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4권(120)

제2절 전투 경과 개요
제1항 숙천 순천 전투(낙하산 강하 작전)
10월 19일 적도 평양을 완전히 점령한 아군 부대는 일로 압록강변으로 진격을 개시, 4283년 10월 20일 미 제11공정사단의 제187연대는 국경선을 향하여 패주하는 적 괴뢰군에게 재편의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음과 동시에 점차로 그 개입의 실현성이 농후해지는 중공군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하여 평양 북방의 숙천과 순천 간에 제1차로 4,000명의 낙하산 작전을 전개하고 동월 21일에는 1,800명의 낙하산 부대가 또다시 숙천에 낙하하여 국경선을 향하여 도주하는 잔적을 일망타진함과 동시에 아군의 급속한 진격에 박차를 가하였으며, 낙하산 작전이 실시되는 날 국련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에게 전 국련군은 조속히 국경선에 도달하라는 명령을 발함으로서 진격에 일대 박차를 가하게 되었으며, 낙하산 부대는 착륙하자 우선 숙천과 순천 지구의 통신망을 두절시켜, 평양 지구에 잔류하여 저항하는 패잔병에게 위협을 가하며, 적의 패주격인 신안주 및 안주와 군우리에 이르는 철도와 도로를 차단하여 적의 평양 지구 방어 부대에 대하여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반면에, 국련군의 포로를 석방하게 함은 한국동란뿐만이 아니라, 어느 전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전략의 하나였다.
제2항 성천 개천 부근 전투(요도 제50 참조)
10월 20일의 상황
제6사단 제7연대는 사단 작명 제7호에 의거 연대 주력은 23:00 성천에 투입 후 각 지원포를 각대의 공격 방향에 대하여 지원하게 하고 제19연대는 제7연대의 진출에 따라 그 후속부대로서 신양덕을 향하고 제2대대는 원동을 출발하고, 또한 제3대대는 순평동을 출발하였으며, 제19연대는 제7연대의 진출에 따라 11:00 신양덕을 경유, 22:00 연대 지휘소와 각 차량은 목적지인 성천에 도착하여 숙영 후 야포대를 선두로 순천을 향하여 출발하였으며, 아 제7사단은 육본 작명 제221호에 의거 삼등에 집결과 동시에 아 제2군단 예하로부터 해제되어 육본 직할로 되었다.
10월 21일의 정황
제2연대는 08:00 제3, 제1, 제2대대 순으로 성천을 출발하여 연대는 운산리의 10㎞ 전방까지 진출 중, 제2대대는 15:00 운산에 도착하고, 제3대대는 운산을 통과하여 제2대대는 22:00 은산(殷山)을 출발하고, 야포대는 연대지휘소와 같이 21:00 은산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제7연대 제2대대는 06:00 군우리 전방 15㎞ 지점까지 전진 중 연대 주력은 기동으로서 희천에 투입하였으며, 제19연대 제1대대도 13:30 순천을 출발하여 용원리에 도착하여 숙영하고 야포대는 각대의 진출에 따라 지원사격 해 가면서 사단 지휘소는 은산으로 이동하였다.
10월 22일의 상황
제2연대 지휘소와 제1대대는 17:20 개천에 돌입하고 후속부대인 제2대대와 제3대대는 개천 전방 2㎞ 지점까지 진출 중이며, 지원포는 연대 지휘소와 같이 행동하였으며, 제7연대 제3대대는 어제 17:30 개천에 돌입하였으나, 연대본부와 제1, 제2대대는 순천에 위치하고 07:00 기동으로서 희천을 향하여 전진 중 적 약 1개 연대와 조우하게 되어 치열한 교전 끝에 적은 분산 도주하고 또한 신안동에서 북상하는 탄약차 2대와 전차 8대를 노획하였다.
그리고 제19연대는 12:00 용원리를 출발하여 개천에 돌입 후 제3대대는 대전차포 중대와 야포대를 지원부대로 하여 개천을 출발, 영변으로 향하는 중 19:30 적 약 1개 중대와 조우하게 되어 아 제3대대는 적을 격퇴하고, 영변을 완전 확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