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buskers/city 100] 인간 따위가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5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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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게 된 사건은 따로 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뜻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한 번이다. 그가 의를 입은 일이 말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믿음을 시험당한 이는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신 자신이었다.



<야살의 책>이라는 전승에 의하면 이삭은 형 이스마엘이 13살에 할례를 받고는 이를 동생에게 자랑하자 이삭이 ‘형은 몸의 일부를 잘라냈지만,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면 내 몸 전체를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단다. 신께서 이를 듣고 기뻐하자 못마땅한 사탄이 나타나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기 전까지는 제물도 많이 드리고 전도도 열심히 했는데, 이삭을 얻은 후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꼰지른다. 신의 공의로움이 의심스러운 사탄은 사사건건 신을 시험한다. 이게 정의가 맞냐고 말이다.



사탄의 시험에 든 신은 천사를 보내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한다. 패륜아 아브라함은 오직 신께만 순종하니,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이는 패륜쯤 두렵지 않다. '신께서원한신다면'. 식겁한 사탄은 노인으로 변신하여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신이 인간을 번제로 바치라고 할 리가 없다며 유혹하지만, 아브라함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번지수를 잘 못 집었다. 패륜아라니까. 유혹에 실패한 사탄은 이번에는 이삭에게 가서 아버지가 너를 죽이려고 한다고 꼰지른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사실이냐고 묻자, 아브라함은 사탄이 하는 말 따위 들을 필요 없다며 계속 가자고 한다. 그렇다 한들 상관있겠는가, 이삭은 이미 뱉은 말이 있는데. 결국 사탄은 부자 유혹에 실패하고 이삭의 어머니이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가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고 또 꼰지른다. 그러자 사라는 울면서 아브라함과 이삭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라며 마음은 기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라는 아브라함과 이삭을 찾아 여기저기 헤메고. 사람들에게 아브라함과 이삭을 보지 못했냐며 물으면서 다니다가 결국 상심한 채 길거리에서 죽게 되고 만다.



이후의 이야기는 그대로다. 이삭을 내려치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의 손을 막고 대신 숫양을 제물로 바치게 했다는 것. 이삭은 목숨을 구하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에 등극하지만, 어머니는, 아내는 목숨을 잃었다. 제물은 여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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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서 승리한 것은 신 자신이었다. 시험에 든 이도 신 자신이고. 신의 양극성은 언제나 스스로를 시험한다. 그것은 매트릭스에서처럼, 자신이 만든 피조 세계의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일종의 바이러스 검사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은 PTSD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피조 세계가 죄악 바이러스에 물들어 제대로 기능할 수 없게 되자, 홍수로 하드 포맷을 한 직후가 아닌가. 피조 세계의 오류를 점검하고픈 마음이 드는 게다. 그러니 자꾸 스스로를 시험해 보는 것이지. 억울한 것은 악의 대명사가 된 뱀이고 니므롯일 테다. 오류 검정 테스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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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파에는 또 다른 성서 속 등장인물이 있으니, 고난의 대명사 ‘욥’이다. 그가 은거하며 신의 시험을 버텨내던 동굴이 이 도시에 있다. 이슬람 전승에 의하면 욥은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사람이다. 이삭의 아들인 에서가 욥의 아버지라고. 그러니까 욥은 아브라함의 증손주가 되는 것이다. 이삭의 집 나간 아들 야곱 대신 장자 에서가 종갓집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었으니, 욥이 당대의 거부였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 그런데 오류검증에 탐닉하고 있는 창조주가 이번에는 검증 대상으로 욥을 지목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인물 말이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욥기 1장 1~3절)



동방 최고의 부자, 낙타가 삼천 마리라니 지금으로 치면 고급 세단이 삼천 대쯤 되려나? 도대체 차고가 얼마나 넓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하물며 그런 부자가 온전하고 정직하며 흠도 없단다. 가문의 믿음이 3대를 지나야 꽃을 피운다더니, 욥은 축복이란 축복은 모조리 받았으면서도 흠이 없는 완전한 사람이었다. 자, 그러니 시험의 대상으로도 완벽하다.



신의 반쪽이 자신에게 묻는다.



“어디 갔다 왔소?”

“우리가 창조한 세계를 두루 돌아 여기저기 돌아보았소. 오류가 없나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소.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 했으니.”

“오호 그렇소.? 그렇다면 욥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소?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는 것 같소만.”

“어허 이 양반, 검증에 그리 소홀해서 되겠소?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단 말이요. 그것이 다 풍족하니 그런 것이 아니겠소. 곳간에서 신심(信心) 나는 법이요. 그러니 그의 곳간을 헐어 봅시다. 그래도 그가 신심을 잃지 않는지 말이요. 그것이 참 검증 아니겠소?”

"오호라 그런가? 그렇다면 어디 한번 해 보시오.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 나도 궁금하니."



그리하여 신의 악역은 욥이 가진 모든 것을 싸그리 날려 버린다. 자식들까지도. (생일파티 중 천장이 무너져 몰사시키기까지 했단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의 몸에 악성 종기가 돋아나게 했다. 기왓장으로 벅벅 긁어도 시원해지지 않는 고통까지. 근데 왜 아내는 거둬가지 않았을까? 그건 축복이 아니라 고난이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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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욥의 동굴(Hz Eyyüb Peygamber Makamı). 모든 것을 다 잃고 갈 곳이 없게 된 욥은 병든 몸을 이끌고 이 동굴로 와서 7년을 견뎠다.



신의 이유 모를 테러를 당한 욥은 처음에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고난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여호와께서 주셨던 것, 여호와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라.'(욥기 1장 21절) 이건 인간인가? 프로그래밍대로 반응하는 로봇인가? 보다 못한 욥의 아내는 차라리 신을 욕하고 죽으라고 독설을 날린다.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기 2장 9절)



프로그래밍은 무언가? 그것은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법칙. 창조 세계는 모두 인과응보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류는 그것대로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원인 없이 이루어지는 결과와 발생한 원인에 마땅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오류검증은 그것에 관한 것이다. ‘인과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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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그 범위이다. 하나의 삶과 한 사람의 생에서, 그것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우리의 삶은 연속되고, 사람과 사람, 창조 세계의 모든 피조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물결처럼. 그리하여 작용, 반작용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고, 그 범위는 지구를 넘어 우주 전체에 걸쳐져 있다. 별의 소멸로 탄생한 생명체들처럼. 그러므로 나의 고난은 나의 원인에 의한 결과만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우주 전체의 작용. 나비효과에 의하면 안드로메다 넘어 어느 별의 아메바가 한 어떤 선택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결과인 것이다. 물론 너의 선택의 결과도.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렇게 세상 물정을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 누가 이 땅을 설계했느냐? 그 누가 줄을 치고 금을 그었느냐? 어디에 땅을 받치는 기둥이 박혀 있느냐? 그 누가 세상의 주춧돌을 놓았느냐?

바다가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 그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바다를 구름으로 싸고 먹구름으로 묶어둔 것은 바로 나였다. 바다가 넘지 못하도록 금 그어놓고 문에 빗장을 내려놓은 것은 바로 나였다.

네가 언제고 동이 틀 것을 명령해 본 일이 있느냐? 새벽의 여신에게 "이것이 네 자리다." 하고 일러준 일이 있느냐? 땅의 옷깃을 휘어잡고 불의한 사람들을 그 속에서 털어내라고 명령을 내려본 일이 있느냐?

네가 천상의 운행 법칙을 결정하고 지상의 자연법칙을 만들었느냐? 너는 구름에 호령하여 물을 동이로 쏟아 땅을 뒤덮게 할 수 있느냐? 네가 "나가라."라고 명령하면 "알았습니다." 하며 번갯불이 번쩍 퉁겨 나가느냐?

_ 욥기 3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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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오류를 따지고 드는 신공지능(神工知能) 인간에게 항변한다. 네가 깊고 넓은 개발자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느냐고. 왜 코딩이 이따위냐고 묻는 신공지능에게 너는 피조 세계의 부분일 뿐이라고 일갈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신이고 그는 신적 개발자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불합리해 보이지만 하나의 생에도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신비를 선사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삶의 신비.



현명한 프로그램 ‘욥’은 '신께서 복을 주셨으니, 재앙을 내리시는 것도 당연하지 않소?'라고 말한다. 그게 정답이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위로하다가(긴병에 장사 없으니), 결국은 다 이게 니가 죄를 지어 받는 벌이 아니냐고 힐난한다. 욥도 처음에는 의연하게 대하더니 마침내는 성질이 뻗쳐서 '차라리 내가 태어난 날 재앙이 일어나 내가 죽었으면, 내가 죽어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이라며 한탄 한다. 그러자 친구들은 '너는 그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을 고통에서 구해주더니 본인이 고통에 빠지니 그대로 절망하는구나.'라고 하며, '네가 무슨 죄를 지어서 하느님이 벌을 내리시는 모양이니 용서를 구해라. 설사 벌을 받는다 해도 벌이 끝나면 반드시 복을 주실 것이다'라고 몹쓸 소리를 한다. '인과응보의 법칙'을 모두 욥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얻은 자신의 결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욥은 알았다. 이것은 신이 스스로를 시험한 일이라고. 욥의 행위에 대한 결과가 아닌. 신의 오류검증 테스트였다고. 그러면 피조물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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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였다.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린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 (욥기 42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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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기거했던 동굴 옆에는 욥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천사가 팠다는 우물이 있다. 모든 테스트가 끝나고 오류를 검증했으니, 백신을 돌려 깨끗하게 재부팅 해야 할 것이다. 신은 천사를 보내어 우물을 파고 이 물로 씻으면 모든 병이 나을 거라고 알려준다. 욥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몸을 씻는다. 테스트는 끝났다. 우주 전체에 걸친 '인과응보의 법칙'은 욥이라는 표본 검사를 통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는 깨끗해진 하드에 복된 어플리케이션들을 다시 분에 넘치도록 깔아야 할 것이다. 신은 욥이 잃었던 모든 것들을 두 배로 갚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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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출입구 옆에 있는 수도에서 나오는 물이 욥이 씻고 나았다는 그 우물물이라고. 사람들이 줄을 지어 물을 받아 간다.



이 물은 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왔다. 비잔틴 시대에는 이 우물이 문둥병자와 피부병 치료에 효능이 있다는 말을 듣고 로마 주교가 이곳에 병원과 목욕탕을 세웠다고 한다. 마법사도 건강에 도움이 될까 싶어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목을 축였다. 그런데 돌아와 검색해 보니, 수질검사 결과 오늘날에는 마시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한다. 괜히 찝찝해졌다.



두 배로 복을 받아도 찝찝한 마음은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두 배로 갚아준다 해도 모든 것을 잃고 병에 걸리는 일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화가 나서 집어던진 휴대폰인들, 그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어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주인장이 화가 나서 집어던졌다는데. 깨진 액정이야 새삥으로 갈아주면 그만인 것을. 게다가 다시 깨지지 말라고 고릴라 글래스까지 부착해 준다면. (어쨌든 다시 던질 수도 있다는 얘기) 오히려 그간 금 간 채로 방치되었던 것을 깨끗한 새 유리로 갈아주었으니 감사해야 한다고 하면 휴대폰 따위가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신은 언제나 인간보다 지혜로우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이룬 선이 그대에게 이미 많은 복을 주었지 않은가? 사람의 소득은 50%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가, 그리고 30%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니. 적어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인들, 신의 은총을 입어 무상으로 주어진 복의 혜택을 누리지 않은 자가 없으리라. 그러니 주사위 놀음에 의해 어느 날 테스트 대상으로 지목된들, 우주의 인과응보의 법칙에 주요 대상이 된들, 무슨 말을 하겠는가! 욥처럼 '알겠습니다. 당신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으십니다.'라고 고백하고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무아미타불~’ 하면 될 일인 것을.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후손이 아닌가. 조상이 니므롯이든, 아브라함이든 우리는 창조주 개발자의 이해 못할 섭리 속에 태어난 휴먼 프로그램이니, 두 배로 쏟아부어 주실 은혜를 기다리자. 올리브의 말처럼 미래를 생각할 때에는 언제나 긍정적인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해야 할 테니.



마법사는 욥이 나음을 얻었다는 우물곁에 서서 '여기까지 왔으니 그러면 이제 고난이 끝났는가?'하고 우문을 떠올려 보았다. 마법사의 사주에 모든 것을 잃었다 두배로 얻게 된다는 대운의 때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그의 어머니는 마법사에게 '네가 욥이냐?'라고 한탄하시기도 했으니, 기왕에 당한 고난이라면 욥처럼 이제 두 배의 축복을 바라봐도 되지 않겠는가 싶은 것이다. (더 잃을 걸 그랬나? 잃을 것도 없다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인과응보'의 신께 '이만하면 되었는가?' 때를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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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욥의 동굴 사원 벽에는 마법사의 상징인 검은 별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마법사는 이 글 받아쓰기를 마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방패를 획득하게 되었다. 짝짝짝!







[위즈덤 레이스 + City100] 087. Şanlıurfa_ Hz Eyyüb Peygamber Makam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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