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쉬쉬하는데서 끝나지 않는 사이버 멍석말이

in SCT.암호화폐.Crypto3 years ago (edited)

폐쇄형 커뮤니티, SNS 덕분에 남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더 쉽게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대고 쑥덕거리기 힘든 이야기들이 좀 더 쉽게 랜선을 타고 친숙한 닉네임의 익명들에게 전달된다. 인터넷 세상 만세다.

내가 어릴 때 서울방송국이 개국했다. 동네 친구들과 골목을 뛰어다니거나 나무작대기를 들고 흙땅에 낙서나 해대는 나이였다. 동네의 일들뿐만 아니라 다른 동네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시작될 나이쯤에 그 방송국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나온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서울에 친척이 있어 방학이 끝나면 신기한 물건이나 이야기를 갖고 등장하던 친구들의 입에서 들은 SBS 방송국과 대만, 미국 방송국이 송출하는 방송내용은 상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이야기에는 진실보다 허풍이 더 많이 섞인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우리집안의 친척들은 전부 경상도 지역에만, 그것도 농업 위주의 소도시에 흩어져 거주했던 탓에 친구들의 이야기는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할 수도 없고 수년간 막연한 상상으로만 남아있던 이미지로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화려하거나 잔혹하거나 외설적이었던 상상의 이미지가 별 것 아닌 현실의 이미지로 전환되기까지 길게는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동네 유선방송국의 재송출을 통해 SBS, STAR를 비롯한 채널명을 기억하기도 힘든 다양한 방송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허풍을 가득 섞어 자랑했던 친구의 이야기들에는 내용물보다 질소포장물이 더 많았다는 걸 느꼈지만 그 친구들과는 이미 헤어진 후였다.


pixabay: RobinHiggins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어제 직장인들의 폐쇄형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모 은행직원의 파탄난 결혼 이야기가 올라왔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공개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캡쳐, 복사, 확대 재생산된 이야기가 퍼져나오기 시작했고 조금 더 지나서는 티스토리나 네이버블로그, 유튜브에도 당사자들의 스토리가 박제되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고 당사자들의 요청으로 몇몇 이미지와 게시글, 관련뉴스들은 삭제되었지만 여전히 구글캐쉬는 이를 기억하고 있고, 치외법권인 유튜브에는 사이버 렉카들이 사고를 실어나르며 돈을 벌고 있다. 댓글에서는 구경꾼들이 모여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는 멍석말이를 즐기고 있다.

이 글의 처음에 썼던 '인터넷 세상 만세', 그 만세 취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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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 success go! go! go!

그야말로 무서운 세상이 왔네요 ㅎㄷㄷ

그러네요. 급격하게 퍼진 뒤에 삭제는 느리니 당사자 입장에서는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피해가 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