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에 감사하기

in #kr6 years ago

pg.jpg
누구나 그렇겠지만 쌀쌀한 날씨에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하면 기분이 좋다. 차가운 공기가 사방에서 밀려와서 집안의 묵은 공기들을 휩쓸어 가면,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내 마음도 같이 깨끗해지는 것만 같다. 정확한 상호작용은 알 수 없다. 실은 그냥 추워서 다른 생각은 다 사라질 뿐일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청소를 마치고 나면 몸이 으스스 떨린다. 그래도 창문을 닫지 않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책을 읽는다. 잡념이 사라져서 책은 잘 읽히고, 내 체온이 이불을 데우며 이불 속은 점점 더 쾌적해진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집안의 공기가 너무 차가워지면 창문을 닫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을 보낼 수 없다. 창문을 오래 열어두면, 집안의 묵은 먼지를 내보내는게 아니라 유독한 먼지를 집안으로 들일 뿐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공기가 유독하다는걸 아는 나는 기분 좋게 심호흡 할 수도 없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몸이 반응을 한다. 콧물이 흐르거나 재채기를 하게 된다. 미세먼지를 많이 마시면 우울증, 자살충동이 찾아올 수 있다고 하는데 우울하거나 자살충동이 찾아오진 않지만, 요즘 기운이 통 없는 것도 미세먼지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일출도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가을의 산도 그 색을 잃었다. 미세먼지는 직접적으로 내 뇌와 호흡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이처럼 간접적으로도 내 평화를 해친다.

이처럼 미세먼지는 마냥 부정적인 존재이지만,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미래에 내 존재를 온전하게 사랑하게 된다면, 나는 내가 나이기 위해서 겪어온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할까? 그렇다면 나는 미세먼지에 감사해야 할까? 물론 그렇진 않을 것이다. 미세먼지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나도,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내 모습이란 미세먼지를 겪었기에 얻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용서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몸과 마음을 해치는 기분 나쁜 존재였지만, 그것들을 겪었어도 나는 내 모습을 사랑하니까, 별일 아니었다며 그냥 그렇게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떠오른 생각을 고작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 하는 내가 지금은 싫다.

Sort:  

창문을 활짝 열고 싶은데 열수 가 없어서
오래전부터 창문형 공기 청정기 가 있었으면 했습니다.
kmlee님이 그런걸 개발하고 부자가 되어서 미세먼지에 감사할 수도 ㅎㅎㅎ

흠...... 심오하네요

나는 내가 나이기 위해서 겪어온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할까?

꼭 미세먼지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 모든것에 감사해야 할까 생각하게 만드네요. ㅎ

미세먼진 너무너무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