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쥐들의 나라 사람의 나라 - <서울의 봄>을 보고

in #kr5 months ago (edited)

들쥐들의 나라 사람의 나라 - <서울의 봄>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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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나오는 순간 딸아이가 크게 탄식을 했다. “스트레스 풀려고 영화 보러 오는 건데 뭐 이건 스트레스가 풀로 쌓이네.”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 표정이 대개 그랬다. 영화 자체는 재미있었다. “어 저건 사실하고 다른데?”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 이건 영화지!” 하며 자세를 고쳐 잡은 것이 여러 번이었서 영화 스토리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데 약간의 애로 사항을 겪었지만 황정민의 출중한 악역 연기 (아들의 평이 ‘전두환이 난 놈은 난 놈이었네’였음)와 정우성 등 다른 배우들의 호연으로 이내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답답하고 주먹이 쥐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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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볼만한 영화였다. 그 이후의 정권 뿐 아니라 ‘그날’이 짓밟은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까지 치면 향후 수십 년의 역사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1979년 12월 12일에서 13일까지의 짧은 시간을 매우 입체적으로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요즘 극장값 비싸다지만 넷플릭스에 뜨기를 기다리지 않고 극장에서 공순히 관람할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역으로 왜 내가 돈 주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탄식이 생생하게 공감되기도 한다. 영화가 묘사한 현실이 그만큼 갑갑하고 슬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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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은 부하에게 이렇게 외친다.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이 대사를 할 때 정우성은 앞에서는 언성을 높인다.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분노하여 부하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에서는 힘이 확 빠진다. “그게..... 군대냐?” 결코 호통이 아니었다. “니들은 군인도 아니야!” 같은 힘있는 질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조(自嘲)였고, 하소연이었고, 푸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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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11기의 보스이자 경상도 중심의 사조직 하나회의 수장이었던 전두광은 이렇게 일갈한다. “이 인간이라는 동물은 말이야,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 주길 바란다니까.” 이 일갈에서 떠오르는 것이 1980년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위컴 장군은 이른바 ‘들쥐 발언’이다. “한국인은 들쥐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그 지도자를 따라갈 것이다.”라고 한국인을 비하했다고 하여 두고두고 비난받은 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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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은 위컴은 한국 영토 안에서 전두환을 대놓고 비토하고 거스른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전두환에게 납치돼 곤욕을 치르는 정승화의 생일을 일부러 챙기고 케이크를 보낸 이도 위컴이었다. 그의 ‘들쥐’ 발언은 한국인 전체에 대한 비하가 아니라 ‘대세’가 결정되자 바람처럼 번개처럼 전두환에게 들러붙는 군인,관료, 정치인들에 대한 탄식의 취지였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한탄을 되풀이했다. “아이고 저 들쥐 같은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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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저 들쥐들을 누가 키웠던가. 그 해답과 책임은 영화의 시작점에 죽은 인물로 돌아간다. 박정희 전 대통령. 여기서 그의 공과를 셈할 것은 없고, 적어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들쥐들과 그 들쥐들의 두목 전두광, 그리고 결국은 ‘군대도 아닌 군대’를 만들어 버린 가장 큰 책임은 그의 독재에 있었다. 영화 속 전두광 장군이 그 답을 준다. “하이고 저런 문디 똥별새끼들이 별 지랄거릴 다한다.....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 걱정해서 일부러 무능한 놈들 별달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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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대한민국 사람들을 ‘강력하게’ 리드했던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일체의 시도와 요인을 철저하게 제거했다. 명실상부 2인자였던 김종필은 지겨울 정도의 견제를 받아야 했고 전두환 등 육사 11기도 박정희의 후계자로 주목받다가 제거되는 수경사령관 윤필용과 더불어 매장당할뻔했다. 자신의 친위대로 경상도 군맥의 대부 전두환을 대놓고 키워 줬고, 그 사조직이 군대를 장악하는 것을 방관했다. 박정희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전두환도 어떻게 제거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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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강력한’ 리더가 그 힘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만 사용할 때. 그가 이끄는 조직은 두 가지 부류가 이끌게 된다. 충성을 맹세하며 권력의 떡고물을 탐하는 얼치기 야심가 들쥐와 또 그들에게 붙어서 떡고물 닦아낸 바닥이라도 핥으려는 머저리 들쥐. <서울의 봄>은 이 얼치기 야심가 들쥐와 머저리 들쥐들의 홍수 앞에서 “이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막아섰던 얼마 안되는 사람들의 한판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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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 권력이 통째로 넘어가는 하극상 앞에서 그렇게 정성스럽게 길러왔다는 대한민국 군대가 그토록 무력했던 것, 그리고 정당한 명령계통에 따른 군인들의 수가 그토록 적었던 것은, 그래서 영화 속 이태신 장군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능한 사령관”이라 자책하게 만들었던 것은 명백한 1980년 당시 대한민국의 실패였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고 군인이 군인답지 못한 나라가 북한에 먹히지 않았던 것이 다행스러울 지경. 그 아사리판에서 그나마 사람다웠던 사람들을 기억하게 해 주는 것으로도 이 영화는 가치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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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는 다소 과장됐지만 ‘대세’를 거부하고 소수 병력만으로 최후의 저항을 시도한 수경사령관 이태신(실명 장태완)과 그 막하 장교들. 역시 엘리트 장교였지만 반란군에 맞서 상관을 보호하며 장렬히 전사한 공수특전사령관 비서실장 오진호(정해인) ‘무능한 똥별’들에게 악을 쓰면서 반란군 진압을 호소하는 헌병감 김준엽 (김진기) 상대도 안되는 무력이 들이닥친 상황에서 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사살당하는 병사 (실명 정선엽 병장) 그 잔인한 밤에 인간이었던, 그리고 군인이었던, 그래서 “죽음보다 나쁜 선택은 없다.” (우리 아들의 촌평)는 확고한 명제를 넘어서서 자신들의 의무를 다했던 이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너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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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 ‘서울의 봄’을 잃어버린 댓가로 맞이했던 80년대 내내, 반란 성사 후 화장실에서 미친 듯이 환호했던 전두광 이하 영화 속 반란군들은 역사 속에서는 실패했다. 전두광이 단죄돼 교수대에 서지 않았지만, 그를 따르던 들쥐들은 대개 부귀영화를 누리다 편안히 죽었지만, 그들은 그저 들쥐일 뿐이다. 조금 센 들쥐와 머저리 들쥐들. 요즘도 우익 집회에 등장하는 육사 몇 기 동창회를 자처하는 들쥐들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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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중
문득 넷플릭스를 보니 <고려 거란 전쟁> 5회가 뜬다. 역시 반란을 일으켜 국왕을 시해하고 권력을 잡은 강조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책임을 마다하지 않고 전선에 나서고, 우리가 알 듯 전투에 패전하여 포로가 된 뒤 항복을 권하는 대제국의 황제 앞에서 부르짖는다. “나는 고려인이다. 어떻게 너 (실제로 이렇게 불렀다.)같은 놈의 신하가 되겠는가.” 자신의 책임과 본분을 잃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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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해 오는 여진족을 학살해 전쟁의 불씨를 만들었던 하공진. 그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가야 했던 그는 목숨을 걸고 거란과의 협상에 나서 백척간두의 왕과 나라를 구해 냈다. 거란에서 괜찮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는 고려로의 탈출을 꿈꾸었고 그것이 밝혀지자 역시 “나는 고려 사람이다.”를 토로하며 죽어간다. 한때의 역적조차 자신의 의무를 알고, 치명적인 삽질을 한 폐급 장군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나라. 그것이 고려가 살아남았던, 그리고 번성했던 이유였으리라. 1979년 12월의 한국은 반대였다. 2023년 한국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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