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迷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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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주 쉬운 자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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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미(米), 이 자는 고대문자로 봐도 쌀알을 막대기로 펴고 구분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백미, 현미,보리 등등…아주 직관적인 상형문자죠. 그런데 누구나 아는 이런 식은 죽 먹기 한자를 왜 들고 왔을까요? 누구나 아는 문자라도 우려보면 국물이 진하고 뽀얗더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미수(米壽)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릅니다. 사람의 어느 나이를 뜻하는 단어인데요. 바로 여든여덟살입니다. 八十八-이것을 아래로 내려 쓰면 바로 쌀 米자여서 그 연세를 이르는 단어이며 잔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쌀 미(米)와 아주 친한 한자가 있으니 바로 벼 화(禾)입니다. 이건 고대에는 완전히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인 모습입니다. 이건 또 아주 함축된 맛이 나는 한자라서 따로 다루기로 하고 다시 쌀 미(米)로 돌아옵니다.
정신 정(精)이 바로 쌀 미(米)가 들어가는데요. 자세할 정, 맑을 정, 쓿을 정이라고도 하지만 왜 쌀 미가 들어가는 걸까요? 정미(精米)라는 단어가 쌀을 쓿는 것을 말합니다. 쓿는 것? 요즘은 깎는다고 표현하지요. 사람의 기본 먹거리인 만큼 그 일이 자세해야 하고 깨끗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 사람이 입에 곡기(穀氣), 즉 밥이 들어가줘야 정신이 납니다. 단식을 해보거나 굶주려보면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밥심이 딸려서 그렇다고들 하지요? 특히 연세 드신 분들은 더욱 밥심을 중요시 하는데 그게 곡기(穀氣)입니다. 미혹할 미(迷)에도 이 쌀 미(米)가 들어가네요. 여긴 왜 뜬금없이 들어갈까요?
흔히 책받침이라고 부르는 저 받침이 실은 쉬엄쉬엄 갈 착(辶)이라는 건데요. 멀어진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쌀이 멀어지면? 곡기가 멀어지면 어지럽습니다. 먹을 것 밖에 생각이 안나죠. 그게 우리 육신이 바로 곡기를 근간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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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몸껍데기 안에 한번 들어간 사람은 매일 매 순간이 미혹의 나날이곤 합니다. 유한한 것 속에 무한의 존재가 몸을 구기고 들어가 입주하려니 얼마나 부대끼는 일입니까?
조금만 뭔가 안맞으면 배고프고 춥고 덥고 답답하고 아픕니다. 미혹(迷惑)이라는 단어에서 혹(惑)은 혹시나…하는 마음 즉 의심을 뜻합니다. 이 육체 속에서 보는 세상은 언제나 흐릿하며 불분명하여 늘 의심의 물에 흠뻑 젖어있는 것만 같습니다.
미혹의 극치는 아기입니다. 아기는 엄마가 안보이면 패닉에 빠져 웁니다. 엄마가 없을 때 배고프면 더욱 무섭고 오줌이 기저귀에 축축하면 더욱 끔찍하여 더 웁니다. 언제 전능하신 엄마가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안아주고 돌봐주실지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혹은 그래서 불안을 증폭하고 두려움을 배가시킵니다. 그러다가 저만치서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를 발견하면 울음이 딱 멈춰지고 두려움은 씻은듯이 사라집니다. 그저 두 손을 흔들고 눈은 엄마를 바라보며 가슴은 희망과 기쁨으로 터질 것처럼 되지요.
하늘이 보시기엔 우리 모두 그런 미혹에 빠진 아기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너무나 두렵고 그래서 그 두려움을 끝내고자 차라리 죽어버리려고도 합니다.
마치 아기가 울다가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숨도 잘 못 쉬는 것 같은 상태가 바로 고통 속의 중생의 상태입니다. 이 미혹의 안개는 무엇이 만든 걸까요? 내 의식을 의심의 막대로 휘휘 저으면 밑에 잠겨있다가 소용돌이치며 피어오르는 게 바로 미혹의 안개입니다.
당신에게 이 두려움과 의심과 미혹을 걷어 주실 엄마는 계신가요?
그 엄마를 만나셨다면 이제 모든 의심 내려놓고 엄마 말씀 잘 따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