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in #kr-diary2 days ago

오늘은(이제는 어제인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이 되었다. 지난주 가족 몽미에서, 올해부터 몇년간은 우리 집에서 할아버지,할머니 제사를 지낸다고 공표했고, 그래서 나도 집에 와서 같이 제사를 지냈다.

오늘은 연구소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유난히 많았다. 늦은 시간까지 일을 마치고 출발한 탓에 밤 10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했고, 가방을 내려놓을 틈도 없이 곧바로 제사가 시작되었다.

동생은 치킨을 한 마리 사 들고 왔다. 제사상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제사가 끝난 뒤 가족들과 한 조각씩 나누어 먹었다. 치킨을 먹는 순간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할머니를 찾아뵐 때면 가족들이 종종 치킨이나 갈비탕, 홍어회 같은 음식을 사 들고 가곤 했다. 아마 동생도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치킨을 사 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평범한 치킨 한 조각이었지만, 그 안에는 가족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겹쳐 보였고, 그래서인지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제사를 마친 뒤에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유난히 일이 많았고, 하루 종일 긴장감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미국에서 오신 교수님과 몇 시간 동안 연구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토론 자체는 매우 의미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했다. 최근에 작업하고 있는 논문, 논문 진행 절차, 그리고 이런저런 해외 출장 관련 일들 등이 겹치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는지, 집에만 있기보다 잠시 밖으로 나가 한 시간 정도 걸었다.

최근 읽은 셰인 오마라의 『걷기의 세계』가 떠오르기도 했다. 걸으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도 차분해진다는 이야기에 공감하며 천천히 걸어 보려 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발가락 통증이 심해져 오히려 걷는 내내 고생했다.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 있었다. (어느정도 독서 기록을 작성 중에 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데만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기보다 기록으로 남기려는 습관 덕분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이렇게 적어 두면 그날의 감정과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돌아보면 오늘은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온 하루였다. 가족들과 함께 조용히 제사를 지내며 지난 시간을 떠올렸고, 연구자로서는 치열한 토론 속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면서는 걷고 기록하는 시간을 통해 마음을 정리하려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이런 하루도 시간이 지나면 또 하나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내일, 아니 이제는 오늘은 휴일이니. 잠시 연구와 일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쉬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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