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2(목) 거란의 침입과 귀주대첩에 대한 송나라의 기록
고려 현종시기에 국경밖에 6개의 성을 설치했는데
이것을 기존 학계에서는 억지로 '강동'6주라고 이름을 붙였다.
압록강의 동쪽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원래기록에는 강의 동쪽에 성을 쌓았다고 하지 않았다.
고려가 성을 쌓자 그 의도를 의심한 거란이
성을 문제삼았는데 고려는 오히려 군사를 늘려서
성의 수비를 강화했다.
그리고 거란이 침입했다가,
강감찬 장군에게 몰살당했다는 것이
소위 '귀주대첩'의 전말인데.
그 내용을 살펴본다.
(1)6개의 성에 대한 이야기
嘗築六城於境上:曰興化,曰鐵州,曰通州,曰龍州,曰龜州,曰郭州。
처음에 고려高麗왕 송誦(목종穆宗)이 죽고 그 아우 순詢(현종顯宗;1009~1031)이 임시로 국사를 다스렸는데, 일찍이 국경 위에 6성城을 쌓으니 이른바 흥화興化, 철주鐵州, 통주通州, 용주龍州, 귀주龜州, 곽주郭州(강동 6주)이다. 거란契丹은 고려가 자신들에게 두 마음을 품은 것으로 여기고 사신을 보내 여섯 성을 요구하였으나, 순詢이 허락하지 않았다.
원문에서 알 수 있는것 처럼 국경의 위쪽에 성을 쌓은 것이다.
'강의 동쪽에 6성'을 의미하는 강동6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학계가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록이 추가된다.
고려高麗는 또한 압록강鴨綠江 동쪽에 성을 쌓아 내원성來遠城과 마주 보게 하였고, 강을 가로질러 다리를 놓으며 군사를 몰래 주둔시켜 여섯 성을 굳게 지켰다.
압록강의 원래 위치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지만
그건 차치하고라도
6개의 성이 어디에 있었기에,
압록강을 가로질러 다리를 놓아 여섯성의 수비를 강화했을까?
강의 남쪽에 있다면 다리를 놓아 수비가 강화되나?
강의 건너편에 있으니 다리를놓아 지원군의 이동을 쉽게해서
수비를 강화할 수 있는 것이지.
국가기관이 역사를 속이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우리는 용납하고 있는 것일까?
(2) 귀주대첩의 규모:
10만이 침입(우리나라 교과서)
한 것이 아니라
20만명 몰살(송나라의 기록)
신이 숙지하기로 고려 高麗가 비록 거란 契丹을 섬기고는 있으나,
거란契丹 또한 그들을 두려워합니다.
천성天聖 3년(1025년), 거란 契丹이 일찍이 고려高麗를 정벌하였는데, 그해에 조정에서 이유李維를 사신으로 보냈을 때 고려高麗가 거란 契丹의 병사 20만 명을 살상하여 말 한 필, 수레바퀴 하나도 돌아간 것이 없었으니, 이때부터 거란 契丹이 항상 그들을 두려워하여 감히 군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臣熟知高麗雖事契丹,而契丹憚之。
天聖三年,契丹常伐高麗,是年朝廷遣李維奉使,高麗殺契丹兵二十萬,匹馬隻輪無回者,自是契丹常畏之而不敢加兵。
