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24(수)역사단편39-국경선과 경계비

in AVLE 일상29 days ago

오늘날에도 국경에는 표지판이 있고
벽이나 철책으로 막혀있다.
과거에도

경계비

라는 것이 있었다.

큰강이나 고개(령) , '성'의 위치를 알면
강역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영토에 대한 기록은 글이나 그림으로 남는다.
유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은 '고려의 국경'에 대해 살펴보자.

고려시대영토 대한 기존 역사학계의 해석을 보면

image.png

내 기억으로는 제일 중요한게 '천리장성'
그다음에 '윤관의 별무반'이 개척(?)했다는
동북9성이 있다.

그건 어디냐고 물으면?

image.png
라고 표시하고

image.png
이렇게 좀더 그럴싸하게 표시된 지도도 있었다.

제일먼저

국경선을 '천리장성(?)'으로 정해놓으니
그 다음 결론이야 뻔하다
근처에서 좀 치고받고 했다는 해석이다.

'윤관의 9성'하면 그 이름이 중요한게 아니고,
그것이 어디에 있었느냐가 중요한거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는지 모르겠네.

다음에서 검색해보면,

'선춘령先春嶺'

이라는 곳이 나온다.

9성의 하나인 '공험진'에 속한 높은 고개이니
의미가 있다. 다음에서 검색해보면.

본래 선춘령에는 윤관이 9성(城)을 쌓았는데,
9성의 하나인 공험진의 선춘령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비석 4면에 글이 있었던 것을 호인(胡人)이 뭉개버렸다고 한다.
그러다 뒷날 어떤 사람이 그 밑둥을 파보았더니
‘高麗之境(고려지경)’의 넉 자만이 있었다고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다음백과에서 인용>

9성이 역사기록에 남은 이유는

동북영토'의 확장이었기 때문이다.
즉, 고려의 동북경계가 추정되는 것이다.

고려는 망했고, 그 흔적은 조선으로 넘어갔다.

헤겔의 시각을 인용하면,

시대가 끝나야 그 시대의 전모가 드러난다.

지식인층이 '사대주의'로 세뇌되어
'자주의식'이라곤 없었던
조선시대에 제작된 지도를 살펴본다.

여진2.jpg

조선과 여진의 경계지역에 대한 지도이다.

지도를 조금 확대해 본다.

image.png

우측아래 , 두만강이 바다와 합류되는 지점
좌측상단, 백두산에서 두만강으로의 강줄기
그리고, 두만강 위에 '선춘령'과 '고려경'이 표기되어 있다.
선춘령아래 '종성'이라는 한자도 보인다.

모양은 이상(?)하지만, 경계는 정확하다.

강이 바다로 합류되는 지점
강의 발원지,
강과 주변의 주요지명

사실 이것만 있으면 나머진 동서남북의 문제이니
명확하다.

두만강의 왼쪽,아래쪽이면 한반도이고
오른쪽이나 위쪽이면, 지금의 중국이나 소련땅이다.

구글에서 검색해본다.
image.png

시대에 따라 지명이 변했지만, 때로는 이름이 그대로 남은
경우도 있다.

'종성'이 그대로 있다.

조선시대 지도에서 '종성'인근의 두만강 건너편 산악지역에
선춘령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 그곳의 지형을 대강 살펴볼 수있다.

선춘령의 맞은편에는 '현재 연변 조선족 자치구'가 있다.
여진의 활동무대다.
길림과 함께 여진의 성지로 일컬어진다.

image.png

윤관의 9성중 '선춘령'을 관할하던 '공험진'의 대강 위치는
두만강 북쪽,
현, 연변자치구로 이어지는 능선이거나.
좀더 북쪽의 지역일 수 있다.

적어도 고려의 영토가
천리장성(?) 안쪽이라는 이상한 해석은
도출되기 힘들다.

식민사학자들이
참 기묘하게도 해석했다.

SKY를 졸업해도
유학을 다녀와도
사고구조는 '조선사편수회'를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을 집어삼키려던 일본이
제일먼저 시작한 작업이 '역사왜곡'이었다.

조선인들은 한반도를 벗어나 본 기억이
없어야 한다. 한반도의 역사는 일본과 중국의 속국이었다.

'실학자'들은 두만강 북쪽 700리까지 진출한 것이 아니라,
길주 이남에 한정된다고 주장하였다. <다음백과 인용>

범위가 함흥평야에 한정된다는 이론을 제기하였다.
따라서, 선춘령은 마운령(摩雲嶺)에,
때로는 함관령(咸關嶺)에 비정되기도 하였다. <다음백과 인용>

한백겸은 마운령상(摩雲嶺上)에 존재하는 석추구기(石樞舊基)가
진흥왕순수비라는 것을 확인하지 못한 채
막연히 윤관의 정계비일 것이라는 오인하였다. <다음백과 인용>

'함흥평야설'에 비정되는 논리적 근거는
『세종실록』 지리지 등의 기록을
탁상공론이었다고 일축한 데 기인한다.<다음백과 인용>

'식민사관이라 하지않고
'함흥평야설'이라고 애매하게 소개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이케우치 히로시 등 6명의 학자들이 주장한 학설로
과거에는 교과서에까지 실리기도" <나무위키>

가 정답이다. 이렇게 출처를 밝히지 않고 소개만 하는 것이
우리나라 주류학계의 특징이다^^

이것은 마치,

[일본서기]라 하지않고 [서기]라고 적어 놓거나
이제는 아예 소개만 하고, 출처를 적지않는 행태를 보여준다.

<세종지리지에서 뭐라고 말했을까?

경원도호부의 동림성(東林城)을 출발해
북쪽으로 5리쯤에 소다로영터[所多老營基],
다시 북쪽으로 30리에 회질가탄(會叱家灘),
거기서 강을 건너 10리에 현성(縣城),
그리고 북쪽 90리에 어라손참(於羅孫站)이 있다.
거기서 다시금 북쪽 30리에 허을손참(虛乙孫站),
북쪽 60리에 유선참(留善站),
동북쪽 70리에 거양성(巨陽城),
그리고 서쪽으로 60리에 선춘현에 이른다.

이렇게 자세하게 적었는데,
일본인이 만들어준 식민사관에 세뇌된 학자들과 그 후예들은
지금까지도 100년전에 주입된 거짓에 사로잡혀 있고
그들이 교과서를 만들어내고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한번 출발이 잘못되면,
그 출발점을 교정하지 않는한 정당화를 위해
거짓말과 오해가 꼬리를 물게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면서도
역사에서만은 교정되지 않는다.

자신이 접하는 정보에 대해
한번쯤은 의심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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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날 보내세요.

책으로 엮으면 더 널리 알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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