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4 촘스키와 한국 지식인의 차이, 제국주의의 도구와 당파적 수단의 차이

앱스타인 파일이 공개되었다고 한다. 들려오는 이야기가 매우 혼란스럽다. 사람을 희생제물로 썼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니 뭐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실이라고 해도 믿고 싶지 않을 내용들이다.

그 중에서 놈 촘스키가 엡스타인과 교류가 있었고 돈이 오갔다는 내용이 있었다. 노암 촘스키는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이었다. 그런 그가 엡스타인과 돈거래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강내희 선생이 놈 촘스키에 대한 포스팅을 올려주었다. 피오렐라 이사벨이 텔레그램을 통해 노암 촘스키를 평가한 글은 아래와 같다.

“놈 촘스키는 기껏해야 시온주의자이자 리버럴 앞잡이(Liberal Creep)에 불과하다.

아니, 사실 그는 오만하게 지성화된 리버럴 좌파(liberal left)가 낳은 역겨운 산물이다. 그가 혁명가이기는커녕 그의 일관된 본모습이 기회주의적이고 통제된 반대파 지식인이라는 사실은 진즉에 폭로되어야 했다. 그의 역할은 혁명적 저항 운동이나 투쟁을 진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즉, 진정한 반제국주의 저항의 물길을 자유주의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돌려놓는 역할 말이다.”

피오렐라 이사벨에 의하면 촘스키는 미국 제국주의의 도구였던 셈이다. 필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피오렐라 이사벨의 평가를 요약하면 촘스키는 ‘반제국주의 저항의 물길을 자유주의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돌려놓는 역할을 하는 기회주의적이고 통제된 반대파 지식인’이란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이런 지식인이 지배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현재 한국과 미국의 관세협상에서 트럼프를 비판하면서 이재명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 지식인과 시민사회단체가 모두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상황은 미국보다 더 나쁘다. 촘스키는 제한된 범주내에서 미국을 비판했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제한된 범위내에서조차 이재명을 비판하지 못한다.

촘스키와 한국의 지식인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촘스키가 통제된 지식인으로 미국의 제국주의를 위해 복무했다면, 한국의 지식인과 사회단체는 한국의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재명 정권을 위해서 복무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재명을 위한 복무로 자기 개인의 이익으로 환원시키고 있는 과정이다.

한국의 지식인과 사회단체들이 한국의 이익을 위해서 복무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한국 지식인의 수준은 그정도도 되지 못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그동안 촘스키에 대해 그리 정서적으로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차라리 제국주의자인 미어샤이머의 주장이 더 믿을만 했다. 자신이 결국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감추고 있는자에 대한 본질적인 불신이라고 할까? 아마도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지인 중에서 오래전부터 촘스키에 대해 이상하다고 평가한 사람들이 있었다. 뭔지 모를 느낌과 불신감 이런 것들은 이상하게도 들어맞을 때가 있다.

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의 지식인 중에서 문정인과 같은 자들의 위선적 행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극우인가 사사카와가 제공한 자금으로 한국 사사까와 재단 이사장을 했던 자다. 진보 지식인연 하면서 일본 극우 전범 출신이 출자한 자금으로 만들어진 재단 이사장을 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필자는 한국의 진보세력들이 모두 자멸했다고 보고 있다. 최근 관세협상이후 이재명과 신을사5적을 비판하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 촘스키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지금 한국의 자칭 진보세력은 한미관세협상을 성사시킨 이재명을 외교천재라고 칭송하고 있다.

지금 그들은 이완용도 외교천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살다보면 타협해야 할때가 있고 타협하지 말아야 하는 때가 있다. 정상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면 미국과 트럼프를 비판하는 것 이상으로 이재명과 신을사오적을 비판해야 한다.

한미관세협상으로 초래될 부정적 현상들이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다. 이재명 정권은 이런 상황을 최대한 회피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미국의 상황은 정작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다. 트럼프 정권은 이재명 정권의 사정을 봐줄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바닥경기는 최악이라고 한다. 앞으로 상황의 악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지금 코스피 5000을 넘어가고 있지만, 주식시장의 활황이 한국경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주식시장에 개미들이 진입하면 이제 대자본들이 털어먹는 일만 남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현재의 주식시장은 실물경기와 전혀 동떨어진 유동성의 게임이다. 이런 유동성 게임에서 개인은 이익을 보기 보다는 털리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이재명 정권이 주식시장의 환각효과를 이용해서 대중의 눈을 속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재명이 부동산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미 부동산은 하락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부동산 경기부진의 문제가 더 심각할 것이다. 이재명은 대중의 분노에 편승해서 대중의 분노를 회피하려고 하는 얄팍한 술수를 부리고 있는 중이다.

이재명은 지금과 다른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모두 놓쳤다. 가장 아쉬운 것은 조선과의 관계였다. 누차 이야기했지만 한국이 지금의 지정학적 대격변으로 초래되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출구가 조선과의 관계 재정리였다. 그러나 이재명은 그런 가능성을 완전하게 무시했다. 조선은 이재명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그 어떤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이 미국과 관세협상을 하면서, 조선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주도권을 양보받았어야 했다. 필자는 이재명 정권이 앞으로 국정운영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것은 자신이 행동할 수 있는 여유공간을 전혀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그런 행정적 개선이 아니다. 지금 이재명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의 행정적 개선의 연속선상에 있을뿐이다.

이재명은 국가통수권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자체가 부재한 상황이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재명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야 했다. 그러나 한국의 지식인들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최근 내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진보정치의 소멸이다. 한국에서 지식인이란 결국 통제와 조작에 동원되는 수단과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나마 촘스키는 제국주의라는 미국의 국가적 도구라면, 현재 한국의 지식인들은 당파적 이익에 동원되는 기회주의적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