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in #stimcity2 years ago (edited)

1 몇 주 전 사주를 봤던 사이트에는 독특하게도 전년도 운세를 함께 볼 수 있었는데, 작년 초를 가리켜 그때엔 무슨 일을 하려고 애써도 결국 안 된다고 나와 있었다. 그때는 내가 유튜브에 힘을 쏟던 시기이다. 그 채널이 흐지부지된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어쩌면 정해져 있는 것이었나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2 반년 가까이 유튜브를 하며 가장 크게 얻은 게 무엇인가 돌이켜보면 역시 영상 찍던 친구와 보낸 시간들이다. 원래도 가까운 사이였지만 촬영 때문에 수시로 내 집을 오가게 되며 어쩔 수 없이 숨기고 싶은 나의 모습을 많이 보이게 되었고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새에 그 친구에게 많이 의지하게 되었던 것 같다. 유튜브가 아니었다면 아직까지도 친한 동료 혹은 동생 정도로만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가족같이 느껴진다. 한 주에 두세 번 차곡차곡 내 방에서 그 친구와 시간을 보내며 뭔가를 만들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시간들, 촬영 끝나고 좋아하는 동네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근처 맛집을 찾아다니던 시간이 무척 소중하다.

3 그때가 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내가 그 안에서 음악을 했기 때문일 텐데, 친구와 그 채널을 하게 된 계기에는 그 친구가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것도 컸다. 그렇다 보니 그 안에서 오는 어떤 형태의 위로가 있었다. 늘 잘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괴로워하는 나와 무조건 좋다고 해주던 친구의 모습을 생각하니 어쩐지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4 이런 감상에 젖게 된 것은 아직 영상이 공개돼있어 간간이 사람들에게 피드백이 오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거의 반응이 없다시피 한데, 유튜브 홍보를 목적으로 시작했던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렸던 한 곡이 일 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재생되고 있다.

5 아마도 알고리즘을 탔을거라 생각하지만(사클에도 알고리즘이 있나?) 한참 전에 올린 연주가 계속 사람들에게 플레이되는 일이 신기하다. 더 신기한 것은 재생되는 횟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이다.


6 어제는 무리하다 종일 두통으로 고생했고 결국 저녁 운동을 못하게 되었다. 그 여파로 오늘 러닝까지 쉬게 되었는데, 참담한 마음에 뭐라도 해볼까 하다 간단한 요가 영상을 하나 따라 했다. 요가를 막 마친 고요한 마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듣는 사운드 클라우드의 그 연주를 들었다.

7 내 연주를 듣지 않는 이유는 당연히 별로여서다. 오랜만에 들어도 역시 별로고 나만 알 수 있는 내 쪼들이 수시로 나와 몹시 괴로웠다. 그렇지만 놀란 것은 내가 이 연주를 이렇게 편하게 했었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연주하던 당시가 떠올랐다. 준비했던 곡이 잘 되지 않아 즉흥적으로 당시 많이 듣던 FKJ 노래를 쳤던 것.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진짜 별생각 없이 쳤기 때문이다.

8 이 연주를 사람들이 많이 듣는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이상적이라 생각한 틀 안의 연주보다도, 위태롭게 흔들리는 날것의 연주를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아닐 수도 있다. 맞을 수도 있고.

9 답답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하기로 한 일을 차례로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지난날을 후회하며 지금 당장 피아노 앞에 앉고 싶어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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