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즈화의 조선전쟁 9, 중소동맹조약과 한국전쟁의 관계에 관해, 션즈화와 다른 입장steemCreated with Sketch.

in #sct5 years ago

김일성 모택동 스탈린.jpg

션즈화의 조선전쟁에는 북한이 국공내전에 도와준 부분들을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국공내전 당시 북한은 전폭적으로 중공을 지원했다. 해방직후 모든 물품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 특히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일본 관동군의 무기는 중공군에게 결정적인 도움이되었다고 한다.

북한이 중공을 도와준것은 자발적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련의 직접적인 지시가 아니면 북한이 중공을 그렇게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기 어렵다.

션즈화는 당시 중국과 소련의 관계를 지나치게 대립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조선전쟁에서 팔로군이 북한으로 부터 지원을 받은 내용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션즈화의 조선전쟁에서 국공내전 당시 중국과 소련 그리고 북한의 관계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것은 중공의 역할을 지나치게 부각하려다 보니 발생한 부조화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1949년 4월 1일 중공군이 장강을 넘느냐 마느냐가 중국과 소련간 중요한 안건이되었다. 만일 <괴뢰군 연혁>에서 언급한 1949년 3월 북한과 중공간의 방위협정이 사실이라면 이미 이 당시부터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중국 소련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1949년 3월경 중공의 대표들이 소련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을 하지 못했다.

또한 마오쩌둥은 북한에게 만일 일본이 한반도에 진출하면 중공도 전쟁을 지원하겠다는 언급을 했다.(박영실의 자료에서 다시 확인할 필요) 또한 <괴뢰군 연혁>에 따르면 1949년 1월 이미 소련과 북한의 대표단이 하얼빈을 방문해서 중공의 조선인 의용군들을 북한으로 복귀시키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션즈화는 소련과 중공의 관계에서 복잡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션즈화가 복잡하게 제시하는 설명은 당시 소련의 태도를 이해하는데 설득력이 있지 않다. 소련의 당시 동북지역과 중공에 대한 입장이 구제국러시아의 권리유지가 중요했다면, 소련이 중공에 많은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1949년 중반이 넘어가면 중공이 국공내전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소련이 중공에 지원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당시 동북지역에서의 상황은 소련이 주도권을 잡고 그린 전략적 그림에 따라 전개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즉 중공의 생각과 그림보다는 소련의 생각과 그림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대련과 여순을 중공에 돌려주는 문제도 만일 스탈린이 거부했으면 쉽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스탈린은 중공의 성격에 대한 불확실성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택동의 중공이 과연 진정한 공산당인가 아니면 민족주의 세력에 불과한가? 모택동의 중국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미국과 협조적 관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가능한 상황이 었을 것이다. \

션즈화는 중소동맹과정에서 대련과 여순을 잃어 버린 소련이 부동항을 찾기 위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입장이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과 소련이 동맹을 맺는 관계를 길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중국은 국공내전 당시 붕괴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소련의 지원을 받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가했다는 주장을 한다. 전쟁으로 망한 경험이 있는 중공이 다시 경제적 지원을 얻기 위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지지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마오쩌둥이 김일성에게 일본군의 참전을 언급하면서 자신들도 한반도의 전쟁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을 보면 한반도 전쟁에 참가한 것을 단순히 소련의 경제적 지원으로만 보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오히려 소련은 중국을 한반도의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 국공내전 당시 북한을 이용하여 중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했고 그 이후 얄타회담에서 인정을 받은 중국내 각종 기존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도 중국이 미국과 대항하는 안보구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즉 스탈린은 중공의 성격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공산당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중국과 미국이 갈등을 초래하도록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극동지역에서 미국이나 영국과 군사적인 충돌을 극도로 경계했다. 결국 1950년 2월 14일 중소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여기서 구러시아 제국의 권리를 모두 포기한다.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3
JST 0.030
BTC 60543.19
ETH 3336.30
USDT 1.00
SBD 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