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방법들>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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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게는 오늘, 길게는 1년까지의 Planning을 만들어 늘 머릿속에 책장처럼 정리해두는 편이다. 어렸을 적, 하교 시간에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핸드폰이 보편화 되지 않았을 때) 기억부터, 지금 아이폰의 모든 기능을 전부 다 쓸 수 있는 사람은 드물 정도로 발전한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사는 현재까지 기록의 습관은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나만의 노트에 내 펜 (여기서 '나'의것이라 지칭함은 수년간 수많은 구매와 사용을 거쳐 지정된 내 고유의 특성을 가진 것)으로 죽, 죽 선을 그어 주 단위로 달력을 만드는 것. 조그마한 칸이 만들어지면 그 안에 내가 해야 할 일들, 짜여진 약속들, 그리고 일정이 없는 빈 시간까지 한 번에 눈에 보이기 때문에 몰랐던 때보다는 비교적 시간을 덜 낭비하게 된다. 하지만 맥북과 아이폰, 아이패드까지(몇 달 전) 소유했던 나는 클릭 한 번에 모든 게 동기화되는 편리한 이 테크놀로지와 손으로 정리하는 기록의 습관 사이의 괴리에서 무척이나 고민했었던 것. 손으로 노트에 정리하고 나서, 맥북에 또 같은 내용의 이벤트를 만들고, 핸드폰으로 동기화되는 것을 본 후 집 밖을 나갔으니 뭔가 실용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캘린더 뿐만이 아니다. 노트도 마찬가지로 문득 지하철을 타다가도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펜과 노트를 꺼내 기록하는데, 어떨 때는 이걸 핸드폰으로 옮기기가 귀찮아 사진으로 찍어놓기도 했으니.. 글-사진-타이핑-손글씨 이 복잡하고 다양한 기록의 작업들을 어떻게 단순화 또는 통일화 시킬 것인가, 는 사실 아직도 고민하는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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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Moleskine

    몰스킨 Moleskin에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최근 Smart Writing 공책을 선보였다. 아주 작은 마이크로칩들이 내장된 공책으로, 이 센서들이 감지할 수 있는 펜 (과같이 구매해야 함) 으로 그 공책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지정된 핸드폰이나 컴퓨터 앱에 Sync 되어 그대로 옮겨지는 신선한 기술인데.... 이것이 과연 쓰고, 또 타이핑하고, 공책을 꺼내서 확인하다가, 또 핸드폰 속 자료를 찾아야 하는 그 번거로움을 한 방에 해결시켜 줄 것인가 라는 의심은 아직 가시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로는 아직 사용해보지 못해서. 가격면 접근성의 벽이 높다. 공책과 펜으로 구성된 세트의 가격이 $199로, 한화로 약 23만원이 넘는다. 게다가 노트는 재활용 할 수 없으니 다 쓰면 당연히 또 구매해야 할 것이고, 가끔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마구 쓰고 싶을 때도 있는데 노트 한장이 아까워서 쓸 수 있을까? 구글에 리뷰를 찾아보면 가장 윗단에 명시되는 부분이 가격책정에 대한 아쉬움인데 공책과 펜 하나에 23만원이라니, 얼리어답터도 아니고 그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일 수 있다.

    굳이 손글씨를 고집하는 이유로 또 한가지는 이 신기한 기술의 발전을 뒤로하더라도, 공책과 컴퓨터, 핸드폰을 죽 펼쳐놓고 열심히 옮겨가며 정리하는 과정에서 창출되는 아이디어들도 의외로 빈번하기 때문. 더군다나 부지런해지는 경향도 있고. 역시 1000원짜리 공책에 뻘글을 마구 적어대는 그 참맛을 잊을 수 없어 이런 혁명적인 기술을 외면 아닌 외면하며 불평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smart writing set 는 한 번은 꼭 써보고 싶..) "실력엔 밀리더라도 장비에는 밀리지 말자" 친한 형이 자주 해주시는 말이다. 역시 모든 건 장비빨인가 싶지만 이건 아직 안써봤으니 무효. 흐음… 어찌됐건 중요한건 생각하고 글을 쓰고 정리하는 노력을 한다는것(!?) 지금 쓰고있는건 무지공책으로 커버가 있는 얼굴만한 공책인데 거의 다 써서 마침 끝이 보이니 사러 또 부그르넬을 가야 할듯 하다. 만원도 안되는 공책인데 단단하고 종이 질도 좋아 어디서든 꺼내 쓰기 편리하기 때문에 몇년째 쓰는중. 이번 공책은 6월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거진 3개월 썼나. 선 간격도 적당하고 스프링도 튼튼해서 가방에 마구 던져놓아도 끄떡없어 좋다. 가성비 갑인 공책을 찾는 분들, 이 하드커버 공책 추천합니다. 얼마전 습작노트를 공개하신 @kyslmate 님 소환해요. 좋은 공책과 펜이 있으면 공유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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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연필로 쓰는걸 좋아합니다 ㅎ 직업상 오선노트를 많이 쓰는데 볼펜으로 적혀 있으면 왠지 이질감이 들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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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노트에는 frixion erasable 펜 많이들 쓰던데, 연필을 고수하시는군요!

뿅! 소환에 응합니다.ㅎ
제가 쓰는 공책은 ibis에서 나온 Ruled notebook 'DOT HOLIC'이라는 공책입니다. A4반 정도의 크기에, 7mm줄, PP커버를 가진, 제 기준에서 좋은 공책이죠. 가격은 한 삼천원쯤.ㅎㅎ 펜은 얼마전까지 pilot super grip 0.7 을 주로 썼어요. 필기감이 미끄럽지 않고 거칠어서 글씨를 흘려쓰지 않게 잡아주는 느낌이 좋거든요. 근데 손힘이 떨어졌는지 요즘은 진하고 잘나가는 볼펜을 자주 씁니다.ㅋ
smart writing set 요거 물건이겠네요. 나중에~ 대중화가 되어 값이 많이 떨어지면 한 번 써볼 수 있을런지요.ㅎㅎ

취향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도구들은 조금씩 변화할수 있지만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두는것 또한 인생 최애 도구들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될듯 하네요. 전 펜은 몇년째 jetstream 0.5와 0.7 두개만 쓰고 있는데 파일럿도 주변에 많이 쓰는게 보여서 궁금했어요. 솔메님도 쓰고계셨군요. ibis 공책도 이번 한국일정때 구매 해야겠어요. 공책은 여러모로 만원이 넘지 않아서 여러권 쟁여둘수 있는게 정이 간다는. ㅎㅎ

ㅎㅎ ibis 공책은 직접 찾으면 없는 곳이 많은데 11번가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선 쉽게 구해지더라구요.
곧 한국 일정이 있으시군요. 곡 들고 오신다셨죠. 작업하신 곡들 궁금합니다. 발표하신후 들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할게요^^

저도 쓰지도 않는 공책, 펜이 가득.. 쓰는 맛이 좋더라구요. 몰스킨 저 아이템도 관심이 있었는데 말씀대로 가격이..ㅋㅋㅋ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써볼만한 가격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뭔가 끝까지(?) 같이 할 운명의 펜과 공책은 따로있는 듯해요. ㅎㅎ 표지가 예뻐서 샀다가 결국 첫장만 쓰고 꽂아둔 비운의... 몰스킨 리뷰로 대리만족 해야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