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대책과 인문지리적 억제
4-16 북핵과 남북한의 인문지리적 억제방안의 필요성
미중패권 경쟁의 위기에서 남북한이 영향을 적게받고 더 나아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서로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않으면 외부의 안보환경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 적대관계의 청산이 남북한 생존의 출발점이다.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각자의 이유에 따라 국가발전의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하고 있다. 그 중에는 서로 적대적인 부분과 협력적인 부분이 상존한다. 국가의 일이나 개인의 일이나 모두 서로 상반되는 요소가 병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과학에서도 반증이 가능하지 않으면 도그마라고 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적대관계의 청산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위 친북세력이 말하는 바와 같이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하지 말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고 적대관계가 청산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여전히 우리에게 실재하는 위협이기 때문이다.
소위 자주세력들이 말하는 적대관계의 청산은 관념의 영역에서 머물러 있다고 본다. 적대관계가 청산되려면 관념이 아닌 현실의 영역으로 적대관계 해소와 청산의 과정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의 철수는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실패였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통해 북한 주민들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한참 학습하고 있었다.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북한이 지상군을 투입할 수 있는 유일한 동해안 7번 도로 축선은 완전하게 봉쇄되어 있었다. 개성공단은 개성-파주 개성-문산 축선으로 북한 지상군들이 공격해 올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으로 북한이 남한을 침공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주요 통로 4개중 3개가 완전하게 봉쇄되어 버린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이 진행될 때, 한반도는 6.25 이후 가장 평화스러웠다. 그리고 평화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을 할래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가장 반대한 것은 누구였을까? 항상 그랬듯이 그것은 미국이었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국 군부와 미국 군수사업자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미국 군수사업자들은 한반도가 평화모드로 전환되지 못하고 계속 분쟁지역되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무기를 팔아 먹을 수 있다. 그들에게 평화는 손실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분쟁과 전쟁은 이익을 의미한다. 미국은 금융자본이 장악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정책적 분야에서는 군수사업자들의 영향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미국이 평화스럽게 장사를 했으면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은 군수사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훨씬 크다. 미국 제국 전체의 이익보다 군수사업자들의 좁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미국의 정치과정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제국은 내부로부터 무너진다는 말이다.
남북한의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제도화 과정을 위해 미국 내부정치의 합리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탐욕스런 군수자본을 합리적인 이성으로만 설득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미국이 망하는 것도 서슴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북한의 적대적인 관계 청산을 위한 제도화 과정은 남북한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개념이 아닌 제도화된 노력이 진행되어야 한다.
남한의 입장에서는 이중의 북한 위협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는 북핵문제이고 두번째는 재래식 군사력의 위협이다. 두번째 재래식 군사력의 위협은 과거에 비해 많이 축소되었다. 남한의 재래식 군사력이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을 넘어서는 형국이다. 재래식 군사력은 지금보다 더 나가면 남한이 북한보다 지나치게 강해서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남한이 북한을 상대하기 위한 재래식 군사력을 더 건설하면 오히려 균형이 너무 심각하게 무너져서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따라서 남한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대응이다. 핵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핵 밖에 없다. 북한 핵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국방부가 3축이니 뭐니 하는 것은 모두 사실상 핵에 대한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 그냥 국민들 안심시키기이거나 군수업자들 돈벌어주는 것 이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
핵능력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핵이다. 억제라는 말이다. 한국의 북한에 대한 핵억제력은 미국이 보장해주고 있다. 핵우산을 확장억제니 뭐니 말을 바꾸고 있지만 본질은 하나다. 미국이 핵우산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남한은 핵을 개발해서 배치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자위권이다.
한국에서 북한의 핵은 아주 미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북한은 핵을 우선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전쟁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에 핵을 사용할 경우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북한에게 넘어간다. 북한이 남한에 핵을 사용하게 되면 공멸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북한은 한미연합군이 평양에 근접하여 국가 붕괴의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 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미연합군, 특히 미군이 평양 근처에 진출하면 주저없이 미국 본토와 일본의 미군 후방기지에 핵을 투발할 것이다.
핵의 정치학적 의미때문에 남한에 직접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이 지금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위력을 고려해볼때 남한에 투발하기는 어렵다. 지금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모두 미국이나 일본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남한에 대한 핵위협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만일 북한이 알려진 것 처럼 전술핵을 개발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럴경우에는 북한이 남한군에 대해 전술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은 그 전술핵이 미군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모든 무기가 그렇듯이 핵도 상대를 골라가며 파괴하지는 않는다.
북한이 전술핵을 개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남북한 재래식 군사력의 격차가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남한이 재래식 군사력을 더 많이 건설하고 북한을 압도하게 되면, 북한은 당연히 남한의 재래식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 전술핵을 개발하여 배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추가적인 한국군의 군사력 건설은 오히려 자신에게 더 위험한 국면을 조성하는 것이다.
전쟁의 도발을 억제하되 북한이 전술핵 개발까지 나가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고려가 필요했으나 문재인 정권은 북한을 오히려 도발했다. 재래식 무기 군축협상의 초석을 다져놓고 스스로 위반해 버린 것이다. 이제 북한이 전술핵을 개발하더라도 비난하기 어렵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남북간 적대관계 청산의 제도화는 이런 문제점을 다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남북한은 미국과 중국, 미국과 소련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서 언제라도 핵을 발사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과는 다르다. 남북한은 너무 붙어 있어서 북한이 핵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그 피해가 즉각 북한 주민에게도 미치기 때문이다.
남북한 평화의 제도화는 이런 인문지리적 요인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 한반도에서 북한핵억제는 핵무기 뿐만 아니라 인문지리적 요소도 작동한다. 남북한의 지리적 요인으로 북한이 핵을 사용하더라도 스스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핵전략도 해당국가의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남한은 한반도의 상황에 부합하는 억제의 조건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북한이 남한에 핵을 사용할 수 없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북한이 남한에게 핵을 사용할 경우 같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판단을 하도록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6-10 ‘인문지리적 억제’ 방안의 선결 및 전제조건, 미국문제
한반도는 남북간의 관계보다 국제적인 역학관계가 더 크게 작용하는 곳이다. ‘인문지리적인 억제’ 또한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고려하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의 북한 핵에 대한 입장이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정책적 목표로 추구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북한을 비핵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에도 여러번 언급한 적 있지만 북한이 느끼는 안보불안은 이중적이다. 미국으로부터의 안보위협과 중국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은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더 위험한 것은 내 등뒤에서 노리고 있는 비수다. 북한의 지도층들은 미국보다 중국을 더 경계하는 것 같다.
북한에게 있어서 북미평화협정은 비핵화를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며, 중국으로부터의 안보위협 제거는 충분조건이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은 언젠가는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르나 중국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은 해소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은 비핵화가 아니라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건에 불과한 것이다.
어찌하든 ‘인문지리적 억제’방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의 태도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완강하던 미국도 결국 입장을 바꾸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ICBM까지 다 확보한 상황에서 미국이 아무리 제재를 하면서 비핵화를 주장한다고 해도,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UN의 대북제재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이번 전쟁이 미국의 세계 패권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이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고는 작년이전부터 주장했다. 빠르면 이번 11월 미국의 중간선거 이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유럽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약화된다.
미국은 최근 들어 대외정책의 중점을 중국쪽으로 살짝 옮겨가려고 하는 것 같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면 가장 중요한 핵심 국가는 북한이다. 북한이 미국과 관계를 가깝게 가져가면 중국은 견디기 어렵다. 중국의 속살이라고 할 수 있는 발해만이 북한 바로 앞바다다. 중국을 견제하기 가장 좋은 지역이 북한이다.
미국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해있다. 달성불가능한 북한 비핵화를 요구하면서 중국 견제의 가장 좋은 옵션을 포기할 것인가 ? 아니면 미국의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인 중국 견제를 위해 어차피 달성하지도 못할 북한비핵화란 목표를 포기하고 제재를 해제할 것인가? 이는 전적으로 미국의 선택이다. 미국이 조금 더 일찍 정책전 변화를 시도했으면 북한을 미국 편으로 끌어 당길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을 놓치면서 북한의 몸값은 더 올라갔다. 트럼프 당시에 미국과 북한이 협상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면 북한은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 편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이 아무리 북한에 양보를 하더라도 북한은 미중간 중립적인 정도 이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가면 북한에 대한 제재도 의미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접어 들면서 유엔 안보리 제재도 점차 그 의미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제재를 무시하고 북한에게 각종 지원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으로부터 전방위적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과 교류를 하다가 미국의 다른 제재를 받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남북간 교류협력에 미국의 입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 상황도 바뀐다. 미국의 영향력이 급작스럽게 약화될 가능성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 시간이 미국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최근 들어 중요한 대외정책에서 매번 실패하는 경향이 있다.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다보니 사고가 경직되어 사안의 핵심을 놓치고 실기한 것이다.
‘인문지리적 억제’는 미국으로서도 군산복합체의 이기적인 이익추구에서 벗어나 제국의 총체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만일 실기하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을 상실하는 것이다. 북한이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은 현시점에서 최고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인문지리적 억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남한은 반드시 유엔사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유엔사는 정전관리와 후방기지 과업을 유지하고 있다. 이중에서 한국군은 유엔사로부터 정전관리와 관련된 과업을 이전받아야한다. 미국 합참은 유엔사를 통해 정전관리 임무를 정전협정 본연의 의미와 다르게 수행했다. 정전협정은 남북간 사인 즉 민간인끼리의 교류와 접촉은 활발하게 하고 남북군간은 서로 이격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유엔사는 남북간 민간인끼리의 교류와 접촉 그리고 협력도 차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인문지리적 억제’ 방안을 구체화시키고 실현시켜 나가는 상황에서 유엔사는 태생적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남한군과 북한군이 공동으로 정전관리를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남북미간 평화협정을 먼저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협정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현재의 정전협정하에서도 남북미가 서로 합의하면 ‘인문지리적 억제’방안은 충분하게 구현할 수 있다.
평화협정이 논의되면 결국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대두된다. 현시점에서 주한 미군이 무작정 철수하는 것도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상황에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갑작스런 미군의 철수는 힘의 공백을 초래할 것이며 그 진공상태에는 중국이나 일본이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평화협정 문제는 ‘인문지리적 억제’ 방안이 구체적으로 작동하여 상호 이익에 바탕한 평화체제가 구축되었을때 다루어도 늦지 않다고 본다. 잘못해서 평화협정 문제를 선행해서 다를 경우 일이 삼천포로 빠질 수 있다는 말이다.
6-11 ‘인문지리적 억제’방안으로서 개파(개성-파주)공단에 대한 추가 설명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협력을 위해 ‘햇볕 정책’을 주장하는 순간, 이 정책은 실패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하든 상대방을 생각해야 하는 법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두터운 외투를 벗기겠다는 설명은 순전히 국내용이었다. 그런 말을 듣는 북한의 김정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연히 경계를 했을 것이고, 체제를 위협하는 일정 정도 이상의 남북교류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것을 몰랐을까? 그럼에도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국내의 정치적 환경 때문이었다. 북한과 교류를 한다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반발이 워낙 심해서 사람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야 했고, 북한은 그 설명을 선전포고와 마찬가지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후 개성공단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은 북한의 싼 인건비로 이익을 보았다. 북한의 노동력은 매우 질이 높았고 생산성도 높았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한계가 분명했다. 남한의 기업들을 북한의 싼 인건비를 이용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북한의 산업발전에는 별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개성공단으로 북한은 수입을 거두었지만 산업발전을 위한 기술의 습득과 같은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개성공단은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남한의 기업들이 북한의 값싼 인건비를 이용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방식은 지속적이지 못하다. 남북간 교류와 협력은 상호호혜와 상호 이익에 바탕해야 한다. 남한이 북한을 경제식민지처럼 부려먹는 방식의 협력은 오래가지 못하며 지속적일 수 없다. 남한 기업들이 생각하는 남북협력은 북한을 원료공급이자 시장이며 인력공급처로 보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북한과 공존은 불가능하다. 핵을 가진 북한을 경제력으로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북한 핵은 기정사실화되어 인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아프간사태 때문에 파키스탄의 핵을 인정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시간이 가고 상황이 바뀌면 모든 것은 변한다. 미국의 비핵화 정책도 마찬가지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원칙을 항상 바꾸어 왔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도 그렇게 가능할 수 있었다. 북한이 그런 것을 모를리 없다. 미국이 갑자기 원칙을 바꾸어 북한핵을 인정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국이 북한핵을 인정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남한은 발가벗은 어린아이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로 인문지리적 억제를 구상해야 하는 것이다.
개파공단을 통해 남북한은 물론이고 미국을 포함하여 참가한 모두에게 충분한 이익이 보장되어야 하며, 어느 일방이 포기하기 어려울 정도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억제가 가능하며 지속성이 있다. 남한이 수준높은 인력을 확보할 수 있고 낮은 인건비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보면, 북한은 차후 자신들의 경제발전을 위한 경험과 기술의 축적이 가능해야 한다.
북한이 자체적인 산업 발전을 위한 충분한 이익과 이점을 확보하지 못하면 억제의 효과를 확보하기 어렵다. 남북한 그리고 미국 등 당사자 누구도 개파공단을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된다. 미국이 개파공단에 참가한다면 미국 또한 상당한 이익을 향유해야 한다. 적어도 한국에 무기를 팔아서 벌어가는 이익에 버금가는 수익성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개파공단은 세계적인 수준의 첨단과학기술 분야의 생산단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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