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1(금)역사단편74-평양패수고(7)

in Avle 종교 철학 인문학10 days ago (edited)

평양-패수고는 '상고시대 평양과 패수의 위치'를 고찰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위치를 알고 있는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평양-패수고를 계속 읽어본다.
단어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본문은 <독립기념관 제공>

수 백년전의 중국역사책에 나오는 '海(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바다가아니다.
큰 강이나 큰 호수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 점을 기억해야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image.png

참고한 이 지도는 저자의 견해와 아무 관계없다.
춘추전국시대에 대륙에 있었다는 나라들의
대략적인 강역이 표시된 것이다.
https://steemit.com/hive-143843/@neojew/2024-6-20-73-6

이전 포스팅에 있는것 처럼
중국의 역사책에
백제가 노,제나라 땅을 차지하고
남쪽의 오-월을 공격했다고 적혀 있는데
그럼 백제의 영토는 대체 어디였을지 추정하기위해
참고로 가져온 지도일 뿐이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古平壤 浿水(고평양- 패수)가 海城·蓒芋濼(해성-헌우락)임은
上에 陳述(진술)한 바와 같거니와,
今平壤이 平壤되고 今大同江이 浿水됨은 何時부터냐?
이에 對하여 兩說이 있으니,
(甲) 朝鮮 古代에 二個 或 二個 以上의 地名을 짓고
그 위에 形容名詞(형용명사)를 冠(관)하여 區別한 것이 많으니,
兩句麗·三韓·六伽倻 等(고구려-삼한-육가야등)이다.
그 類(류)니 平壤·浿水도 이와 같이
海城·蓒芋濼을 「펴라」라 名하는 同時에
平壤·大同江도 「펴라」라 名하고,
그 위에 南·北 兩字를 加하여 區別(구별)하였다 함이 一說이오.
<출처: 평양패수고>

冠(관): 씌움

(1)옛 평양-패수가 '해성-헌우락'임은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거니와,
현재의 평양이 '평양'되고
현재의 대동강이 '패수'됨은 어느시기 부터냐?
이에 대하여 두 개의 설이 있으니,

(갑) 조선 고대에 두 개 혹은 두 개 이상의 지명을 짓고
그 위에 '꾸미는 이름'을 씌워 구별한 것이 많으니,
'고구려-삼한-여섯가야'등이다.

(乙) 우리 先民이 무슨 事項(사정)으로 因하여
國都(국도)나 人民을 甲地에서 乙地로 옮기는 境遇(경우)에는
매양 그 地名까지 옮겼으니,
解夫婁(해부루)가 東遷(동천)하여 東·北 兩扶餘가 생기고
扶餘 溫祚(부여온조)가 南徙(남사)하여
河北·河南 兩 慰禮(위례)가 생긴 等이 다 그 類니,
平壤·浿水도 이와 같이 衛滿(위만)과 漢武(한무)의 亂(난)에
海城·蓒芋濼의 「펴라」에서 大同江 上으로 遷居(천거)한 人民들이
그 新居地(신거지)를 또한 「펴라」라 名하여,
이에 南北 兩個의 「펴라」가 생겼다 함이 또한 一說이라.
<출처: 평양패수고>

徙(사): 옮기다
遷居(천거):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 삶

(2) 우리 선대사람이 무슨 사정으로 인하여
國都(국도)나 사람을 '갑의땅'에서 '을의땅'으로 옮기는 경우에는
매양 그 지명까지 옮겼으니,
'해부루'가 동쪽으로 옮겨서 '동-북 두개 부여'가 생기고
'부여온조'가 남쪽으로 이사해서
'하북-하남의 양 위례'가 생긴 등이 다 그 부류니,
평양-패수도 이와 같이 '위만'과 '한무제'의 난리에
'해성·헌우락'의 「펴라」에서
'대동강 언저리로 옮겨살던 사람들이
그 새로운 거주지를 또한 「펴라」라 이름붙여서,
이에 남북 두 개의 「펴라」가 생겼다 함이 또한 一說이라.

미국땅에 유럽의 지명들이 있는것과 같다!

兩說 (양설)중 何說(하설)이 是(시)한지는
殘缺(잔결)한 文獻(문헌)이 그 判決 材料(판결 재료)를 주지 않거니와,
그러나 中古 平壤·浿水인 三國時代의 펴라는
古平壤 浿水와 같이 海城·蓒芋濼(해성-헌우락)을 가리킨 것도 있고,
近世 平壤·浿水 같이 今平壤·大同江을 가리킨 것도 있으니,
만일 其一을 固執(고집)하고 他一을 否認(부인)하거나
或 兩者를 互換(호환)하면,
곧 地理와 沿革(연혁)이 不明하여 歷史의 事實이 錯亂(착란)할 것이다.
이제 『三國史記』를 主要한 證據書類(증거서류)로 삼고
他書로 補助(보조)하여 中古의 「펴라」를 찾으려한다.
<출처: 평양패수고>

是(시): 옳음
殘缺(잔결): 부족함, 헐려서 없어짐
互換(호환): 서로 맞바꿈
錯亂(착란): 갈피를 잡을수 없이 어지러움
沿革(연혁): 변하여 온 과정

두 견해중 어느 주장이 옳은지는
거의 없어져버린 문헌이 그 '판단할 근거'를 주지 않거니와,
그러나 '中古(중고) 평양·패수'인 '삼국시대'의 펴라는
'古(고)평양·패수'와 같이 '해성-헌우락'을 가리킨 것도 있고,
근세 '평양·패수' 같이 '현 평양·대동강'을 가리킨 것도 있으니,
만일 그 중 하나를 고집하고 다른 하나를 否認(부인)하거나
혹은 두 개를 서로 맞바꾸면,
곧 지리와 沿革(연혁)이 분명하지 않게 되어
역사의 사실이 갈피를 잡을수 없이 어지러워 질것이다.
이제 『삼국사기』를 주요한 증거서류로 삼고
다른 책으로 보조하여 중고시대(中古)의 「펴라」를 찾으려한다.

甲. 樂浪國과 樂浪郡의 區別(낙랑국과 낙랑군의 구별)

王儉城 「펴라」인 古平壤 浿水(고평양 -패수)가
漢武(한무)의 侵寇(침구)를 입어
四郡(4군)의 一인 樂浪郡(낙랑군)이 되었으나,
四郡의 位置가 時勢(시세)를 따라 遷徙無常(천사무상)하므로
樂浪郡 首府(낙랑군 수부)의 位置(위치)는 海城에 固定한 者가 아니다.
그러나 그 範圍(범위)가 遼東(요동) 以外에 나오지 못하였거늘,
後人이 매양 『三國史記』에 記載(기재)한 樂浪國(낙랑국)을
곧 樂浪郡으로 誤認(오인)하여
드디어 南·北 兩 「펴라」를 混同(혼동)하였다.

侵寇(침구): 침입하여 도적질함
遷徙無常(천사무상):옮겨다녀서 일정하지 않음
首府(수부): 수도, 중앙도시

왕검성 「펴라」인 '古평양-패수'가
'한무제'의 침입과 도적질을 당해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되었으나,
4군의 위치가 그때그때의 형세에따라
옮겨다녀서 일정하지 않으므로
낙랑군 수도의 위치는 '해성'에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범위가 <요동> 밖으로 나오지 못하였거늘,
후대사람들 이 매양 『삼국사기』에 적혀있는 樂浪國(낙랑국)을
곧 樂浪郡(낙랑군)으로 誤認(오인)하여
드디어 남-북에 있었던 두 개의 「펴라」를 혼동하였다.

낙랑군과 낙랑국은 별개의 나라이고
4군중 하나인 '낙랑군'도
한반도와는 아무 관계 없다는 뜻이다.

樂浪國이 何時(하시)에 建國(건국)한 지는 알 수 없으나
그 位置(위치)는 今平壤 大同江邊(금 평양-대동강변)이니,
「赫居世三十年樂浪將兵來侵(혁거세삼십년낙랑장병래침」,
「三十八年 … 卞韓樂浪無不畏懷(삼십팔년..변한낙랑무불외회」,
「南解元年秋七月樂浪兵至圍金城(남해원년추칠월낙랑병지위금성)」,
「十一年 … 樂浪謂內虛來攻金城(11년..낙랑위내허래공금성」,
「儒理十三年秋八月樂浪犯北邊(유리13년 추팔월낙랑범북변」,
「十四年高句麗王無恤襲樂浪滅之(14년고구려왕무휼습낙랑멸지」
等은 新羅 本紀(신라본기)에 보인
樂浪國(낙랑국)의 新羅와 關係(관계)된 略史(약사)요,
<출처: 평양-패수고>

畏懷(외회):두려워하여 복종함.
圍(지): 포위하다
北邊(북변): 북쪽지역
襲(습): 습격하다, (불의에)치다
略史(약사):내용을 간단하게 적은 역사

낙랑국이 어느시기에 건국한 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위치는 현재의 평양-대동강변이니,
「혁거세삼십년 낙랑군사가 침략해왔다」,
「삼십팔년..변한과 낙랑을 두워려하지 않는이가 없다」,
「남해원년 가을 칠월 낙랑군사가 금성을 에워쌌다」,
「 11년..낙랑이 말하길 속이 비었다면서 금성을 공격했다」,
「유리13년 가을 팔월 낙랑이 북쪽지방을 침범했다.」,
「14년 고구려왕 '무휼'이 낙랑을 쳐서 멸망시켰다.」
등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보인
'낙랑국'이 신라와 관계된 略史(약사)요,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이다!!

「大武神王十五年 …(대무신왕십오년)
夏四月王子好童遊於沃沮(하사월왕자호동유여옥저)
樂浪王崔理出行見之 … (낙랑왕최리출행견지..)
遂同歸以女妻之 … (수동귀이여처지)
好童勸王襲樂浪崔理以鼓角不鳴不備
(호동권왕습낙랑최리이고각불명불비)
遂殺女子出降(수살여자출강」,
「二十年王襲樂浪滅之(이십년왕습낙랑멸지)」,
「二十七年秋七月漢光武帝遣兵渡海伐
(이십칠년추칠월한광무제견명도해벌)
樂浪取其地爲郡縣薩水以南屬漢」 等은
(낙랑취기지위군현살수이남속한)등은
高句麗 本紀(고구려본기)에 보인
樂浪國(낙랑국)의 高句麗(고구려)와 關係(관계)된 略史(약사)요,
<출처: 평양-패수고>

遂(수): 따라가다, 마침내
女(녀): 딸, 여자
鼓角(고각): 북과나팔
降: 내릴 강, 항복할 항
遣(견): 보내다, 파견하다
海(해): 큰 강이나 호수를 말한다.

「대무신왕십오년..
여름 사월, 왕자호동이 옥저로 놀러갔다.
낙랑왕 최리가 행차해서 호동을 보았다.
함께 따라가서 최리의 딸을 처로 삼았다..
(호동은 왕에게 낙랑을 습격하라고 권했다.
최리는 북과 나팔이 울지 않으므로 대비하지 않았다.
마침내 딸을 죽이고 나아가 항복했다.」
「이십년 왕이 낙랑을 습격해 멸망시켰다」
「이십칠년 가을 칠월,
(후)한 광무제가 군대를 보내 바다를 건너 낙랑을 쳤다.
낙랑을 빼앗아 그 땅을 군현으로 삼으니,
살수이남의 땅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등은
<고구려본기>에 보인
'낙랑국'이 '고구려'와 관계된 간략한 역사요,

「溫祚八年 … 七月(온조팔년..칠월)
築馬首城竪甁山柵樂浪太守(太守는 王의 誤)
축마수성수병산책낙랑태수(태수는 왕의 오)
使告曰 … 今逼我疆造立城柵或者其有蠶食之謀乎 …」,
사고왈..금핍아강조립성책혹자기유잠식지모호..
「十一年夏四月 樂浪使靺鞨襲破甁山柵 …」,
(11년 하 4월 낙랑사말갈습파병산책..)
「十三年 … 王謂臣下曰國家東(西로 讀함이 可함)有樂浪」,
13년..왕위신하왈국가동(서로 독함이 가함)유낙랑
「十七年春樂浪來侵焚慰禮城17년춘낙랑래침분위례성」,
「十八年 王欲襲樂浪牛頭山城:18년..왕욕습낙랑우두산성」 等은
百濟本紀(백제본기)에 보인
樂浪國(낙랑국)의 百濟(백제)와 關係(관계)된 略史(약사)라.

<출처: 평양-패수고>
築(축): 쌓다
馬首城:마수성
甁山:병산
柵(책): 울타리
竪(수): 세우다
逼(핍): 가까이하다, 핍박하다
疆(강): 경계, 영토
蠶食(잠식): 남의 것을 조금씩 먹어들어감.
謀(모): 계략, 꾀
謂(위): 이르다, 알리다
焚(분): 불태우다

「온조8년 … 칠월
마수성을 쌓고 병산에 목책을 세우니 낙랑태수(태수는 왕의 오기)
사신을보내 말하길 …
지금 우리국경가까이에 성책을 세우는 것이
혹시 우리땅을 야금야금 먹으려는 계략아닌가?」,
「11년 여름4월 낙랑이 사신을 말갈에보내 병산책을 습격해 부쉈다」
「13년 …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길
나라동쪽에('서'로 읽는것이 可함)낙랑이 있어」,
「17년 봄낙랑이 쳐들어와 위례성을 불태웠다」,
「18년..왕이 낙랑의 우두산성을 습격하려 했다」 등은
百濟本紀(백제본기)에 보인
樂浪國(낙랑국)의 '백제'와 관계된 略史(약사)라.

패수와 낙랑의 위치에 대해
잘못된 견해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사서의 비교검토를 통해
올바른 위치를 찾아간다.
다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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