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영화제 일기

in #stimcity2 years ago (edited)

공식 개막은 7일 차지만 연예인이 잔뜩 나오는 개막식을 거른 나에겐 오늘이 6일 차다. 이쯤 되니 점점 영화제 스케줄에 익숙해져 간다. 비일상적이기에 특별하고 그렇기에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축제의 본질이 아닐까. 직접 부딪히며 만들어간 영화제 근육을 얼마 써보지도 못한 채 서울로 돌아갈 일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아쉬워진다.

'한 번쯤은 괜찮지 뭐'라는 생각으로 정말 보고 싶은데 저녁 밖에 시간이 되지 않는 영화를 세 편 예매했다. 일을 그만둔 후로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오후 7시 이후로 일정을 잡지 않았는데, 가끔의 일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첫 작품은 오래전부터 기대하던 차이밍량 감독의 작품이 수록된 거장의 단편 시리즈였다. 상영은 저녁 여덟시 반 시작. 하필 이번 작품은 카메라 무빙이 전혀 없고, 서사도 없었다. 초 단위로 자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며 처음 경험해보았다. 너무 졸린데, 너무 보고 싶었다. 수십 번을 자다깨다를 반복. 영화의 이미지는 남아있지만, 느리게 흘러가는 그 흐름은 전혀 느끼질 못했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 고됐다. 몸도 정말 좋지 않았다. 남은 두 편의 영화를 고심 끝에 취소했다.


매일 일기를 쓰려 노력 중이다. 오늘도 아침에 일기를 쓰다 영화제 기록을 조금이라도 더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영화제는 영화 감상이 목표라 영화제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는데, 오늘부터는 짬을 내 익숙해진 영화제 곳곳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둘 생각이다. SNS에 올리거나 어떤 예술적인 활동이 아니다. 오래 기억하기 위해 곧 사라질 풍경을 기록하고 싶을 뿐이다.

당사자가 되어 겪을 때는 그 일이 아주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어느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돌연 백수가 되어 하루에 세 편씩, (서른 넘은 내가) 엄카를 쓰며 영화제 기간 전체를 만끽하고 있는 이 시기도 당연히 당연한 것이 아니다. 점점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으니 보다 열심히 즐기고 그 행복한 기억을 많이 기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영화제는 영화제 기간 중 상영작을 온라인으로 결제해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취소한 두 편의 영화를 짬을 내 맥북으로 볼 생각이다. 이 글을 쓴 후에는 오스카 피터슨: 블랙+화이트를 볼 것이다. 아주아주 소중하고 행복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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