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병의 이야기(37)
<대통령 각하 압록강수 잡사 보십시요(3)>
원산 전투 2.3일... 적의 완강한 대항전이다. 뺏고, 빼앗기고, 밀리고, 밀고 하는 치열한 격전 끝에 "원산"을 탈환함과 동시에 길고긴 고산지대인 "양덕"을 향하여 진격 탈환 하는데 애는 먹었지만 고산도로상에서 멈추고 그대로 포를 방열하여 맹사격을 퍼부었다. "신속한 위력을 보였다." 인민군은 무포 상태다. 시체를 산쪽벽에 쭉 평풍처럼 나란히 놓았다. 그것도 거꾸로 세워 놓았다. 어찌나 꽤심 했으면 그랬을까.
"양덕전투"에서 적을 격퇴하는데 좀 지체 했으나 그다음부터 일사천리로 1,327고지의 험준한 산악중에 산맥 한가운데 "신양읍"을 거쳐서 바로 평남 "순천" 입구에 진입할 상태서 이때 미군 공수대 낙하산 작전은 장관이였다. 적의 퇴로 차단은 성공적 작전였다. 제6사단은 협전 한다음 본격적인 중부 산악지대 산협길로 진입하여 평북 "개천"을 지나서 요즘 "자강도"의 산중도시 희천시의 항전을 물리치고, 탈환한 하루 이틀 동안 "희천시"에서 묵고, 부대 재정비 하고 보급을 충당함과 작전과 계획을 점검하고 국도 3번 도로로 "송원군"으로 진입하였다. 패잔병들은 저항이라기 보다 금새 도망치고 말았다. 대항할 무기가 없어 보이며 병력은 극도로 쇠약해 있었다.
무방비 상태인 "명문읍"을 진격하여 국도 10번 도로로 "신창" "구평" "직리"를 통과하면서 부터 압록강 강변인 초산읍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제1대대에 제1중대 중대장 대위 이대용(육사7기) 선두 중대가 압록강 바로앞 593고지에 도달했다. "초산읍" 과 붙은 바로 옆산이다.
공격을 시작하자 나는 593고지를 포격하지 않고 593고지를 넘어 뒷산 부근(압록강변 앞)을 집중 포격했다. 그것은 도망가는 적에게 마지막 위협과 공포심, 절망을 주기 위해서 심리적 포화 사격을 하였다. 제1중대는 곧장 산정에 도달하였다. 드디어 제1중대는 593고지와 그 앞에 작은 산도 같이 탈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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