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가져온 현상

베트남 전쟁은 20년에 걸쳐 벌어졌다.

내전에서 시작하여 대리전, 국제전으로 확대되고, 이데올로기의 승부로 까지 확장되는 동안 전사자 및 사망자 수가 계속해서 늘었다.

일부에서는 500만 명이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을 만큼 많은 사람이 죽었고, 종전 후 최대 250만 명의 사람들이 재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수감되어, 수십만 명이 또 죽어나갔다.


베트남전이 여성의 참전 수도 많았던 전쟁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어쨌든 전사자의 수라는 것은 항상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종전 후 베트남은 젊은 세대의 극단적인 여초 현상을 마주한다. 쉽게 표현해 젊은 세대의 남자들이 한순간에 증발해버렸다.

인구 회복이 절실했던 베트남은,
일부다처를 묵인한다. 사회가 남성들에게 요구했던 가장 중요하고 최우선의 role은 큰 가족의 형성이었기에, 다처의 존재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공식적으로는 다처의 존재가 엄연히 불법이었지만, 과거 1950년대 이전에는 불법이 아니었다. 그리고 농촌 지역에서는 일부다처가 노동력 확보의 수단으로 기능했던 역사가 있다. 따라서 종전 후 남자가 엄청나게 귀해졌던 이 시기에는 일부다처 가정을 베트남 곳곳에서 꽤나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3rd wife.jpg
베트남 영화 the 3rd wife 의 스틸컷.

경제적인 부담 또는 공공의 의무 보다 우선시된 것이 가족의 형성이었기에, 남성들은 가족 형성에 전력을 다했고, 그 외의 의무와 부담은 여성이 담당했다. 경제 활동, 임신과 출산, 집안일, 다처 간 가정 내 화목, 자녀 교육과 공공 부역에서 더 나아가 심지어 국방의 의무까지 사실상 국가의 근간 자체를 여성들이 지탱해왔다고 과언이 아니다.

이 기조가 희미하나마 아직도 이어지고 있어서, 대낮에 여기저기서 놀고 있는 남자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따갑지가 않다. 돈을 벌어오지 않는 남자 때문에 절망하는 여자는 없으며, 내가 벌면 되니까 놀고 있는 처지를 비관하는 남자도 그리 많지 않다.

다만, 해가 진 후 집 밖에 있는 남자에 대한 여자의 히스테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웃긴 게 퇴근길에 차창 밖으로 지나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집 대문 앞이나 주차장 베트남 집들은 1층을 주차장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에 자리를 만들어 두고 티비나 보면서 맥주 마시고 있는 남자들이 줄지어 보인다. 나름 그들에게는 여자의 요구와 본인의 만족 사이를 절충한 아지트랄까.

아직도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는 서너 명의 여성과 아이들의 남편이자 아빠가 한 사람인 케이스가 꽤 있고, 결혼을 혼인 신고는 못하지만 결심함에 있어 나이 차이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3명의 부인이 차례로 열 살 터울인 경우도 많다.


가정의 경제를 부인들이 책임지는 케이스 역시 많다.
남자와 여자가 돈 때문에 싸우는 케이스는 남자의 도박 외에는 많이 접하지 못했다. 물론 해외의 남편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 인식이긴 하지만 2020년대를 목전에 두고서야 변화가 시작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입장에서는 기이하다고 볼 수도 있는 이런 베트남의 전후 사회상을 보노라면, 특정한 시기에 한 국가의 사회에 달하는 거대 집단이 한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일 시 큰 변화는 피할 수 없다.


더 나아가 그 거대 집단이 인위적으로 동시에 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을 요구하면, 거의 모든 구성원의 가치관 마저 바뀌어버릴 수도 있다.

전후 베트남에서는 재교육이라는 명목하에 2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솎아냈다. 그렇게 사회주의는 뿌리 깊게 자리를 잡았다. 이데올로기의 옳고 그름을 떠나,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경험한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처신의 중요함을 귀가 아플 정도로 교육했던 것으로 보인다.

절대로 잘못하지 말 것.
잘못을 했어도, 어쨌든 넌 잘못하지 않은 것.
무슨 말일까.


우리나라 사람들과
베트남 사람들은
업무적으로 얽혔을 때 궁합이 좋은 편은 아니다.

업무 상 issue가 생겼을 시 우리는,
사실 확인 > 원인 파악 > 대안 제시 + R&R 정리

베트남 사람들은,
원인 파악 > 사실 확인 > R&R 정리 > 대안 제시

이들은 왜 시끄러워지는지 부터 확인을 해야 한다.


확실히 문화가 다르고,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답답하다.

나는 업무가 흘러왔던 과정을 빠르게 리뷰하여 히스토리를 정리 후, issue가 되는 부분에서 왜 실수가 발생했는지 밝혀 바로잡을 계획을 세우면서 업무 분담을 하려고 한다.

반면 베트남 직원들 입장에서는 어떤 일이 실제로 벌어졌건, 나는 잘못이 없어야 함.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빠르게 업무 과정을 복기하려는 성향의 한국인 관리자와는 물과 기름이다.


A > B > C
C 라는 결과는 A, B 의 과정을 거쳐 나오는데,
A를 했는가? 라는 물음에 보통 우리는,

네. 또는 아니오, 왜냐하면~ 으로 답이 이어진다.

하지만 같은 물음에 베트남 직원들은 일단 설명을 한다. 하염없이 설명을 한다. 관리자가 모르는 내용이 아님에도, 하염없이 설명을 한 후에 yes or no 의 대답을 한다.

요지는 내 할 일은 분명히 했다는 것이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불가항력적인 이벤트 때문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가끔 드는 생각이 혼자 설명을 하고 복기를 하면서 핑곗거리를 찾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난한 설명 이후 마침내 대답을 듣고 나서 업무 분담을 시작하면 또 한 세월 하소연을 들어줘야 하고 답답한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일단 일이 굴러가게 만들고 나서 책임 소재를 따지는데, 이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 책임이 지워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나 싶을 정도다.

이들이 극도로 기피하는 것이 있다면 특정 업무를 혼자서 담당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업무라도 혼자서 담당하게 되면 불만을 표출한다. 백업 인원은 필요 없고, 동일한 위치에서 업무를 담당할 인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사소한 일이라도 혹 잘못됐을 때, 책임을 떠넘길 상대가 꼭 필요한 것이겠다. 공놀이 상대가 필수인 것. 서로 공 주고 받다 보면 성질 급한 한국인 관리자가 알아서 처리한다는 것도 학습한 마당일 테고.


베트남에 와서 일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나만 이런 답답함을 겪나 싶었는데, 지내보니 대다수 외국인들이 비슷한 답답함을 호소한다. 혹시.. 자아비판이라는 야만적인 행태에 대한 트라우마가 세대를 타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라는 가정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고.

물론 서로가 다름을 인정해야 하나,
책임을 기피하는 문화는 쉬이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잘하면,
그 몫은 다 니거 아니니.

왜 그리 한 발을 빼두려 애들을 쓰는지 답답하다.


월요일부터 베트남 직원들 공놀이를 지켜보느라 시간 낭비, 에너지 소모가 크다. 이미 야근 확정인 거.. 정시 퇴근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니 느긋하게 포스팅할 시간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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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2년가까이 비자일 하다보니 1000% 공감이 너무 됩니다. 결론은 그냥혹시 불장오면 베트남에선 다 정리하고 백수로 살랍니다.^^…

속 많이 터지시죠?ㅠㅠ
여기서 일하다 보면 딴 건 모르겠고 인내심은 정말 많이 길러지는 거 같아요 ㅋㅋㅋ 백수는 어감이 좀 그렇고 부유한 한량 가즈아!ㅋㅋ

덕분에 베트남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트남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읽혔음에 감사합니다.^^

와 횽아 글은 언제 읽어도 쏙쏙 들어옴 ㅋㅋ

그리고 신세한탄을 하기위해 베트남의 역사를 끌어오는 형의 능력! 크으으으

ㅋㅋㅋㅋㅋㅋ
커뮤니티 분위기란 게 있어서 스팀잇엔 그래도 신경 써서 올려야지 ㅋㅋ 다른데 였으면 얘들 왜 이럼? 이렇게 시작했을듯ㅋㅋ

@machellin transfered 0.3 KRWP to @krwp.burn. voting percent : 1.39%, voting power : 37.30%, steem power : 1887979.79, STU KRW : 1200.
@machellin staking status : 144.047 KRWP
@machellin limit for KRWP voting service : 0.144 KRWP (rate : 0.001)
What you sent : 0.3 KR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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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속터져
스트레스 많으시겠어요 ㅠㅡㅠ

변명까지는 그러려니 합니다 이제.
거짓말만 하지 말아줘라... 라는 심정으로 지내요.ㅋㅋ

잘 지내시죠? 연말이네요!!
한해 잘보내세요~.^^

스골형님도 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오랜만에 보이신다! 싶었는데 피신 오셨던 거였군요!ㅋㅋㅋㅋ 신기한 개발자들의 세계!ㅋㅋ

하지만 같은 물음에 베트남 직원들은 일단 설명을 한다. 하염없이 설명을 한다. 관리자가 모르는 내용이 아님에도, 하염없이 설명을 한 후에 yes or no 의 대답을 한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저러면 환장하죠. 주변에도 흔하게 볼 수 있는 ㅠㅠ

진짜 또 시작이다 싶으면서 한숨 부터 나오는데 어쩝니까 일단 들어줘야죠.ㅠ

일부다처제 하라고 해도 하기 싫은 마음이었는데, 아래와 같은 환경이라면 또 모르겠네요^^

남성들은 가족 형성에 전력을 다했고, 그 외의 의무와 부담은 여성이 담당했다.

ㅎㅎㅎㅎㅎㅎ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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