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함정이다

인디 해커 인터뷰를 읽다 보면 거의 항상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을 만들었다." 이 문장이 인터뷰의 앞 단락쯤에 박혀 있고, 그 다음에 어떻게 그것이 잘 됐는지의 이야기가 따라옵니다. 잘 된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그 문장이 좋은 출발점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그 다음 사람도, 그 다음 사람도,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부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출발점이 함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적으면 비웃음을 살 수 있다는 걸 압니다. "그럼 만들기 싫은 걸 만들라는 말이냐" 라는 반박이 바로 들어옵니다. 그게 아닙니다. 만들고 싶은 마음이 출발점이 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럽습니다. 문제는 그 마음이 "시장이 이 문제에 돈을 낸다" 라는 신호와 거의 무관하다는 점입니다. 두 가지가 일치할 가능성도 있는데, 그 일치는 대체로 우연이라고 봅니다. 그 우연을 자기 직관의 정확도로 착각하는 순간 6개월이 사라집니다.

저에게 있었던 일을 적어두면 이렇습니다.

한참 전에 어떤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습니다. 평소에 제가 자주 겪던 작은 불편을 해결하는 도구였고, 만드는 동안에는 "이거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라는 감각이 강했습니다. 출시하고 한 달, 세 달, 여섯 달이 지났습니다. 방문자가 안 들어왔습니다. 직접 검색해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고, SNS 에 풀어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도구 자체는 잘 돌아갔습니다. 제가 잘 썼습니다. 저 말고는 거의 아무도 안 썼습니다.

이게 사실은 흔한 결말입니다. 인디 해커 인터뷰에 안 실리는 결말 쪽입니다.

여기서 잘못된 추론을 한 가지 더 적자면, 그때 저는 "마케팅이 부족했다" 라고 결론을 냈습니다. 채널을 더 풀면 들어올 거라고 봤습니다. 채널을 더 풀어도 안 들어왔습니다. 그제서야 "이 문제가 풀 만한 문제이긴 한가" 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심을 한참 더 늦게 했어야 할 일이 아니라, 만들기 전에 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반대 순서로 일합니다.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시장이 이미 미세하게 반응을 보이는 영역을 먼저 찾습니다. 검색량이 있는 키워드, 정보가 부족한 좁은 질문, 답이 흩어져 있는 작은 영역. 그 위에 가장 짧은 형태의 도구를 얹어 올립니다. 그 다음에야 그것을 키울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이 순서가 옳다고 단언하지는 못합니다.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해서 큰 것을 만든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내가 만들고 싶다" 는 직관이 시장 신호와 어떤 이유로든 잘 겹쳐 있었거나, 시장 신호가 약한 단계에서도 충분히 오래 버틸 수 있는 자원이 있었거나, 둘 다였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그 사람들의 조건이지 일반 원칙은 아닙니다.

일반 원칙으로 다듬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내가 만들고 싶다" 는 시장 가설과 같은 강도의 정보가 아니라, 시장 가설을 어디서부터 세울지 정해주는 출발 좌표 정도의 정보입니다. 좌표가 잡힌 다음에는 그 좌표가 시장과 만나는지를 별도 작업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만들고 싶은 마음 자체가 시장 신호의 대용품이 되어버리면, 그 다음에 들어오는 모든 데이터가 그 가정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해석되기 시작합니다. 안 들어오는 방문자는 "마케팅 부족" 이 되고, 떠나는 사용자는 "UX 부족" 이 됩니다. 정작 의심해야 할 것은 그 위쪽입니다.

여기까지 적고 나서,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이 글의 논조는 제가 지금 이 시점에 가진 견해이고, 한참 더 가본 뒤에는 다른 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단계의 사람에게는 시장 신호 추적이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정말로 풀고 싶은 문제 하나를 오래 잡고 있어야 풀리는 종류의 문제가 따로 있을 수 있다고도 봅니다. 저는 아직 그 단계가 아니라서 다른 쪽을 권하고 있는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