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별 거 아닌 일에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어이없을 만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아빠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거나 쪼잔한 사람이 되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아빠는 늘 용돈을 듬뿍 쥐여 주었고 무리해서 사람들에게 술과 밥을 샀다. 엄마는 노후를 걱정했지만, 아빠는 지금 멋지게 사는 게 중요했다. 아빠는 자신의 계획이 모두 있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나의 이사 날에 비가 왔는데 그건 아빠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멀쩡하던 하늘은 거짓말처럼 이삿짐을 잔뜩 쌓은 트럭이 도로에 접어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폭우를 내렸다. 택시를 타고 가다 그 장면을 본 우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하며 아빠에게 다리 같은 곳에 세워서 비닐이라도 구해서 짐을 덮어 달라고 사정했다.
아빠는 역정을 냈다. 아빠는 아빠의 계획에 반하는 소리를 하면 울컥하며 화를 내곤 했다. 그게 뭐 어렵다고. 엄마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당시 나는 그 작업이 귀찮아서 하고 싶지 않은 줄만 알았다. 아니, 그저 아빠가 평온하다가 화를 잘 내는, 욱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짐은 비에 쫄딱 다 젖었다. 전기 피아노에 물이 들어갔고 아빠 본인이 딸내미 시집갈 때까지 쓰라고 사 준 튼튼한 3단 서랍장도 다 젖어버려 얼마 지나지 않아 뒤판이 분리되어 버렸다.
이상하게도 가족들이 그럴 때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조금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지. 동굴 같은 반지하 원룸을 확인하고 물에 불은 짐을 내려 두고, 내가 정리할 테니 가족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했다. 엄마는 이따금 마음이 약해지는 사람이라서 그 꼴을 보고 편히 잠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많이 속상했다. 나는 짐 정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2주 넘게 남자친구 집에 머물며 그 집을 방치해 두었다.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지 말아야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 가족의 일원으로서 나의 역할은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바꾸는 것도 아니라 별나지 않게 순응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야지 분란이 생기지 않았다. 나의 역할은 착하고 혼자 알아서 잘해서 걱정을 끼치지 않는, 있으나 없으나 티가 나지 않는 딸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그런 내가 아빠와 똑 닮았다는 걸 알게 되는 시점은 늘 의문투성이였다. 코로나 시국 오로지 맛있는 쿠키 집을 찾겠다며 인터넷을 뒤져 30분 넘게 차를 탔다. 이것저것 신나게 쿠키를 사고 인사를 하고 기분 좋게 다시 출발하려던 차에, 초콜릿 맛 쿠키를 사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얼굴이 굳어버렸다.
“아, 초코맛 쿠키를 사지 않았어….”
“다시 사 올래?”
“아냐...그냥 갈래.”
“왜? 다시 사 오자. 다시 또 언제 올지 모르잖아.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보자.”
“싫어… 안 갈래.”
“왜? 다시 사자.”
“싫어…. 가기 싫단 말이야.”
그리고는 고작 쿠키 때문에 추가로 쿠키를 사러 그 가게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엉엉 울어버렸다. 나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유도 모르지만, 너무나도 강렬하고 고통스러워서 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진짜 이걸 못해. 이거 못하겠어. 나 좀 살려줘. 나의 최후의 방어 수단은 눈물이었다. 말보단 늘 눈물이 빨랐다.
내가 울자 L은 차를 다시 주차하고 그 집에 있는 쿠키 맛 3종 세트를 추가로 사다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런 건 백 번도 더 갈 수 있어. 단지 시간이 없고 다리가 아파서 백 번까지 못 갈 뿐이지.”
L은 백 번도 더 갈 그 행위를 왜 나는 단 한 번이 아니면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일까? 주인은 어쨌든 쿠키를 더 사주면 좋아할 거고, 나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을 텐데. 자아가 비대한 이유도 알 수 없는 못 말리는 통제광이었다. 사실 더 쪽팔린 거 쿠키 때문에 울어버리는 다 큰 어른인데도.
아빠가 많이 외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 건 아빠의 사주를 본 그 날이다. 아빠는 누군가 작은 말로도 이래라저래라하거나 비난하는 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빠는 공부를 잘했지만, 대학에 가지 못했고, 큰일을 해야 하고 거기에 걸맞은 능력도 있었지만 그게 좌절되면 너무 힘든데 티도 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외로운 사람이었다.
아빠는 밖에서 인기가 많다. 세상 젠틀하고 돈 잘 쓰고 말이 많지 않아 누구 일에 간섭하거나 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을 갈 때도, 결혼 상대를 데려왔을 때도 언제나 이러쿵저러쿵 걱정하고 잔소리를 하는 건 엄마이지, 아빠가 아니었다. 아빠는 날 무척 사랑했다. 아주 지나칠 정도로 표현을 하지도 않는 주제에 나를 너무너무너무 사랑했다. 엄마보다도 오빠보다도 자신보다도 더.
내가 나대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까 두려워 억누르고 자제했던 것처럼, 아니 나는 나라는 개인의 선택이었지만 아빠는 시대가 사회가 환경이 아빠를 그렇게 눌러버렸는지도 모른다. 못 하는 술을 밤새워 마시라고 누르고, 공부 그만하라고 누르고, 결혼하라고 누르고, 가정을 책임지라고 누르고, 자신을 없애라고 누르고, 누르고 누르고 누르고, 사실은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고 위대한 일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단 한 번도 이해받지 못하고.
그러다가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것뿐이다. 그거라도 통제하고 계획대로 실행한다는 만족감을 얻어야 그래야 살 수 있는 알량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그렇게 별거 아닌 것들에 목숨 걸고, 별거 아닌 것들에서 실수를 하거나 바보가 되는 건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 아빠는 귀찮아서 내 이삿짐을 다 적신 것도 날 사랑하지 않아서 날 배려해주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빠는 남들 앞에서 아빠의 계획이 어그러지거나 바보가 되는 걸 참지 못했던 것뿐이다. 마치 내가 절대로 다시 쿠키를 사러 들어가기 싫었던 것처럼.
아빠는 욱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빠는 외롭고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이었다. 마치 나처럼.
p.s. 34년 동안 주 과업이라고는 나를 이해하기 였는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많이 잘못 알고 있는지. 왜 이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한나절만에 내가 나를 잘못 이해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걸까? @mmerlin 님이 진짜 마법사기 때문에, 나는 그를 만날 운명이 아니었지만 내가 용기를 내고 라라님이 날 구원했기 때문에. 쓸 글은 많지만 오늘 나올 글은 이거다. 이렇게 글을 쓰고 아빠에게 전화 한 번 하지 않는 모순 쟁이 오늘은 안부인사를 드려야겠다.
삶이란게 좀 복잡한 거지요^^
라이프 이즈 심플하고 싶은데 말이쥬. 복잡한 우리내 인생 ㅠ!
초코쿠키땡깡사건은귀여움
근데남편착하닷
ㅋㅋ 귀엽게 봐주시니 다행이네요. 저도 울면서 어이가 없어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울다웃다;;; L군은 착하지만 그렇게 착하지 않답니다(읭?ㅋㅋㅋ) 독한 사람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