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의 시작

in #zzan5 years ago

1908년 7월 26일 FBI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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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다른 나라의 국가 기관이기는 하지만 웬만한 이들은 FBI의 이름을 안다. 아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친숙하다. 당장 멀더와 스칼리를 떠올리면서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를 폼나게 읊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식인종 렉터 박사와 대결하는 조디 포스터의 앳된 얼굴로 FBI를 떠올리는 이도 있겠다. 케빈 코스트너가 알 카포네를 옭아매는 수사관으로 등장했던 영화 '언터처블'의 추억을 더듬는 이도 있겠지만 그건 유감스럽게도 틀렸다. '언터처블'에 등장하는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엘리엇 네스는 재무부 산하의 주류감독관이었고 FBI 소속이었던 적이 없다.

헐리웃 영화 속에서 무슨 사건이 터지면 항상 한 발 늦게 나타나서 "수고했소. 이제 우리 관할이오."라고 거들먹거리면서 주 경찰들의 분통을 터뜨리게 만드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의 조직, FBI가 1908년 7월 26일 창립된다. 원래 BOI(Bureau of Investigation)라는 이름으로 불리웠고 35년에야 현재의 FBI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FBI는 영화 속에서처럼 범죄자를 쫓고 마피아를 때려잡는 정의로운 조직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유의 나라로 자칭하고 호명되는 나라 미국이 얼마나 비밀스런 통제와 막후 음모를 통해 꾸려지고 있는지를 증명했던 것이 FBI의 역사였다.

1924년 아직 법무부 산하 조사국 BOI로 불리우던 무렵 서른도 안된 사내 하나가 국장으로 부임한다. 그의 이름은 에드가 후버. 그는 그 자리를 무려 50년 동안 지킨다. 우리 나라로 치면 국정원장 (해외 파트가 CIA로 분가하기는 했지만)을 50년 동안 해먹은 셈이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백악관을 거쳐간 사람만 8명. 그는 대통령들의 약점과 스캔들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고 그를 무기로 '언터처블'의 성역을 구축했다. 대통령 뿐이 아니었다. FBI는 사회 전반에 대한 감시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영화 말콤 엑스를 보면 FBI 직원들이 마틴 루터 킹의 섹스를 엿들으며 키득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최근 공개된 역사가 슐레진저와의 인터뷰에서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은 마틴 루터 킹을 '위선자'(phony)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근거는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역사적인 연설을 하기 전 날, 호텔방에서 섹스 파티를 위해 여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대고 있었다는 FBI의 도청 보고였다. 개인적으로 킹 목사의 이 모습과 저 모양새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재클린은 달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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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잡스러운 문제는 기본으로 하고, FBI는 냉전 시기 '빨갱이'들을 감시하는 일종의 아르고스 (100개의 눈을 가진 그리스 신화의 거인)였다. 그 100개의 눈을 희게 번득이는 FBI의 감시망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허덕이고 괴로워하고 그 눈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조지 오웰이나 펄 벅 같은 작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찰리 채플린은 빨갱이로 몰려 두 번 다시 미국 땅을 밟지 못했으며,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의 작자이자 미국 최고의 지휘자라는 찬사를 한몸에 받던 레너드 번스타인도 FBI의 각별한 관심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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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역시 FBI의 감시에 괴로워하다가 목숨을 끊었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다. 헤밍웨이에 대한 FBI 파일을 들여다보면 그 담당 요원은 매우 심술궂고 문학적 소양이 떨어졌던 것 같다. "헤밍웨이는 술주정뱅이에 공산주의자, 당대 작가 중 최하치"라고 독설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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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미국에 산 적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라면 그 업무적 특수성(?)을 인정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FBI는 미국 땅이라고는 밟은 적 없는 화가 파블로 피카소에 대해서도 수백 페이지의 비밀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FBI가 보기에 피카소는 러시아 간첩에 공산주의자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국가든 정보 기관과 수사 기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기관들은 항상 국민의 기본권과 권력의 의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게 된다. 방첩과 범죄 척결이라는 최선의 의도는 그 능력을 이용한 음모와 부패라는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는 일이 흔하다. 더구나 한 사람이 반 세기 동안 FBI라는 공룡 조직의 수장으로 재직했다는 것은 그 막후의 지저분함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어떤 사람의 약점을 모른다면, 그 사람과 접촉하지 마라."는 후버의 격언은 그가 50년 동안 FBI를 주무르는 처세의 비결이었고, 아울러 그 기간 동안 쌓인 음습한 범죄와 스캔들과 부패의 일단을 드러내는 쪽창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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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버는 그의 일생과 그다지 조화롭지는 않으나, 머릿 글자가 똑같은 "Fidelity(충성), Bravery(용기), Integrity (성실)"을 FBI의 모토로 삼았다. 문득 한국에도 비슷한 기관이 있었다면 그 모토는 무엇일까 하는 짖궂은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역할을 수행해 온 기관들을 굽어보건대 다음과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Fierce(험악한) ,Barbarous(야만적인), Ignorant(무식한) 의 FBI 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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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후버는 대통령이 1도 안부러웠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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