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168)

  1. 적의 상황
    단기 4284년 3월 상순경 오대산맥과 태백산맥의 산줄기를 타고 맨 먼저 태백산까지 남하 침투하였던 경무장의 적 괴뢰군 제10사단 병력 약 9,000명은 82밀리 박격포 35문, 로켓포 3문, 규격 미상의 박격포 10문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격심한 아군의 공습과 지상 포사격으로 그들의 항전 의욕을 날로 위축시키는 가운데 후방과의 연락이 두절되고 상부의 보급 계통이 중단 또는 지리멸렬(支離滅裂) 상태에 빠지게 되니 주력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선발로 남하하였던 그들의 보급은 전무 상태가 되어 버리고 식량도 현지 조달이란 미명 하에 약탈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아군의 급추(急追)로 말미암아 이 역시 여의치 못하여 보급 전반이 궁지에 처하여 있었다.
    더욱이 사단 간부진에 장질부사(膓窒扶斯) 전염병이 만연됨에 따라 심적인 초조감과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강약(强藥)의 결핍(缺乏)까지 제래(齊來)하게 되어 사기는 극도로 저하되어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적은 평창 방면으로의 철수 명령을 받자 석포리(ER0498) 부근에서 아군 제2사단의 포위망을 간신히 돌파하고 북상을 개시한 것인데, 이곳에서 호시탐탐 대기 포진 중의 아 제9사단에 부딪치자, 적은 아군에 대하여 소수 병력의 양공을 간단없이 속행함으로써 주력 부대의 퇴각을 엄호 해가며 목적지까지의 북상을 기도하고 있었다.
  2. 아군의 상황
    위와 같은 적의 상황에 직면한 아 제9사단장 이정일(후일 이성가로 개명) 준장은 관측의 제한을 받는 준령이 중첩된 지대로 지형이 불리하였으나, 병력 장비가 적보다 우세함과 아울러 연초 북한으로부터의 본의 아닌 철수에 대한 울분을 풀려는 왕성한 부하 전원의 사기에 의탁하여, 신기리 방면으로부터 삼화리 일대를 경유하여, 동해안의 산악지대를 따라 북상을 기도하는 적에 대하여 앞질러 그의 퇴로를 차단함으로써, 멀리 서북방 평창 이북의 적 주진지로 복귀, 합류하려는 적의 북상을 저지시키는 동시에, 이를 포착 완전 섬멸하려는 작전기획을 수립하고, 적의 출현을 대기 중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