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흔치 않은 음주의 날들

라다크에서 이렇게까지 술을 안마신 건 처음이다. 가장 큰 이유는 독한 감기로 시작해 늑골 염좌(추정)로 까지 번진 몸상태 때문이고 그 다음 이유는 레 시내의 몇없는 와인샵이 전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와인샵들은 블랙 머니의 온상이 되어 최근 라다크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로 인해 영업 정지를 당했다고 한다. 가끔 드라이 데이 때 와인샵 문이 닫기는 했으나 이렇게 오랫동안 굳게 셔터가 닫혀져 있는 걸 본적이 없다. 그러니 자의반 타의반 술과는 멀리한 생활을 했다. 거의 한달 정도 라다크에 있으면서 손꼽는 흔치 않은 음주의 날들

춘자, 초모, 나까지 셋이 레 시내 유일의 바, 레첸바에서 올드 몽크를 콜라 섞어 두 잔, 뜨거운 물 섞어 두 잔 마셨다. 약간 취기가 오른 초모는 자신을 잘 모르는 먼 친척들과 아는 척을 하고 번호를 교환했지만 다음 날 다 차단박아버렸다. 이곳은 알중 라다키 아저씨들의 놀이터이자 인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퍽 유쾌하지 않은 곳이다.

어느 날은 초모 동생 린첸이 군인 친구에게 얻어온 위스키에 라임, 꿀, 시나몬, 오렌지, 사과 등을 넣은 핫토디를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셨다. 감기약이 따로 없다며 홀짝 홀짝 마셨지만 이내 감기가 악화될까 무서워 뜨거운 물만 자꾸 리필하고 춘자, 초모, 빨래의 것만 계속 만들어줬다. 게스트하우스 큰 아들은 계속된 권유에 입을 대는 척만 했고 둘째 아들은 몇모금만 마셨을 뿐이다. 알고보니 둘째 아들은 가끔 칵테일을 즐기며 관심도 있고 친구들과 파티도 종종 하는듯 했으나 집에서는 술을 거의 입에도 안대고 엄마 앞에서 술의 ㅅ자도 안꺼내며 조신한 체를 한다. 훗날 이 날 나의 핫토디에 영감을 받아 각종 과일과 보드카를 때려부운 펀치를 만들어 마셨다며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라다크에서 새로이 알게된 소중한 인연, 코리안 암치 킴과는 촉람사르 초모 어머니 집에서 두번 술을 함께 마셨다. 내 안의 바텐더 본능이 깨어나 보드카 토닉, 하이볼, 스크류 드라이버 등 간단한 칵테일부터 여러 음료를 섞어 다양한 실험을 했고 이제는 정말 레에서 칵테일에 쓰면 좋을 음료에 대한 파악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창, 라다크 전통 술인 창은 보리를 발효해 만든 발효주다.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한데 훨씬 맑고 새그럽다. 이번 라다크에서 창을 총 4번 마셨다. 부동산 투어로 간 울레의 오짤 어머니의 창은 신맛이 너무 강해서 초모는 맛이 갔을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얘기 듣기 전까지 홀짝홀짝 잘도 먹던 나는 괜히 찜찜해져 약간 받아온 창을 더 먹지 않았다. 빨래가 자신의 동네인 샴에서 가져온 창, 포카르종에서 레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싱게가 알음알음 구한 사스폴 창, 게스트하우스 둘째 아들 빨던이 친구를 통해 구한 스큐르부찬 창까지 길지 않은 시간 창을 여러 차례 마셨다. 라다크 사회는 음주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편이고 창은 시중에서 판매하지 않는다. 십여년 전에는 레의 한 가정집에서 몰래몰래 창을 파는 걸 사먹긴 했었는데 아직도 그 집이 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알음알음 구해지는 창은 돈으로 사고파는 건 대부분 아닌 것 같다. 아는 사람에 의해 인정에 의해 공유되는 것이다. 마을마다 보리가 다르고 사용하는 효모가 다르고 물이 다른 건지 아니면 만드는 사람의 기술의 차이인지 마을마다 창의 맛은 미묘하게 달랐다. 또한 이게 창을 만들고 처음 술을 다마시고 물을 부어 몇번을 더 마시기에 몇번 째 리필인지에 따라도 맛이 다를 터였다. 규격화되지 않은 이 한병의 술은 관계성을 타고 날아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고 먹을 수 있는 술이었다. 내일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마실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