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몸의 긴장을 풀고

in #stimcity2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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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명 블루노트에서 발매된, 알프레드 라이언이 프로듀싱하고 루디 반 갤더가 녹음하고 프랜시스 울프의 사진에 리드 마일즈가 앨범 아트를 디자인한(이들은 블루노트 전성기 시절의 드림팀이다) 조 헨더슨의 데뷔 앨범 Page One을 듣고 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앨범 한 바퀴를 다 돌고 자동으로 이어지는 추천곡으로 넘어가 있었다. 오늘은 이 앨범을 집중해서 들어보고 싶었는데... 정신이 든 건 언제 들어도 좋은 강렬한 멜로디의 웨인 쇼터의 Night Dreamer가 나왔기 때문이다.

2 주말엔 부모님이 서울에 왔다. 설에 아빠가 사고가 나면서 추석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서울에 오고 싶어 하는 눈치기도 하고, 요즘 날이 좋기도 해서 가족 네 명이 몇 달 만에 모이게 되었다. 먹었던 음식, 갔던 곳, 순간순간 있었던 일, 아빠와 엄마가 한 말들을 빠짐없이 기록해두고 싶은데, 동생까지 출근시키고 겨우 혼자 남은 지금은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이 멍하기만 하다.

3 핸드폰을 두 개 쓰고 있다. 과거를 정리할 겸 원래 쓰던 번호에서 새로운 번호로 넘어가는 게 목표였는데, 어영부영 미루고 갈피를 못 잡다 보니 아직도 두 개의 번호로 사는 중이다. 새로운 번호를 아는 사람은 가족뿐. 요즘은 그 번호로 연결된 핸드폰을 가지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원래 쓰던 번호는 답이 느릴 수밖에 없는데, 부모님의 방문으로 정신이 없어 방전된 핸드폰을 충전해 켜보니 연락이 한 통 와있었다.

4 년 넘게 레슨받던 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삼수 끝에 겨우 입학했는데, 졸업하고도 한참 그 학교에서 조교를 했다. 군대를 꽤 많이 미루다 갔는데, 왠진 모르겠지만 군대에서도 조교 일을 하는 것 같다. 갑작스럽게 나오게 됐는데 만날 수 있겠냐는 연락. 내일이 복귀일이라 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오늘도 괜찮다고 이른 아침 답을 보내두었다.

5 수시로 답이 왔는지 핸드폰을 확인한다. 학생을 만날 수도 있으니 오늘은 뭘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한 주만에 바깥 풍경이 죄다 변해버렸다. 방 창문에서 보이는 나무에는 푸른 잎이 돋고 있다. 늘 보던 풍경이 한순간에 변함을 느낀다. 익숙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곳들이 죄다 새롭게 보인다. 도서관에 갈까 했지만 이 따사롭고 선선한 봄날에 책을 읽는 건 지루하게 느껴진다.

6 전주국제영화제를 가기로 했다. 영화제는 29일부터 시작인데 벌써부터 무슨 옷을 입을지, 어떤 신발을 신을지 마음이 들뜬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중학생 때부터 갔지만, 영화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것은, 오로지 영화 관람을 목표로 가는 것은 처음이다. 상영작 리스트를 보며 나만의 영화 시간표를 짜고 있다. 이 영화들 다 볼 수 있을까? 볼 수 있겠지.

7 이번 가족 여행은 특별했다. 점점 가족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옆방에 엄마아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을 보며 그간 편안한 것만은 아니었구나 생각한다.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 보낼 봄을 기대해본다. 4월엔 뭘 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몸으로 와닿는 봄의 기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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