들인 적이 없습니다. 토지는 그 자체로 주어진 것이지요. 모두가 자신의 인간적 존엄과 생존이 위협되지 않는 한도에서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돌이켜 보게 되는군요… (아직은 아는 바가 많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2012년부터 조지스트입니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소유의 철폐는 앞서 토지
의 예처럼 타인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배타적인 소유를 없애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소유의 철폐와는 전혀 맥락이 다른 이야기지요? 이제 제 책상에 모셔둔 건담은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 되었…. 네요.
공산주의는 민주주의다
책을 읽으면서 공산당 선언
과 마르크스에 대한 짙은 안개가 걷히는 느낌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사견보다는 그럼 마르크스가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가 하는 점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처럼 공산주의가 지향하고 있는 새로운 공동체는 국가를 넘어 보통 사람들 모두가 정치의 주체가 되는 '세계 시민'의 사회였다. 공산주의자들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세계라는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평등한 구성원이 되는 사회를 꿈꿨던 것이다. (133p)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공산당 선언의 한 구절을 한 번 더 인용해 봅니다.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 (2장)
오늘의 현실에서 나는...
엔지니어로서 제 삶의 '"최대의 화두는 기술로 어떻게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 입니다. 실리콘밸리의 CEO들이 연설할 때마다 입에 줄줄이 외고 다니는 "We will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가 제 마음 속에도 늘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블록체인 기술을 만났습니다. 이전에 공부했던 기술과 달리 불록체인은 단순히 기술 그 이상의 내용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블록체인 기술을 접한 뒤부터 기술과 사회, 정치적 고민들이 끊임없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를 읽는 것 또한 블록체인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과 사회학적 이론과 배경을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정말로 부르주아지를 전복시킬 수 있을지 앞으로 지켜봐야겠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알려주세요. 공유는 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중요한 기회라고 늘 생각합니다. :)
이 글이 많은 분들에게 공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평소의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을텐데 조금이나마 선입견과 오해를 푸는데 도움이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보다 나은 토론과 공부가 함께 더불어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책에 대한 리뷰를 이렇게 자세히 써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추천해 드린 책이 마음에 드신 것 같아서 보람도 있고요ㅎ
산업혁명[공업혁명]과 관련해서는 Robert C. Allen의 The Industrial Revolution을 추천해 드립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은 간단히 정리하면 (1) 식민지를 통한 자본의 축적, (2) 영국의 노동력 비용이 높아서 자본가들이 기계를 통한 비용 절감 추진 이라는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이 Allen의 설명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에는 노동력 비용이 저렴했기 때문에 굳이 기계를 개발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Allen이 쓴 Global Economic History도 좋은 책인데 번역본이 나와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을 추천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책을 시작으로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한 공부하는데 좋은 참고서적과 원포인트 레슨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알고 싶은 것들이 늘어나지만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도록 차근히 살펴봐야겠네요!~
네 관심 있으신 부분에 대해서 여유있게 천천히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소중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모색 같이 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작지만 풀보팅 드립니다.
풀보팅 감사합니다!
스팀에서 더 나은 사회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며 미래를 그려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짱짱맨 x 마나마인! 색연필과학만화
https://steemit.com/kr/@mmcartoon-kr/4cmrbc
존버앤캘리에 이은 웹툰입니다
아이들이 보기에도 좋을꺼 같아요^^ 글작가님이 무려 스탠포드 물리학박사라고......
보팅과 추천글 모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