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3 민주화의 결과, 모순과 부도덕, 몰상식이 강물처럼 넘치는 시대
이재명 정권이 역대 그 누구도 감히 하지 못했던 매국적 행동을 감행한 것을 보면서 머리가 복잡하다.
이재명은 앞으로 역사의 심판장에서 매국노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4.19 혁명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부통치에 대한 민주화운동은 가열차게 전개되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그 결과 민주화를 이룩했다.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은 한국에서 이루어진 민주화의 총결산이다.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최종산물인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최종산물인 이재명을 역사의 심판에서 매국노로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필자는 과연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에서의 민주화란 무늬만 요란하고 소리만 시끄러운 수레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민주화로 우리가 기대했던 세상이 무엇이었을까?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는 세상이 아니었던가? 지금 우리는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인민의 삶이 부유해지고 풍족해졌는가?
구체적인 숫자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인민의 삶은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때 더 살기 좋았던 것 같다. 물론 박정희 당시 인민의 삶은 어려웠다. 그러나 그때는 자본이 축적되는 시기였다.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자본이 형성되었고, 그 이후 인민의 삶은 점점 더 나아졌다. 중산층도 많이 형성되었다.
한국에서 박정희 시대는 자본의 원시적 축적과정이라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당시 한국 자본의 원시적 축적과정은 다른 나라의 경우에 비해 잔혹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국과 같이 거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자본을 축적해 가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희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형성된 자본이 민족자본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매판자본으로 변해갔다는 것이라고 하겠다. 자본은 그 성격상 국가의 정치적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한국에서의 민주화는 인민의 삶을 고양하기 보다는 자본이 정치적 통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일조한 측면이 더 강하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것은 한국의 자본이 현재 보이고 있는 그 행태와 성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인민의 삶보다는 오히려 자본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 것으로 귀결된 것이다.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은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당시의 노동운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은 맞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운동은 오히려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운동이나 모두 현재의 최종상태는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이재명 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매국적 행위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화 운동과정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생각했었을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뒤돌아 보면 소위 민주화세력들이 인민의 삶을 고양시키기 보다는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데 더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는 중산층이 형성되고 더 많아졌다. 민주화되면서 중산층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민주화되면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중산층이 줄어들며, 노동자의 권익을 점점 더 무시되는 것인가? 그게 민주화의 결과인가? 나는 그런 민주화는 단연코 배격한다.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에 대한 나름의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그런 부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정치를 하던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의 삶을 고양하는 것이다. 인민의 삶이 추락하는 그 어떤 민주화도 정의롭지 않다.
우리는 민주화 운동의 결과 정의는 점점 더 사라지고, 모순과 부도덕 그리고 몰상식이 강물처럼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