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인도 인간 군상 1
최근에 진짜 웃기는 미국 할아버지 만남. 핑크색 티셔츠에 핑크색 프레임 안경 낀 할아버지가 길에서 다짜고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라다크 다음 행선지가 베트남이어서 베트남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함. 베트남 식당에 가면 베트남 사람 있을 거라고 했는데 떠날 생각을 않고 묻지도 않은 자기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 요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에서 베트남까지 갔다는 이야기, 캘리포니아 해안 절벽에 난 동굴에 은신처를 마련해 놓고 몇 날 며칠 지내다가 추락사할 뻔한 이야기 등 지어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드라마틱 한 구석이 많았고, 그걸 본인도 아는지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야"라는 말을 중간중간 덧붙임. 뮤지컬 배우가 대사를 읊는 것처럼 과장된 표정과 말투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미국 코미디언의 스탠딩 코미디를 1열에서 직관하는 기분이었음. 자기 안에 사는 어린아이가 자꾸 엉뚱한 일들을 벌이고 싶어 하며, 그 아이가 어린이와 동물을 좋아한다고 함. 말이 많은 사람인가 대화가 고픈 사람인가 함.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무용담에서 큰 의미를 발견할 수는 없었지만, 오락적인 요소가 충분했기에 쇼를 즐기는 기분으로 방청객처럼 대화에 임함. 그도 그걸 즐기고 있었고,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내 이야기 더 듣고 싶어?"라고 물음. 차마 "아뇨"라고 말 못 함. 인생관, 세계관까지 주제 확장. 방황하던 청년 시절 옆집에 살던 영매의 추천으로 바가바드기타를 처음 읽고 이를 인생 텍스트로 삼고 명상을 시작했으며, 일본에서 극도로 엄격한 선불교 수행을 하기도 한, 님 카롤리 바바의 가르침을 따르는, 인도 어딜 가도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미국 뉴에이지의 산 유물로 밝혀짐. 모든 것은 다 하나야, 모든 인간을 신처럼 사랑해야 해, 일장 연설 해놓고는, 만나자고 해놓고 다음 날 연락 안 했다고 사람 사정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은 채 노발대발 삐져서는 다시는 인사도 하지 말라고 일갈하고 가버림. 이후 길에서 만날 때마다 도깨비 같은 표정을 하고 얼굴로 욕하면서 지나감. 후. 마주칠 때마다 힘겹다.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토록 최선을 다해 화를 내는 걸까. 인간 도대체 왜 알고자 하고, 왜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걸까. 왜 책을 읽는 걸까. 왜 명상을 하는 걸까. 왜 스승을 찾는 걸까. 그 스승들은 도대체 뭘 가르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