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나에 대하여

in #kr7 years ago

대체로 별생각이 없다. 생각해야 하는 경우에는 아주 파괴적으로 한다. 집중력과는 거리가 멀고, 여러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한다. 뻔하지만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문다는 말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 같다.

대체로 별생각이 없는 것과 더불어 요즘 강렬하게 궁금한 것이 별로 없다. 엄청난 호기심꾸러기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관심을 두는 영역에서 새롭고 멋진 것들이 등장하면 더 알고 싶은 마음에 두근거리곤 했는데. 그 많던 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똑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진 적이 전에도 있다. 지금 갑자기 찾아봤는데 2008년 5월 21일에 쓴 글이다.

문득 드는 생각은
그 많던 나는 다 어디로 갔을까
노래방에서 페니실린의 로망스를 부르던 나는
홀든을 자처하며 홀든의 말투를 곧잘 따라 하던 나는
아라라트를 보고 아르메니아 역사를 뒤지던 나는
맘속 깊이 짜라 언니를 질투하던 나는
상기된 얼굴로, 진지하게 사후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던 나는
(그리고, 너희들은?)
문과대 큰 강의실에서 밤을 새우며 자크 라캉을 저주하던 나는
그 밖에 많은 나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원래 '나' 부분에 내 이름이 써있는데, 내 이름을 연타로 부르기가 부끄러워서 '나'로 바꿨다.

2008년 5월 21일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진 무수한 내가 있었을 것이고, 지금 나는 그 많은 나'들'이 어디로 갔는지 또다시 모르겠다. 동시에 저 모든 나'들'을 꿰뚫는 그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하나의 단어로 그 '나'를 정의할 수는 없고, 일부를 표현하자면 그것은 '구도자인 나'이다. 너무 거창한가...

답을 구하는 가운데, 영원히 모를 것만 같았던 일들을 알게 되거나, 또 모를 일들에 지쳐 일부로부터는 스스로 떨어져 나오거나, 했다. 나는 시를 쓰지 않지만, 그런 마음을 담아 쓴 시가 있다. 스팀잇에 공개하게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데... 뭐 어때...? 라는 생각이 든 김에 그냥 공개한다.

끝없이 구하는 사람은 어쨌든 답으로 가는 길 위에 서 있게 된다고 믿고 있다
구하고, 물으며 한 걸음씩 걷던 그 시간 동안 길 위의 하늘은 어두워졌다
마른 바람이 자꾸만 목구멍을 긁는다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갑자기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질서를 잃은 숨을 쉬다가, 캑캑 거리고, 눈물을 찔끔 흘리고, 제 분을 못 이겨 허공에 욕을 퍼붓고는 뒤를 돌아본다
길을 따라 이어진 발자국들이 보이고 그 끝에 내가 서 있다
그리고 나는 처음보다 더 모르겠다
이대로 걷다가 아주 멍청이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기대도 한다

2014년에 쓴 시이다. 시 같지 않지만 시를 쓰겠다고 쓴 글이기 때문에 시이다. 시를 통해 담아낸 생각대로 나는 처음보다 더 모르겠고, 아주 멍청이는 아니지만 조금 멍청이가 된 것 같기는 하다. 조금 멍청이가 되었지만, 과연 나쁘지는 않다. 그러려니 한다. 다만 무언가에 강렬한 호기심이 잘 생기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호기심 하니까 생각났는데.

대학교 1학년 때, 학교에 현수막이 붙었다. 라엘리언 무브먼트가 건대 새천년홀에서 강연회를 한다는 것이다. 당시 호기심꾸러기 만렙이었던 나는 라엘리언 무브먼트가 어떤 이야기를 공유하는 집단인지 대충 알고 있었다.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서 친구를 하나 꼬셨다. 혼자 가기는 무서웠다... 사실 꼬실 것도 없었다. 그녀는 매일 밤 방에서 수정구슬과 대화를 나눌 것 같은 사람이었다.

강연회장에 모여있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긴 머리카락, 긴 수염, 위아래로 검은 의상이 차례로 생각난다. 너무 오래전이라 구체적인 기억은 왜곡되었을 수도 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러했다. 우리는 뒤쪽에 자리 잡고 열심히 그 사람들을 구경했다. 강연회장에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영상이 재생되었다. 라엘리언 무브먼트의 기원과 역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 몸을 복제하고, 외계인에게 송신한 유전자 정보를 다시 복제된 몸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영생한다고 했다. 유전자 정보를 어떻게 외계인에게 보내는고 하니, 침례와 똑같은 방식으로 몸을 강물에 담갔다가 나오면 된다고 했다. '외계인' 운운할 정도면 그래도 뭔가 새로운 게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나는 그 부분에서 아주 허탈한 기분을 느꼈다. 긴 머리카락, 긴 수염, 검은 옷의 사람들이 가입신청서를 나누어줬다. 나와 친구는 손을 꼭 잡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그리고, 2008년의 대학로.

티베트 평화 연대 집회에서 커다란 외계인 탈을 쓴 사람들을 만났다. 라엘리언 무브먼트였다. 아... 맞다... 비폭력과 세계평화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집단이었지... 평화운동 집회에 가면 종종 등장한다고 한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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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잔뜩 취해서 오늘 하루 종일 해롱대다가 지금 일어나 스팀잇에 접속했는데 동글이님이 해롱대는 저를 넉다운 시켰습니다. 나좀 주우러 다녀야겠네요...ㅎㅎ

링크한 음악도 같이 들으신 거죠? 다 의도가 있었... 12일에는 통일전망대에서 회랑 쏘주 드셨는데... 어제는 무얼 드시고 잔뜩 취하셨습니까!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는 잠 못 자서 종일 해롱해롱 했는데 새벽이 되니까 또 이렇게 선명해지네요. 내 새벽! 너무 좋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군요...무섭...ㅎㅎ
아내와 한잔 진하게 했습니다. 노래방에 끌려갔구요..새벽 세시에야 풀려나서 잠들었습니다..

유니콘님 이 댓글 읽고 완전 푸악 웃었다가, 결국에는 브라보를 외칠 수 밖에 없네요... 크... 멋지십니다, 정말!

라엘리언 에일리언 외계인 유전자복제 수정구슬 아아 아침부터 정신이 혼미해서 출근 못 하겠네요 ㅋㅋ

내 눈을 바라봐... 칼님 힘이 세지고...! 저도 밤새 한숨도 안 자고 저 글을 쓰고 나서는 지금까지 혼미한 각성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데헷

음~~~그래도 나를 누구로서 어느곳에 가두지 않으려는 의지가 자유로와 보이시네요..누구로서 어디에 있는 참 내가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지않을까요? 내가 이렇구나~~ 자유로운 그모습마저 멋지시네요~^^

안녕하세요, okteng님! :-) 번뇌에 휩싸인 주절거림을 멋지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죽 공예로 멋진 소품들을 만드는 okteng님도 멋지십니다. 플리마켓에도 참가하셨다는 글을 읽고 반가운 마음에 okteng님을 이리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팀 시티 미니 스트릿이라는 행사에서 플리마켓이 열립니다. 한 번 읽어보시고 참가를 고려해보시면 어떨까요? :-) 스팀잇에서 다양한 수공예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kr-craft 태그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효미닛님(@hyominute) 블로그에 가보시면 #kr-craft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

보통 외계인 도상이나 영화속에서 묘사된 모습을 보면.. 장발에 콧수염 늘어진 외계인은 보지 못했는데 왜 추종자?들은 몸의 털을 길게하고 다닐까요 ㅎㅎ

그래서... 오쟁감독님 영화 '덩어리'는 언제 볼 수 있는 겁니까? 이번에 볼 수 있는 건가요!?

네! 그거 말고 딱히 틀 것도 없네요 ㅋㅋ

대박. 오예.

왠지 '외계인'을 '마법사'로 바꾸면 라라님의 현재 심정일 듯 ㅎㅎ 인생 참..

이 마법사는 지구 사람 마법사! 저는 라다크에서 외계에서 온 존재들을 카페로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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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나 ㅋㅋㅋㅋㅋㅋ 태그가 이렇게 어울리는 글이라니!!

다 읽고나서 제 친구 한 명 소개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그녀는 매일 밤 방에서 수정구슬과 대화를 나눌 것 같은 사람이었다.

에서 이미 아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ㅋㅋㅋㅋㅋㅋ

설마...? 그런 사람 흔하지 않은데... 제 친구 수정구슬은 비구름을 몰고 다니며, 모기 목소리로 말을 하다가 가끔씩 빽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써니님의 친구 수정구슬도... 혹시...?

으음... 친구에게 수정 구슬은 없는데, 집에 마법진이 그려진 책이 있어서요..

마법진...! 그 너머의 세계로군요... 제 친구는 구루구루 되게 좋아했었는데... 북북 영감...

과거의 나는 또 수 많은 현재의 나로 덮어지고 새로워지고 있는게 아닐까요? 예전보다 호기심이 없더라도 또 다른 많은 감정으로 채워진 지금의 나요 :)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지론인데, 요즘 들어 20대 초반의 저를 생각하면 낯선 기분이 들어요. 쭉 비슷한 생각들을 해오며 살아온 것 같은데도 말이죠. 이모셔널님이 쓰신 대로 현재의 나, 1년 전의 나, 3년 전의 나 하나씩 걷어내면 그 안에 과거의 나'들'이 안뇽 하고 쏙 나오겠죠? 거기 늘 있었고 사라진 것은 아닐 테니까요. :-)

그 수많은 '나'가 다 '나'라죠. 앞으로 더 할거에요. 인생의 전환기를 겪을 때마다 저라는 인간이 아주 변화무쌍하게 바뀌어서 깜짝 놀란답니다. 못난것도 나고, 잘난것도 나고. ㅎㅎ 근데 라엘리언 무브먼트라는건 첨 들어보네요.

안녕하세요, 핀란드님 :-) 그 많은 '나'가 다 '나'라니,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하고 흥얼거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저도 인생의 위기(?)라고 부를 법한 순간들을 마주했을 때, 새로운 제 모습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몇 번 있어요. 위기의 강도와는 상관없이 한없이 연약하기도 하고,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초연하기도 하고, 인간극장 소개되어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강인하기도 하고요. 맞습니당. 못난 것도 나, 잘난 것도 나! :-) 라엘리언 무브먼트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UFO에 관심이 많아서 막 찾아 읽다가 알게 된...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