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4 저질스런 정치적 풍토의 원인으로 본 인문학의 위기
한국의 위기는 여러가지 분야에서 관찰된다. 정치 경제적 위기 그리고 한국이 처한 국제정치적 위기 등등이다.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인문학의 위기다. 한국이 처한 숫한 여러 현실적 위기의 배후에는 인문학적 위기가 가장 심각하다는 것이다.
한동안 인문학에 투자를 하지 않아서 인문학이 위기에 빠졌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국가와 사회가 인문학에 재정적인 투자를 하지 않다보니 인문학이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우리가 목도하는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하는 사람들이 인문학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삶의 태도와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에 경제적으로 투자하면 인문학적 성찰의 능력이 고양되는 것일까?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려면 인문학이 무엇하는 학문이며, 인문학을 통해 우리는 아떤 효용을 거둘 수 있는가하는 점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인문학은 무엇을 하는 학문일까? 인문학은 지식의 영역인가 아니면 삶에 대한 통찰과 이를 통한 내면의 성장이라는 경험적 정신적 영역일까? 필자는 지식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통찰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격조높은 삶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이란 지식의 영역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격을 높이지 못하면, 굳이 인문학을 공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인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무학의 우리 할머니들이 요즘의 인문학자입네 하는 자들보다 훨씬 훌륭한 삶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인문학적 지식만 가지고 있고 자신의 삶의 태도를 고양하지 못한다면 인문학의 효용성은 별무하다고 하겠다.
필자가 이런 한국사회의 위기를 인문학의 위기에서 그 이유와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한국이 처한 여러가지 문제중의 하나로 한국의 지배세력들과 주도세력들이 매우 저속하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최근 한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반적으로 저속해졌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정적에 대한 태도도 매우 저속하기 이를데 없다. 신랄한 비판과 저속한 비판은 차이가 있다. 상대방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속하게 비아냥거리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태도는 분노를 야기하고 한국사회 전체를 이성보다는 감정적으로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필요이상으로 자극하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한국의 인문학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노무현 정권이후 비아냥거리고 상대방을 모독하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났다. 이제 정치란 상대방의 감정을 훼손하고 비아냥거리는 작업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문제는 이런 현상을 한국의 대중들이 비판없이 수용하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 자체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 하는 사람의 위기가 아닌가 한다. 인문학이 단순한 지식의 영역에 머물게 되면서 삶의 태도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했다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저속한 삶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인문학이 사회적 효용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인문학이란 삶의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학문이다. 인문학을 통해서 삶을 바라보는 성찰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문학을 했다는 사람이 오히려 상대방을 비아냥거리고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문학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인문학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최근의 한국사회는 매우 저속해졌다. 이런 저속함이 가능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 한국 인문학의 타락이 아닌가 한다. 인문학을 통해 삶의 격조는 고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인문학을 했다는 사람이 혐오와 분열을 조장한다. 인문학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에 자원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단순한 지식의 영역에서 바라보면 안되는 이유다.
최근 한국의 저질스런 정치적 풍토 그 배후에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인문학 때문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